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상사기관·상동기관을 아시나요?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요즘 ‘4차 산업혁명’이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조찬 세미나의 단골 주제도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이 새로운 산업혁명도 3차 산업의 주역 중 하나였던 정보기술(IT)이 주도하는 것은 여전하다. 그래서인지 3차 산업혁명이 한참 진행되던 시절에 회자됐던 ‘아날로그(analogue)’와 ‘디지털(digital)’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빈도 높게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강연 중에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필요한 기업의 인재상’과 같은 주제를 다룬 것도 있다. 이 중에서 필자가 인상 깊게 들은 강연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디지털의 두뇌를 가지고 아날로그의 얼굴로 표현하는 인재가 바람직하다’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경제와 사회가 디지털화 되면 될수록 사람들의 소외감은 더 커져서, 고객을 설득하는 방법은 ‘인간적인 감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들은 몇 년 전부터 그리스·로마의 고전 등 인문학 교육을 오히려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아날로그’라는 단어 자체가 이런 개념과 딱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원래 뜻이 ‘유사한’ ‘상사(相似)의’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아날로그라는 단어는 개념상 디지털의 반대어로 ‘기계식, 다이얼 식’의 뜻으로 주로 쓰여지고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 단어가 이런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1970년대 초에 ‘액정(liquid crystal)’ 손목시계가 처음 시판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 간다. 이 시계는 시간이 ‘12:00’처럼 숫자로 표시됐다. 일명 ‘디지털 방식’이다. 내부의 작동 방식도 톱니바퀴 등을 사용한 종래의 기계식과는 달리 ‘전자식’이었다.

그러나 이 시계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랫동안 기계식 시계 자판에 익숙해진 소비자의 수요를 간파한 회사들이 새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내부의 작동방식은 그대로 ‘전자식’이되 종래처럼 시침·분침 등으로 시간을 표시하는 제품이 바로 그것이다. 새 형태의 시계는 ‘아날로그’ 시계라 불렸다. 작동 방식은 ‘전자식’이나 시간 표시는 기계식 시계와 ‘유사한(analogous)’ 방식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리라. 이후부터 갈수록 ‘아날로그’란 단어는 아예 ‘디지털’의 반대 개념으로 쓰여지게 됐다. 허나 단어의 기원을 살펴보면 앞에서 언급한 ‘디지털 두뇌를 가지고 아날로그의 얼굴로 표현하는’ 인재상이 바로 ‘아날로그’ 자체인 것을 알 수 있다.

아날로그란 말이 생물학에서도 널리 쓰이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독자분들도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상동기관’과 ‘상사기관’에 대해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상동기관이란 그 근본은 동일하지만 이후의 진화 과정이 달라 기능이나 형태는 달라진 경우이다. 예를 들면 사람의 팔, 개의 앞다리, 고래의 지느러미는 기능이나 형태는 다르지만 해부학적으로는 서로 비슷한 골격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사기관은 기원이 서로 다르지만 형태나 기능이 매우 닮은 기관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새의 날개와 곤충의 날개는 모두 비행 기관이지만, 전자는 앞다리가 변한 것이고 후자는 껍질 일부가 변해서 생긴 것이다. 고래의 지느러미와 상어의 앞 지느러미는 서로 비슷하게 생겼고 기능도 같지만 포유류인 고래의 지느러미는 앞다리가 변한 것이어서 어류인 상어의 앞 지느러미와는 기원이 다르다. 이 상사기관은 영어로 ‘analogous organ’, 즉 ‘아날로그 기관’이다. 이 단어가 본래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상사기관 이야기는 국가의 경제정책에도 큰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2007년 길을 잃고 런던의 테임즈강을 40마일가량 거슬러 올라 와 죽은 고래 한 마리가 있었다. 이 고래의 사체를 해부한 결과 심한 ‘관절염’을 않고 있음이 밝혀졌다. 고래가 포유류이기 때문이다. 과문한 필자가 아는 한 어류에는 관절염이 없다. 만약 수족관에서 키우는 범고래의 지느러미에 관절염이 생겼다고 하자. 만약 이로 인한 고래의 통증을, 상처로 생긴 염증으로 인한 상어의 앞 지느러미 통증과 같다고 보고 항생제로만 치료한다면 별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 새 정부는 초강력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서울 등의 지역에서 아파트 값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다주택 소유자 등 ‘투기수요’ 탓에 집값이 올랐으니 이를 잡아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정책이다. 대책 발표 이후 급매물이 급증하고 매도호가도 많이 떨어지는 모습이어서 적어도 당장은 새 정책이 효과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인 효과는 이 대책이 집값 폭등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겨냥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집값 앙등의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10여년 전 필자가 한 민간경제연구소에 다닐 때도 집값 폭등이 문제가 됐었다. 2000년대 들어 집값은 계속 큰 폭으로 올랐다. 여러 변수를 사용한 통계분석 결과 ‘금리 (및 통화량)’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 때만큼 정교한 분석은 아니지만 2009년 이후의 데이터로 통계분석을 해보아도 결과가 비슷하게 나온다. 또 더 간단한 분석이기는 하지만 지난 15년 간의 통계를 보면 전국 주택 가격지수와 한국은행 기준금리와의 ‘상관계수’는 -0.64로서 큰 폭의 ‘부(-)’의 관계를 보임을 알 수 있다. 두 변수가 완벽하게 반대로 움직이는 상관계수의 수준이 -1임에 비추어보면 이는 매우 큰 숫자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릴 때마다 집값은 뛰었다는 뜻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기준금리를 여섯 차례나 내렸다. 그러니 집값이 안 오르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동안 경기는 별로 좋아지지 않았으니 금리 인하가 경기 부양에는 큰 힘을 발휘 못하고 집값만 뛰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일리 있어 보인다.

사실 금리 인하가 경기 회복보다 집값 앙등의 효과를 더 크게 발휘했고, 뛴 집값을 잡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 경기 침체 심화로 이어져 다시 금리 인하로 이어진 악순환은 2000년대 들어 진보·보수 정부을 막론하고 여러 번 반복됐다. 사실 우리처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에서는 금리정책의 경기 부양 효과가 적다는 것은 이미 일본에서 드러났다. 또 세계 유일의 전세제도가 있는 이 나라에서는 금리 인하→전세값 상승→대출 및 가계부채 증가→소비 위축의 경로가 발생해 경기 부양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교훈은 중앙은행이나 정책당국도 잘 터득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므로 앞으로 부동산 관련 정책은 그 근본 원인을 살펴 통화당국과 정책당국이 좀 더 지혜롭게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금리 인하는 정말로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사족 하나. 새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경제정책 기조로 삼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상사기관 이야기는 결과가 같다고 원인은 같지 않으며, 더구나 결과(소득)를 같게 만든다고 그 원인(경제 성장)이 같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혹시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겠다는 정책이 이와 비슷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1397호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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