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스트리트 스마트를 지향하라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경영연구원장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환공이 정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마당에서 수레바퀴를 깎던 장인 윤편이 “책에는 무엇이 적혀있습니까?”라고 물었다. 환공이 “성인의 말씀이다”라고 답하자, 목수는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로군요”라고 말했다. 환공은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이유를 말하지 못하면 너는 살아남지 못하리라”고 역정을 내었다. 장인이 답했다. “나무를 깎은 축이 바퀴에 수월하게 들어가면 헐거워서 덜거덕거리고, 꼭 끼면 잘 들어가지가 않습니다. 적당한 크기로 만들려면 경험과 느낌이 필요합니다. 이는 입으로 말할 수 없으며 글로 전할 수 없습니다. 성인들도 돌아가신 뒤에는 마음의 재주란 것이 전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읽으시는 책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텍스트의 한계를 지적하는 장자 윤편착륜에 나오는 촌철살인의 고사다. 요즘 표현으로 경험으로 축적되는 암묵지의 개념이 담겨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일이란 멀리서 보면 쉬워보여도 막상 직접 하려고 들면 만만치 않다. 나름대로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가치를 만들어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평범한 직업인들도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는 일도 쉽지 않다. 이런 와중에 일반인이 인문학을 접하는 지향점은 전공자와는 같을 수 없다. 물론 인문학을 모르고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지만, 인문학의 폭넓은 지식을 접하고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깨달아 삶을 깊이있고 풍부하게 대할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 이는 비단 인문학이 아니라 이른바 자연과학·사회과학 지식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근본적으로 지식은 삶의 도구이지 목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스마트카 등 21세기의 일상어가 된 스마트는 IT 기술 관점에서는 ‘세부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반응하고 처리하는 기능’을 뜻한다. 사람에게 적용시키면 ‘상황을 신속하게 이해하고 판단을 정확하게 하는 지적능력’을 뜻하는 스마트는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이 풍부한 ‘북 스마트(Book smart)’와 풍부한 현장경험과 정확한 판단능력을 갖춘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로 구분된다. 본래 스트리트 스마트는 미국의 위험한 도심을 걸을 때 주변을 살피면서 수상한 사람을 경계하며 안전을 확보하는 길거리의 감각을 의미했는데, 풍부한 현장경험을 통해 지혜와 통찰력을 보유한 사람의 의미가 추가됐다.

일반인의 인문학 학습방식은 텍스트의 추상적 지식을 사회생활의 현실적 경험으로 숙성시켜 깨달음의 폭을 넓혀나가는 스트리트 스마트가 핵심이다. 이는 흔히 말하는 학창시절 좋은 성적과 사회에서의 성취가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측면과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사업가의 스트리트 스마트가 학식있는 학자나 전문가의 북 스마트보다 훨씬 깊이있고 정확하게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세기 후반 우리나라 산업화 초창기를 이끈 1세대 창업주들의 많은 경우가 이른바 ‘가방 끈’은 짧았지만 스트리트 스마트의 통찰력으로 눈부신 성취를 이룬 기업가들이다. 책만 많이 읽고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황된 경우가 많고, 하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재탕이다. 경험만 있으면서 책으로 얻은 지식이 없으면 협소하고, 아집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책으로 얻은 지식이 현장의 경험과 접목되고 숙성돼야 북과 스트리트의 균형이 잡히기에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직업을 통한 일상적 경험이 기반이다.

일상생활의 경험을 통한 통찰의 힘을 보여주는 실화가 미국 마젤란 펀드를 세계 최대의 뮤추얼 펀드로 성장시킨 전설의 투자자 피터 린치다. 보스턴에서 태어난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11세 때부터 학비를 벌기 위해 골프장 캐디로 일했다. 골프장 손님들의 주식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으면서 투자업계를 알게 되었고, 대학을 마치고 1969년 월스트리트의 피델리티에 입사했다. 1977년 마젤란 펀드를 맡아 운용자산 1800만 달러를 1990년 은퇴하는 시점에서 140억 달러로 불렸다. 펀드매니저를 맡은 13년 간 연평균 투자수익률은 29.2%로 1만 달러를 초기에 투자했다면 13년 만에 27만 달러가 되었을 실적이다. 그는 발로 뛰어 얻은 정보가 고급 정보이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서는 투자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신념을 철저히 지켰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격언처럼 최전성기인 47세에 은퇴한 그의 비결은 ‘생활 속의 발견’이었다.

출근길에 도심 가게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서 사무실에서 먹는 일상에서 길모퉁이에 새로운 도너츠 가게가 문을 열었다. 호기심에 간간이 들러보니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에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가게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본사를 직접 방문해서 경영진을 만나 사업계획을 들어보니 유망하다는 판단이 내려져서 투자한 기업이 후일 20배의 수익을 안겨준 ‘던킨도너츠’였다. 이처럼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관찰한 현상을 보고 그 이면에 있는 흐름을 분석하고 투자해 성공한 사례가 많다. 캘리포니아 여행길에서 맛본 부리토에 매료돼 관심을 가지게 된 멕시칸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타코 벨’, 주변 친지들이 잇따라 구매하던 자동차 ‘볼보’, 딸들이 집에서 사용하려고 구입한 컴퓨터와 회사 시스템관리자가 업무용으로 구입한 컴퓨터의 제조사가 동일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애플 컴퓨터’, 유행에 민감한 딸들과 나선 쇼핑에서 접하게 된 의류회사 ‘GAP’…. 일상생활에서 미래의 유망 주식을 발굴하는 방식으로 사업 초창기 회사에 투자해 기록적인 수익률을 올렸다. 그는 이러한 ‘생활 속의 발견’을 일반인들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화학탱크 트럭기사의 경우, 일감이 많아지면 호경기가 시작되는 것이니 관련 주식을 사면 되고, 동네수퍼 주인은 판매대에 진열된 신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식음료 기업에 관심을 가지는 식이다. 이른바 명문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고액 연봉의 투자분석가들도 책상에서 보지 못하는 부분을 현장의 일반인들이 감지해 성공적인 투자자가 될 수 있다는 경험담이다.

피터 린치의 일화는 자신의 직업과 일상생활을 통한 경험이 결합돼 만들어지는 가치를 잘 보여준다. 이는 비단 투자 분야뿐 만이 아니라 인문학을 포함한 어떤 영역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기술의 발달로 전문가와 일반인의 지식격차가 급격히 축소된 현 시대에는 특히 그러하다. 인문학 학습의 필요성을 느끼면 자신의 생활과 직업을 기반으로 교양·취미 등의 형태로 관심이 가고 익숙한 영역에서 텍스트로 지식을 얻고 경험으로 숙성시켜 스트리트 스마트를 지향하는 방향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395호 (2017.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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