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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위헌(違憲)한 경제’(1) 어디까지 무상교육인가] 학교운영비는 위헌, 급식비는 합헌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헌재 “국가재정 도외시 못해” … 국가-지자체 부담 논란엔 “규정 없어”

‘경제정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의 원초적 기준은 법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법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아니, 단순히 합법적인 경제는 정의로운 경제일까. 또는 법에 어긋난 경제활동은 모두 불공정한 행위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모든 법률의 근간이자 잣대가 되는 헌법으로 경제를 짚어봤다. 실제 헌법소원 판례를 통해 개인과 국가가 경제와 법을 의심하고 행동하며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위헌(違憲)’한 한국경제의 민낯을 살펴본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이틀 앞둔 2011월 8월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현수막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중학교까지는 의무적으로 보내라 해놓고, 급식비는 학부모가 알아서 내라고? 이거 세금이나 마찬가지잖아!” 지난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둔 2010년 4월. TV에는 ‘무상급식’을 두고 격론을 벌이는 정치인들이 나오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초등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 A씨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내가 낼 필요 없는 것 아니야?”.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그런데 1년여 전 지방 교육감 선거에서 한 후보자가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급식비를 누가 내느냐, 원칙적으로 누구에게 책임이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커졌고 뉴스를 통해 관련 정보가 쏟아졌다. 의심과 분노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헌법상 초·중등학교는 무상교육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둘러싸고 정부와 시도교육감이 갈등하는 가운데 지난해 1월 덕수궁 돌담길 인근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서울지회 회원들과 학부모들이 참여해 예산다툼을 중단하고 원상복귀를 주장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A씨보다 앞서 같은 의심을 품었고, 행동도 빨랐던 이가 있다. 안양시에 사는 신상섭(가명)씨는 A씨가 뉴스를 보고 있을 때 헌법재판소에 들어서고 있었다. 헌재에 오기 전 그는 스무 살이 된 딸이 중학생 시절에 낸 급식비 100여 만원을 돌려달라고 법원을 통해 정부와 경기도, 안양시에 요구했다. 법원은 ‘학교 급식법’이 학부모의 급식비 부담을 인정하고 있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씨는 법원의 결정에 불복했다. 법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교급식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헌법 제31조 3항이다. 헌법상 의무교육 범위는 ‘초등교육+α’다. α는 법률로 정하도록 열어 놨다. 지금 법률은 중학교 3년까지를 의무교육에 포함하고 있다. 의무의 당사자는 국민이기도 하고 국가이기도 하다. 학부모 또는 친권자는 해당 연령대의 자녀가 반드시 의무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 국가는 이를 위해 인적·물적 교육시설을 정비하고 교육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다만, 학계에서는 의무교육 조항이 개인보다는 국가의 의무를 강조한다고 본다. 개인은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에 이를 뒷받침할 의무가 있다는 해석이다. 이는 헌법이 무상교육을 명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적어도 의무교육에 대해서는 국가의 책임이 강하고, 그 비용을 학생과 부모 개인의 부담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어쨌든, 결론은 헌법상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학교에 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여전히 이런저런 명목으로 학교에 돈을 낸다. 대표적인 게 학교운영지원비다. 학교운영지원비로 걷힌 돈은 시설 유지비, 회계 직원 인건비, 교원 연구비 등으로 사용된다. 과거 육성회비·후원회비·기성회비로 불린 항목이 이름을 바꿔 유지됐다. 2008년 한 학부모단체가 이를 문제 삼았다. 중앙 정부와 5개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2010년 6월 헌재로 향했다. 신씨가 헌법소원을 청구한 지 막 두 달이 지났을 때다.

법률도 헌법에 어긋나면 심판의 대상이 된다. 이번엔 초·중등교육법이 법정에 섰다. 이 법 제30조는 국·공립 중학교의 세입 항목에 학교운영지원비를 명시하고 있었다. 이 조항에 문제가 없다면 중학교는 합법적으로 학교운영지원비를 걷을 수 있다. 학부모 단체는 이는 의무교육의 무상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년이 지나 그들은 원하는 답을 얻었다. 헌재는 “초·중등교육법 30조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위헌 결정 후 초·중등교육법은 개정됐다. ‘국공립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의무교육 대상자의 교육을 위탁받은 사립학교의 설립자·경영자는 의무교육을 받는 사람으로부터 수업료와 학교운영지원비를 받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당시 헌재의 결정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헌법은 의무교육의 무상원칙을 규정한다. 무상의 범위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1조 1항에 따른다. 여기에는 기회균등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수업료, 입학금, 교사 인건비, 학교 시설 유지비, 신규 시설 투자비가 포함된다. 학교운영지원비는 이런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협찬금 성격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내기 싫다고 안 낼 수도 없다. 따라서 무상이 원칙이고, 학교운영지원비 징수를 명시한 법 조항은 헌법 위반이다.’

