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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美 렉싱턴에 울린 일성 “또 다른 100년 준비하자” 

 

렉싱턴(미국 켄터키주)=심재우 뉴욕특파원 jwshim@joongang.co.kr
쓰러져 가던 클라크 인수해 정상궤도 올려... “2019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나 중소기업 도울 것”

▎5월 17일(현지시간) 미국 렉싱턴에서 열린 클라크 지게차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백성학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심재우 기자
백성학(77) 영안모자 회장은 007 가방 크기의 오래된 가죽 가방을 늘 들고다닌다. 그 안에서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오려붙인 흑백 세계지도를 보여줬다. 미국 댈러스, 독일 뒤셀도르프, 싱가포르, 호주 시드니 등 전세계 해외법인의 위치가 색깔을 달리한 형광색으로 구분됐고, 깨알 같은 글씨로 업종과 규모를 정확하게 표시했다.

“남한땅은 300억 평인데 이중 63%가 임야라서 37%만 쓸 수 있어. 너무 좁아. 세계지도를 보면 가야할 곳이 넘쳐나. 요즘 누가 전쟁해서 땅을 넓히나? 기업인들이 해외로 진출해서 대한민국 영토를 넓혀야 해.”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 또한 백회장이 넓힌 영토 가운데 하나다. 2003년 브랜드만 남기고 죽어가던 토착기업 클라크를 750만 달러에 사들여 정상궤도에 올려놨다. 클라크는 1917년 창업자 유진 클라크가 지게차라는 제품을 처음 개발했다. 17일(현지시간) 지게차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렉싱턴 시내 중심가에서 열렸다. 백 회장은 전세계 딜러 4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가족”이라며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자”고 말해 참석자들을 열광시켰다.

19살이던 1959년 청계천에서 영안모자점을 창업한 백 회장. 연간 1억 개 이상의 모자를 팔아 2억7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모자왕’으로 불린다. 그는 모자와 별다른 연관이 없어 보이는 지게차, 버스, 자동차 판매사업 등에 잇따라 진출해 성공 방정식을 보여주고 있다. 백 회장은 “우리는 해외에 공장을 세우고, 생산과 판매를 함께 진행하되 철저하게 현지화하는데 강점을 지니고 있다”면서 “모자사업의 노하우가 모든 사업에 접목돼 성공사례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클라크 지게차 100주년 행사에 참석한 백 회장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52년간의 세계화 노하우가 넘쳐 흘렀다. 그와의 대화를 재구성했다.

영안모자는 그룹 대신 계열이라는 명칭을 쓴다.

“직원들이 영안모자 그룹이라고 말하고 다니면 나한테 혼난다. 그룹을 붙이면 직원들이 겉멋이 들더라. 그리고 그룹이라고 까불면 재벌들이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우리가 해외에서 모자 만들어 한국에 팔지 않는 이유가 있다. 영세한 모자업체가 다 죽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거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대로 세계시장에서 할 일이 너무 많다.”

모자와 지게차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모자를 만드는데 쉽지않은 제조 노하우가 숨어있다. 그게 경쟁력이고, 판매의 동력이다. 그런 점에서 모자나 지게차는 크게 다르지 않다. 2003년 클라크를 인수했을 때 만신창이가 돼있었다. 전 주인이 건물은 다 팔아먹고 창고 2개 빌려서 부품재고를 나뒀더라. 초창기 고생이 심했다. 이란에 몰래 기계를 팔아먹은 부사장 때문에 소송비가 370만 달러 들었다. 2차 대전 당시 지게차 시장점유율이 80%까지 올라갔던 지게차 원조회사가 주인 잘못 만나 딜러들도 다 떠나고 아주 엉망이었다. 영안은 회사를 살려보려고 3년 이상 인내했다(지금까지 영안모자가 클라크에 투자한 돈이 1000억원 정도이다). 한국 클라크를 인수해 미국에서 재생산을 시작했고, 2004년부터는 글로벌 운영체제를 갖췄다. 그랬더니 돌아섰던 딜러들이 되돌아왔다. 지금 우리가 1만5000대 정도 팔면서 7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20년 1만8000대, 2025년엔 3만 대 판매할 것으로 기대한다. 틈새시장 진출용으로 소형화물운송차인 딜리버리 트럭(0.8∼1.2t)을 개발중이다. 2025년까지 이걸 4만 대 엮어주면 7만 대가 되겠더라. 그러면 매출 15억 달러는 무난하게 달성된다.”

