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바이오틱스 매출 600억원 중 절반은 수출로 5년 내 유산균 활용한 대장암 치료제 개발 계획
휴대전화·반도체가 수출 회복을 이끌고 있지만 ‘투톱’으론 급변하는 세계 시장에 대응하기 어렵다. 한국경제에는 새로운 먹거리, 그 다음의 밥상이 절실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선정한 ‘차세대 세계일류상품’(향후 7년 안에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이내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는 제품)에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의 신성장 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업과 기술·상품을 연재한다.
▎프로바이오틱스로 ‘유산균 종주국’ 덴마크 시장에서 1위를 다투고 있는 쎌바이오텍의 정명준 대표는 “미생물 전문가로서 20년 이상 한 우물만 팠다. 그래야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사진:임현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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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장에는 약 1㎏에 달하는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존재한다. 그중 유산균 등 건강에 유익한 미생물을 ‘프로바이오틱스’라고 부른다. 이 유익균들이 힘을 잃게 되면 대장암·대장염·과민성대장증후군·크론병(만성염증성장질환) 등 대장 질환 발병률이 높아진다. 최근 제약사들은 프로바이오틱스 제품 개발이 화두다. 지난해 국내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은 약 1400억원으로 연간 10%씩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 관련 제품 시장은 지난해 약 36조원 규모로 추산된다.쎌바이오텍은 덴마크의 크리스찬한센·다니스코, 프랑스의 로셀, 일본 모리나와 함께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기업이다. 특히 유산균 종주국인 덴마크에서 자체브랜드 ‘듀오락’으로 1위 경쟁이 치열하다. 6월 7일 경기도 김포시 쎌바이오텍 본사에서 만난 정명준 대표는 “유럽의 경쟁회사들은 유산균 원료만 생산·공급하는데 반해 우리는 원료개발, 완제품 생산, 판매 등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가격경쟁력이 있다”며 “5년 내에 유산균 기술을 적용한 대장암치료제를 개발해 바이오의약품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듀오락은 현재 43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쎌바이오텍 창업주인 정명준 대표는 국내 바이오벤처 1세대이자 손꼽히는 유산균 전문가다. 연세대 생물학과, 서울대 미생물학 석사를 거쳐 덴마크왕립공과대학교대학원에서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덴마크에서 프로바이오틱스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고 국내로 돌아와 1995년 쎌바이오텍을 설립했다. 당시 국내엔 ‘프로바이오틱스’라는 개념 자체가 낯선 상황이었지만 그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건강기능식품에 동물 임상을 진행하는 등 공격적인 연구·개발(R&D)을 진행해 왔다.
‘다윗과 골리앗’ 콘셉트로 종주국 겨냥그렇게 10년을 버티자 국내에서도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치료약이 없는 대표적 질병인 아토피·오티즘(자폐증)·크론병(만성 염증성 장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힘을 얻으면서다. 정 대표는 “일부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은 의약품보다 더 과학적이고 품질 또한 우위에 있다”며 “국내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은 걸음마 수준이지만 4~5년 내에 유럽 수준의 소비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쎌바이오텍은 회사 이름보다 ‘듀오락’이라는 브랜드가 더 유명하다. 듀오락은 ‘듀얼(이중) 코팅된 유산균(lactic acid bacteria)’을 의미한다. 쎌바이오텍의 경쟁력 역시 ‘다양한 균주’와 ‘이중 코팅’이다. 정 대표는 “40여개국에 수출하면서 현지인 체질에 맞추다보니 자연스레 균주가 20종까지 늘었다”며 “모두 세계 특허를 받은 이중코팅 기술을 접목했다”고 말했다.CJ제일제당·일동제약 등 대기업 유산균 제품을 제치고 국내 시장 1위를 차지한 정 대표는 수출을 염두에 두고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스토리텔링을 기획했다. 바로 유산균 종주국인 덴마크에서 한판 붙어 시장의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그는 “이중코팅 제품은 일반 제품보다 장까지 살아가는 생존율이 100배 이상 좋다는 것을 덴마크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 받았다”며 “한국과 달리 제품에 표기도 가능해 이를 앞세운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현재 듀오락은 덴마크 시장점유율 2위다.지난해 쎌바이오텍은 듀오락 브랜드를 앞세워 매출 583억원, 영업이익 216억원을 올렸다. 전년 대비 각각 18%, 15% 상승한 수치다. ‘듀오락’의 유통 채널을 확대하고 신규 제품 출시와 제품 리뉴얼 등을 통해 이룬 성과다. 올해도 신제품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 먼저 선보인 유산균 화장품 ‘락토클리어’의 반응이 특히 좋다. 정 대표는 “여드름 원인균을 박멸하는 특정 유산균 숙주를 찾아내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며 “화학 화장품을 사용하게 되면 피부 미생물을 죽이게 되는데 유산균 화장품은 그 문제점을 해결한다”고 자신했다. 최근엔 영유아를 위해 액상 형태의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 신제품 ‘듀오디-드롭스’도 선보였다. 올들어 국내에서는 올리브영, 싱가포르에서는 왓슨스·가디언·유니티 등 드럭스토어에 진출하며 유통 채널을 다각한 것도 눈에 띈다. 그는 “바이오기업은 현금 창출과 연구개발이라는 두 개의 물레방아가 돌아가야 한다”며 “제품 개발을 통해 현금을 계속 창출해야 연구개발에 투자 여력이 생긴다”고 말했다.쎌바이오텍은 최근 바이오의약품기업으로 변신에 도전하고 있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가 대장암 치료제 후보 물질인 ‘P8’ 개발이다. 정 대표는 “염증성 장질환과 대장암을 치료하는 단백질을 유산균을 통해 전달하는 기술을 5년 내에 개발할 것”이라며 “1차 임상시험을 위해 올 연말쯤 임상시험승인신청서(IND)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에 따르면 치료 단백질의 유전정보를 특정 유산균을 통해 대장까지 전달하고, 장에 정착한 유산균이 증식하면서 치료 단백질이 합성되는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청 등 정부에서 지원받은 36억원과 회사자금 36억원 등 모두 72억원이 투입된다.정 대표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카세트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어느 테이프든 카세트에 넣으면 소리가 나는 것처럼, P8이 대장암은 물론 췌장암 등을 예방하는 물질을 담는 일종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P8 물질에는 쎌바이오텍이 보유한 4중코팅 기술이 접목된다.
바이오기업 ‘영속성’ 위해 규제 풀어야정 대표는 바이오 기업의 영속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생물 관련 기술은 돈만 투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유능한 개발자들이 오랜 시간 연구하고 축적한 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쎌바이오텍의 직원 300명 중 연구인력 박사급만 12명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알렉산더 플레밍이 개발한 초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은 100년 가까이 시장에서 효능을 보이고 있다”며 “이것이 IT나 소프트웨어, 엔터산업과 다른 바이오의 힘”이라고 강조했다.국내 바이오 기업의 영속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투자 여건을 조성하고, 각종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 대표는 “바이오산업은 정부 정책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제품이 유행하면 그 원료를 수입해 섞어서 비빔밥처럼 내놓는 풍토로는 절대 경쟁할 수 없다. 히든챔피언이나 수출주도형 기업에 대해 정부가 연구개발비를 지원해 주어야 하며, 원천기술 확보에 대한 마케팅 여력을 늘려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