‘균등한 교육에 필요한 비용’이 무상의 범위

학교운영지원비에 대한 헌재의 논리는 명료했다. 이 돈은 일반적으로 의무교육에 수반되는 일들에 쓰인다. 따라서 무상교육의 범위고, 학부모 개인이 낼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신씨가 주장한 학교 급식비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학교 급식은 무상교육에 포함될까.

학부모 단체가 위헌결정을 듣기 넉 달 전, 신씨도 헌재의 결정문을 받았다. 결과는 엇갈렸다. 헌재는 중학생의 학부모에게 급식 관련 비용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학교급식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학교운영지원비와 달리 학교가 급식비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는 결론이었다. 무엇이 다른 결과를 낳았을까.

먼저, 헌재는 급식이 앞서 말한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비용’이 아니라고 봤다. 학계에는 무상의 범위에 대한 세 가지 학설이 있다. 수업료만 면제된다는 수업료 면제설, 수업료와 교재·학용품 등도 공짜로 해야 한다는 취학필수비 무상설, 법률이 정한 대로 해야 한다는 법정설이다. 학교운영지원비의 판례로 보면 헌재의 결정은 취학필수비 무상설에 가깝다. 다만, 급식비는 ‘필수’로 보지 않은 것이다.

급식이 교육과정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느냐 아니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논리적으로만 보면 여기까지 헌재의 판단은 깔끔하다고 볼 수 있다. 학교운영지원비와 급식비는 쓰임새가 다르고, 쓰임새에 따라 무상교육 해당 여부를 판단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헌재는 당시 여기에 몇 가지 이유를 덧붙였다.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으로 부담을 경감하는 조항이 마련돼 있고,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지원방안이 마련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상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쯤 되면 조금 헷갈린다. 원칙적으로 무상교육이 아니라는 건가, 저소득층까지만 무상교육 대상이라는 건가, 원칙적으로는 해야 하는데 보완 방안이 있으니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건가?

모호성의 원인은 경제 현실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 재정의 문제다. 헌재는 급식비의 합헌 결정문에서 “학교 교육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하겠으나,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와 같은 사회적 기본권을 실현하는 데는 국가의 재정상황 역시 도외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급식을 포함한 교육재정 부담은 만만치 않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이 교육부를 통해 제출받아 분석한 2‘ 017년도 시·도별 무상급식 지원계획(안)’, 무‘ 상급식 추진현황 및 확대전망’ 자료에 따르면 시·도교육청과 지자체가 내년도 무상급식에 투입할 예산은 총 2조9420억원에 달한다.

재정문제는 지방자치 체제에서 더 복잡해진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가운데 무상교육의 비용을 누가 댈 것인가의 물음 때문이다. 최근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다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헌재는 이 사안에 대해 중립적이다. 2004년 서울시가 “정부가 지자체에 의무교육 경비를 부담시키는 것은 위헌”이라며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헌재는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단 “헌법은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중앙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고만 했을 뿐, 누가 부담해야 한다는 결론은 내지 않았다.

국가재정 현실이 모호한 헌법 판단의 원인

경제적 한계를 따지면 생각해 볼 문제는 더 많아진다. 헌재의 말대로라면, 만약 국가재정이 충분한 상황에서는 무상급식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 되는 것일까. 재정이 충분할 때는 급식이 ‘교육에 필수 항목’이고, 어려울 때는 ‘필수’에서 제외되는 것인가. 재정 규모가 어느 정도면 무상교육을 할 만큼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충분한 재정’은 무엇으로 판단할까. 국가 재정인가, 교육비 예산인가, 아니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인가. 아니, 무상교육이 가능하긴 한 건가.

재원의 제약을 고려하면 무상원칙이 교육의 질을 저하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가령 의지가 있는 학부모로부터 조금씩 학교운영비를 걷었다면 지을 수 있는 과학 실험실을 무상원칙 때문에 짓지 못한다면? 무상급식 실시로 지방재정이 부족해져 도서지역 교사 인건비를 대지 못한다면? 의무 교육비를 학부모에게 부담 지우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나 지자체의 예산으로 적정 수준의 교육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인 물음이다. 무상교육을 위해 우리 아이들은 ‘같은’ 교육만 받으면 되는 것일까.

헌법과 헌재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급식비 관련 결정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의무교육에 있어서 본질적이고 필수불가결한 비용 이외의 비용을 무상의 범위에 포함할 것인지는 국가의 재정상황과 국민의 소득 수준, 학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및 사회적 합의 등을 고려하여 입법자가 입법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결국 무상교육·무상급식을 둔 논쟁에 답을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헌법적 이상과 경제적 현실 사이의 적절한 사회적 합의다. 또는 더 명료한 헌법의 해석이나 헌법 그 자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또한 무척 어려운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 마찬가지 일 테지만 말이다.

1386호 (20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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