2015년 멕시코 공장 문을 닫고 미국으로 이전해 합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으면 좋아할 일이다.

“2011년 3월에 클라크 멕시코 공장을 설립해 운영했는데 영 전망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2015년 말에 철수를 완료했다. 2016년 5월까지 멕시코 공장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해 통합했다. 현재 미국 렉싱턴 공장 생산이 4000대 정도로 확대되면서 다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그랬더니 미국 정치인들이 클라크 회생 스토리를 롤모델로 삼더라. 나도 미국 제조업이 다시 부흥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제조업이 망하면 회생 시키기 힘들다. 제조업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고 미국 정치인들에게 얘기했다. 그래도 미국은 정보기술(IT) 기업뿐만 아니라 클라크처럼 100년 된 보수적인 기업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너무 한쪽으로 몰고가면 안 된다. 밥상을 차리려면 밥을 짓는 사람도 있고, 설거지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밥만 먹으려고 한다. 골고루 섞여야 한다.”

클라크 본사에 한국사람이 안 보인다.

“내 원칙은 현지인에게 모두 맡기는 것이다. 그 지역에서 성공하려면 그 지역문화를 아는 사람을 교육시켜서 맡겨야 한다. 돈 관리하는 사람도 현지인이다. 한국인이 주인이랍시고 현지에서 으스대기 시작하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세 가지를 강조한다. 허위보고하지 말라, 비자금 만들지말라, 정리정돈 잘하자 등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가 실수했다고 쫓겨나는 사람은 없다. 오래 같이 가는 게 원칙이다.”

클라크 미국공장의 생산성은 어떤가. 인건비가 비싸 경쟁력이 떨어질 것 같다.

“전혀 그렇지 않다. 전세계 영안모자 계열 근로자의 임금을 비교해봤더니 한국 인건비가 가장 비쌌다. 창원 클라크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생산직 근로자의 연봉을 100으로 봤을 때 미국 생산직은 70%에 불과했다. 중국은 18%였다. 급여 이외에 복리후생으로 챙겨줄게 많아서다. 이게 다 3∼4%의 귀족노조 때문이다. 하도급직원, 비정규직 등 4명의 고혈을 짜내 귀족노조 정규직 직원 한 명을 잘살게 만드는 구조다. 조만간 중국이 조선과 중공업, 자동차까지 싹 쓸어담으면 어떻게 할건가.”

앞으로도 계열사 상장은 계획에 없나.

“내 원칙이다. 영안모자 계열은 가족기업이다. 경인방송을 제외하고 가족이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세 아들이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똑같이 나눠줘서 싸울 일이 없다. 큰아들은 계열 전체를, 둘째는 버스를, 막내아들은 지게차 사업 등을 맡는다. 영안모자 창립 60주년이 되는 2019년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날 계획이다. 앞으로는 세계에 다니면서 배운 52년 노하우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외 중소기업에 봉사차원에서 컨설팅해주는 일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조금만 신경 쓰면 바닥을 치고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이 많다.”

[박스기사] 영안모자 계열

1) 모자 사업 : 전 세계 16개 법인 / 매출 2.7억 달러

* 1975년부터 해외법인 및 공장 설립 시작

* 한국공장은 1993년 철수 후, 해외생산/해외판매 체제로 전환

2) 지게차 사업 : 전 세계 10개 법인 / 매출 7억 달러

* 2003.1월 미국 렉싱턴 본사(CMHC) 인수

* 2003.5월 한국 창원공장(CMHA) 인수하며 본격 생산 돌입

3) 버스 사업 : 전 세계 9개 법인 / 매출 8억 달러

* 1992년 코스타리카 마우코사에 벤츠와 합자해 버스사업 개시

* 2003년 한국 대우버스 인수

4) 자동차판매 및 A/S 사업 : 13개 법인 / 매출 4억 달러

* 2012년 대우자동차판매(주)의 버스판매부문 인수

5) 일반 사업 : 전 세계 7개 법인 / 매출 5000만 달러

* 목장사업(제주/호주), 광고사업, 관광사업, 부동산임대사업 등 운영 중

6) 기타 사업 매출 : 1억5000만 달러

1385호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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