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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남성복 디자이너 우영미 솔리드 대표] “남자옷 가장 잘 짓는 패션 하우스가 목표”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
30년 전 ‘남성캐주얼’로 국내 시장 개척 ... 유럽, 중국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아

▎지난 6월 1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우영미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파리 패션계에서 ‘마담 우’로 통하는 그는 2011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에 선정됐다. / 사진:장진영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패션 시장에서 남성복은 곧 정장을 의미했다. 남자가 멋을 부리면 경박스러운 행동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1998년 탄생한 ‘솔리드옴드’는 단조로운 정장 일색이던 국내 남성복 시장에 ‘캐주얼’이란 개념을 처음 뿌리내린 브랜드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디자인과 과감한 실루엣, 정교한 디테일로 지난 30년간 국내 남성복 시장을 선도해 왔다.

2013년에는 홍콩을 시작으로 영국·중국·프랑스·미국·캐나다 등지에 연이어 매장을 열며 해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2014년 영국 런던의 4대 백화점으로 불리는 해롯에 입점했으며, 프랑스 파리의 쁘렝땅 백화점과 미국 뉴욕의 삭스 백화점에도 입점을 추진 중이다. 2025년까지 세계 주요 도시에 100개 매장을 내는 것이 목표다.

지난 6월 1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플래그십 스토어 ‘맨메이드’에서 솔리드옴드를 탄생시킨 우영미(58) 대표를 만났다. 내년이면 브랜드 탄생 30주년을 맞이하는 우 대표는 “대기업들이 점령하고 있는 척박한 한국 패션 시장에서 지금까지 살아 남아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며 “패션 생태계가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려면 새로운 브랜드와 캐릭터가 지속적으로 생겨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장’ 대신 ‘캐주얼’ 뿌리내린 토종 브랜드


▎지난 1월 열린 2017 가을/겨울 파리 컬렉션에서 우영미 대표는 오스카 와일드의 젊은 시절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들을 선보였다. / 사진:솔리드
“우리의 자랑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글로벌 브랜드로 성공했다는 거예요. 한국의 패션 비즈니스를 대기업들이 다하다 보니 디자이너들이 설 토양이 없어요. 젊은 디자이너들이 저를 보면서 가능성과 희망을 가졌으면 해요. 패션은 디자이너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사업입니다. 기초 없이 집을 짓는 것과 똑같죠. 패션 시장이 더욱 발전하려면 젊은 브랜드들이 지속적으로 나와 줘야 합니다. 요즘 해외 바이어나 기자들에게 한국 남자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세련됐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뿌듯해요. 우리 브랜드가 그런 부분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 대표는 전 세계 주류 패션계에서 남성복을 만드는 유일한 여성 디자이너다. 솔리드옴므로 국내 남성복 시장을 평정한 우 대표는 2002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 ‘WOOYOUNGMI’로 프랑스 파리에 진출, 본격적인 패션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세계 4대 패션쇼(파리·밀라노·런던·뉴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 철학을 뽐내며 최정상 디자이너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지난 2011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에 선정되며 해외 유명 브랜드 못지않은 대접을 받고 있다. 2014년부터는 3년 연속 ‘비즈니스 오브 패션(BOF)의 가장 영향력 있는 5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글로벌 패션계에서 ‘마담 우’로 통하는 그의 옷은 하이엔드를 지향한다. 시릴 비네론 까르띠에 최고경영자(CEO) 같은 명품업계 유명 인사들이 그의 주요 고객이다.

“해외 진출은 사업가로서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내린 결정이었어요. 한마디로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죠. 한국은 시장 규모가 워낙 작아 제가 만들고 싶은 옷만 할 수 없는 구조였어요. 때마침 해외 명품 브랜드가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국내 디자이너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죠. 브랜드를 지속하면서 하고 싶은 옷을 제대로 하려면 세계 무대에 반드시 나서야 한다고 느꼈어요. 최고의 시장에서 실력을 검증받으면 다른 시장은 당연히 따라올 거라는 생각에 파리행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우 대표는 최근 솔리드옴므의 영토를 확장하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럭셔리를 지향하는 우영미에 비해 대중적인 솔리드옴므는 글로벌 브랜드로 커 나갈 수 있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럽에서 이미 확인한 가능성을 토대로 향후 중국에서 더욱 속도를 높인다는 복안이다. 토털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지난해에는 액세서리 라인도 선보였다. 내년이나 내후년쯤에는 여성복 출시도 고민 중이다. 우 대표는 두 브랜드의 가장 큰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 “무엇보다 디자이너가 오너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고 답했다.

“패션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원해”

“우리의 목표는 우리 옷을 입은 사람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에요. 이는 디자이너 본연의 미션이라고도 할 수 있죠. 우리는 그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어요. 아직도 제 업무의 8할이 디자인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사실 회사 볼륨을 키우기로 작정했다면 벌써 했을 거예요. 20년 전부터 ‘세컨드 브랜드를 왜 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지겹도록 들었어요. ‘중국에 대리점을 열겠다’는 사람들도 수없이 찾아왔고 홈쇼핑 제안도 많았죠. 그런 유혹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 자문했지만 대답은 언제나 ‘노(no)’였어요. 패션은 습성 자체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 같아요. 특히 하이패션은 더욱 그렇죠. 대기업에 비해 더딜 수는 있겠지만 진정성을 갖고 순리대로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982년 성균관대 의상학과를 졸업한 우 대표는 당시 패션 학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반도패션(현 LG패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여성복 디자이너로 5년간 일한 우 대표는 자신 안에 내재한 캐릭터가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창업을 결심했다. 남자옷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미개척 분야에 도전장을 낸 우 대표는 30년이 지난 지금, 글로벌 패션 시장을 누비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다.

그의 꿈은 전세계에서 남자옷을 가장 잘 짓는 패션 하우스가 되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가 되기 위해선 엄청난 단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에게도 늘 자유로운 마인드를 주문하며 디자인 집단이 될 것을 강조한다. 수직적인 소통, 딱딱한 보고 체계로는 자유로운 의견이 오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패션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원해요. 동시에 아이덴티티도 필요하죠. 그게 없으면 자기 자리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정체성을 지키면서 새로운 옷으로 꾸준히 갈아입어야 해요. 패션은 속성상 안주할 수가 없어요. 변화와 혁신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비즈니스죠. 그런 걸 적당히 즐기면서 어려움을 헤쳐 나갈 계획입니다. 지난 30년간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잘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1390호 (201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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