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모든 생물의 목표함수는 생존과 번식이다. 생물들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가장 유리한 생활방식을 선택해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집단구조를 형성했다. 평소에는 홀로 생활하면서 짝짓기 등 필요할 때만 다른 개체를 만나는 경우, 단순히 모여있기만 해도 장점이 있는 군집형, 집단을 이뤄 위계질서와 의사소통 구조의 조직적 특성을 띠는 유형이 있다.야생상태에서 집단 규모는 임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개체의 특성에 따라 최적으로 설정된다. 무리의 구성원이 많을수록 힘이 커져서 적으로부터 안전하지만, 무리의 움직임이 둔하고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기 어려워 전체적 위험성이 높아진다. 이와 달리 무리의 구성원이 너무 적으면 움직임이 빠르고 적은 식량만 있어도 굶주리지 않아도 되지만, 적들의 공격에 취약해진다.따라서 무리가 커짐에 따라 복잡해지는 위계질서·의사소통 등의 요인에 주변환경과 개체의 특성을 반영해 무리의 적정 규모가 형성되며 이는 본능적으로 유지된다. 야생생활에서도 적정 범위를 넘어서면 분가 형태로 규모를 다운사이징해서 생존력을 높인다. 고등어·정어리 등 막연히 무리 짓는 본능만 있는 어류와 달리 무리 짓는 포유류들은 조직 내 위계질서와 분업구조를 형성한다. 들개·늑대·하이에나·사자·침팬지 등 집단은 리더의 존재와 역할, 내부 서열, 암수 간의 역할 분담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형성되며 다음 세대로 이전되기도 한다.인간이 형성하는 집단의 자연적 크기에 대해서는 로빈 던바 박사가 확립한 ‘던바의 숫자’가 유명하다. 고대 수렵채집 사회에서 집단이 커질수록 사냥이 잘 되고, 맹수에 대항하기도 쉬워지는 장점이 있지만, 지능과 감정이 있는 영장류의 경우에는 집단 내부 갈등도 비례해서 커지고 일종의 권력투쟁도 심화된다. 따라서 집단 구성의 이익과 비용의 접점에서 고대 인류의 적절한 규모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전제하고 고대세계 개별 단위집단의 평균 인원이 150명 내외였음에 주목했다.200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에렉투스의 뇌 용적은 700~800cc였고 약 70~80명의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20~30만 년 전에 출현한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의 뇌 용적은 1300~1400cc로 늘어났고, 집단 규모도 2배가량으로 증가한 150명으로 커졌다. 인류가 신석기 농경을 시작한 지는 1만년 내외이지만, 호모에렉투스 이후 구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수십 만년 동안 수렵과 채취생활을 하면서 형성된 진화적 최적 집단 규모인 150명이 인간의 행동방식에 본능수준으로 입력되어 있을 것으로 결론짓고 신석기문명 발생 이후에도 150명 단위가 다양한 조직의 기본 구성 단위로 기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던바의 법칙’에서 150명의 규모가 적정 수준으로 수렴되면서 정교한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가 발달하면서 일상적 잡담이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됐다. 호모에렉투스 단계인 80명 이내의 집단에서는 구성원들끼리 서로 직접 교류하면서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 단계에서 150명 수준으로 구성원이 늘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는 집단 내 모든 사람과의 직접적 교류에 한계가 생겨나면서 잘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 위험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서로간의 평판·신뢰성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생겨났고, 정교한 언어가 발달하고 잡담시간이 많아졌다는 분석이다.원시사회에서 평판이 전달되는 경로를 보자. 예를 들어 A와 B는 친구이다. B는 C와 친구이다. A와 C는 서로 모른다. 만약 C가 A에게 닭 한 마리를 빌려달라고 하면 C를 잘 모르는 A는 친구 B에게 C의 평판과 신뢰성을 물어본다. 만약 B가 C를 못 믿을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A는 C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런식으로 A, B, C가 각각 서로에 대한 평판과 신뢰성 정보를 계속 교환하기 위해 언어가 발달했다.현대사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계속 만나고, 서로 잡담한다. 21세기의 일상생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해여 TV 연예프로그램도 근본적으로 잡담의 성격이다. 끊임없는 잡담을 통해 얻어가는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이해관계를 가진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다. 만약 갑이 잘 모르는 사람 을에게 동업을 제안 받았다면, 갑은 먼저 을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사기꾼인지부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아 볼 것이다. 만약 갑이 을의 정체를 도저히 알아낼 수 없으면, 을은 갑을 속이고 이익을 취할 수 있다.농경과 정착생활이 시작된 기원전 6세기 무렵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산재해 있던 마을인구는 150명 내외였고, 11세기 노르 만족 출신으로 영국 왕위에 오른 정복왕 윌리엄이 공격했던 당시 영국의 마을인구 150명은 18세기 산업혁명 전까지 영국 농촌의 표준 규모였다. 고대 로마군단의 기간 전투조직이었던 백인대(켄투리아)는 120명이며, 오늘날 육군 중대병력도 120명 내외이다. 일반 조직에서는 계층적 관리구조 없이 1인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직원의 숫자를 최대 150명 내외로 상정한다.경험이 압축돼 뿌리내린 본능에 기반한 자연수의 강력함은 현대에서 성공하는 기업의 조직에서도 볼 수 있다. 현대 기업 조직에도 ‘던바의 법칙’이 투영돼 있는 것이다. 1959년 교세라를 창업해서 당대에 글로벌 우량기업으로 성장시킨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아메바 경영이라는 독특한 조직운영 방식으로 유명하다.아메바 경영의 요체는 각각 사업성격에 맞는 적절한 사업 규모와 가장 밀접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 숫자를 조합해 조직을 구성하고 지속적으로 최적화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던바의 법칙’처럼 인간의 본능화된 숫자를 기반으로 조직을 구성하니 리더십과 의사소통이 적절히 이루어질 것이고, 또한 이를 고정해 화석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적과 상황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바꾸니 내부 경쟁 및 협력을 통해서 자연스러운 환경적응이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아메바 경영이라는 이름처럼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조직에 적용시킨 개념이다.아메바 경영과 양상은 다를지라도 현대 인간이 만든 수십만 명의 거대한 조직도 조직의 최하단까지 내려가 보면 100~150명 단위의 단위조직이 위계질서와 네트워크로 묶여져 있는 거미줄과 같은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수백 만년 동안 축적된 진화적 본능이 수 만년 역사의 문명과 제도에 잠재돼 있는 사례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