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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피할 방법 적지 않아
김상조 등장에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대기한화S&C는 2001년 초 한화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한화와 김승연 회장이 출자해 만들었다. 계열사 일감이 기본적으로 깔리기 때문에 회사는 처음부터 이익을 냈다. 2003년에는 매출 1068억원, 영업이익 10억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회사는 2004년 매출이 증가(1268억원)했음에도 오히려 영업손실(37억원)을 낸다. 이어 회사 지분은 모두 김승연 회장 아들 3형제에게 넘어간다. 일각에서는 3형제에게 지분이 증여되기 직전인 2004년에 의도된 적자를 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주식 가치를 낮춰 인수 대금과 증여세 부담을 덜어주려 했다는 이야기다. 비상장 주식은 대개 통용되는 시가가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주식 가치를 매겨 거래하고 세금을 낸다. 상속·증여법에서는 회사 순자산 가치와 순손익 가치를 가중평균해 주식 가치를 평가한다. 최근 연도 가중치가 크기 때문에, 최근에 손실이 났다면 증여 주식의 가치는 확 떨어질 수밖에 없다.한화가 당시 이런 이유로 일부러 적자를 냈는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쨌든 아들 3형제가 지분 100%를 확보한 뒤 회사는 곧바로 흑자전환하며 탄탄한 실적을 이어갔다. 특히 한화그룹의 에너지사업 핵심 주력사인 한화에너지 지분을 100% 확보하는 등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기업으로까지 성장했다. 이런 한화S&C의 전격 분할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한화 측도 그렇게 설명한다.일감 몰아주기 규제 관련 조항에 따르면 총수 일가가 지분 30% 이상 보유한 상장사(비상장사는 지분 20% 이상)가 계열사와 불공정 거래를 할 경우 과징금 부과 또는 총수 일가에 대한 사법처리(검찰고발)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이 때 총수 일가의 지분은 ‘직접’ 지분을 말한다. IT서비스 사업을 물적분할하면 한화S&C서비스에 대한 총수 일가의 직접 지분은 없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 회사를 인적 분할하든, 물적분할하든 분할 그 자체만으로는 주주의 지배력에는 변함이 없다. 물적분할을 하면 아들 3형제가 100% 지배하는 한화S&C가 다시 한화S&C서비스를 100% 지배하는 구조가 된다. 간접 지분을 이용해 그 전과 다름없는 지배력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한화그룹은 한화S&C서비스 지분 가운데 49%를 해외 사모펀드에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배력 변화 없이 물적분할만으로 규제를 피해갔다가는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추정된다.여당과 야당이 각각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사익편취 지분율 기준을 산출할 때 간접 지분까지 다 포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분할과 지분 일부 매각 후에도 한화S&C서비스에 대한 총수 일가(아들 3형제)의 간접 지분율은 규제 대상이 된다. 단순 계산으로 ‘100%(총수 일가의 한화S&C 지배력)×51%(한화S&C의 한화S&C서비스 지배력)=51%’가 되기 때문이다.간접 지분 포함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규제 대상 지분율 요건(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자체가 높은 데다 간접 지분을 포함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이미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부당 이익에 세금을 매길 때 간접 지분을 포함하는데, 공정거래법에서 못할 이유가 없다고도 주장한다. 기업 분할로 규제를 쉽게 회피한 사례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과거 삼성에버랜드가 급식사업을 물적분할해 삼성웰스토리를 설립한 사례를 말한다. 이에 대해 반대 측은 상속·증여법과 공정거래법은 목적이 다르고, 간접 지분을 포함하는 경우 지분율 산정이 매우 복잡한데다 지분율이 수시로 변동하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선다.찬반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화S&C가 분할만으로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찬성 측 명분과 논리만 강화해 줄 수 있다는 판단을 한화 측이 내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 강화 쪽으로 무게중심이 확 쏠릴 수 있는 ‘트리거(방아쇠)’를 만들 필요가 없다. 한화 측은 “한화S&C 분할과 지분매각 이후에도 적절한 추가 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기업들이 주목하는 개정법안 내용 중에는 지분율 기준을 상장사나 비상장사 모두 10% 또는 20%로 낮추는 규정이 들어 있다. 지분율 조건이 20%로 낮아지면 당장 현대차그룹의 물류회사 현대글로비스와 광고대행사 이노션 같은 경우 규제 대상이 된다. 두 회사 모두 총수 일가가 전액 출자해 설립했다. 출발은 개인회사나 다름없었다는 말이다. 두 회사는 계열사들의 물류와 광고 물량을 기반으로 급성장했다.
사익편취 지분율 기준 산출할 때 간접 지분까지 포함
CJ·한국타이어그룹 등도 고심 중한진그룹은 문제가 된 총수 일가 지분을 최근 아예 계열사에 넘긴 케이스다. 한진그룹 계열 IT서비스 회사인 유니컨버스는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가 지분을 100% 보유한 회사였다. 지난해 11월 공정위는 계열사들이 부당하게 유니컨버스에 일감을 몰아줘 총수 일가가 부당 이익을 얻은 혐의로 조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한진그룹은 오너 일가가 보유한 지분을 대한항공에 무상 증여하는 방식으로 환원한다고 발표했다. 어설프게 지분율을 낮추는 방법보다는 아예 완전 정리를 선택했다. 아울러 조 사장은 대한항공 대표이사 외 모든 계열사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대한항공 외 5개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조 사장이 핵심 사업에 집중해 경영 효율화를 꾀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업계에서는 한화그룹·한진그룹에 이어 몇몇 기업들이 여러 방법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내다본다. CJ그룹의 IT서비스 계열사인 CJ올리브네트웍스는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사는 이재현 회장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과장 등 총수 일가 지분이 44%에 이른다. 롯데정보통신(롯데 총수 일가 지분 24.7%)도 상장을 추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타이어그룹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IT서비스 회사 엠프론티어와 타이어금형회사 엠케이테크놀로지 때문이다. 한국타이어그룹 계열사들이 이 두 회사와 지난해 거래한 규모는 1500억원에 이른다. 외부에서는 이 두 회사가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지주회사) 사장과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형제의 승계용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엠프론티어는 두 형제가 지분 24%씩을 보유하는 등 총수 일가 지분이 60%가 넘는다. 지난해 매출은 1094억원, 영업이익은 40억원인데, 매출의 90% 정도가 계열사에서 나왔다. 엠케이테크놀로지는 조현식 사장이 20.0%, 조현범 사장이 29.9%를 갖고 있다. 지난해 매출 573억원, 영업이익 177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사 역시 매출의 80%가량을 그룹 계열사와 거래에서 올렸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나 한국타이어 등과 합병을 단행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부친인 조양래 회장의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지분을 증여받으면서 세금을 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두 회사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 밖에도 영풍그룹·현대산업개발·넥센그룹·삼표그룹 등의 회사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관련해 언론에 오르내린다.한편 5월에 또 하나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에게 분할이나 계열분리 조치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대해 김상조 위원장은 청문회에서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었다. 여기에도 찬반 양론이 있을 것이다. 발의됐다고 해서 통과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이제 기업분할이나 계열 분리까지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다.필자는 국제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하는 미디어&리서치 ‘글로벌모니터’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