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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집단휴업 논란 그 후] 보육대란 위기 끝나지 않았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정부, 국공립 유치원 확대 고수 가능성 커 … 강화되는 정부의 회계감사 불씨도 여전

▎9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최정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사장과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전국 지회장들이 ‘휴업 철회 기자회견’을 하며 사과의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얼마나 지원을 받는지도 문제지만, 간섭하는 시어머니가 없었으면 하는 게 사립유치원의 진짜 속내다”. 한 사립유치원 관계자의 말이다. 사립유치원들이 집단휴업을 철회하면서 학부모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보육대란 위기가 일단락됐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는 그대로 살아있다. 정부는 파업의 표면적인 이유인 국공립 유치원 확대를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사립유치원 측은 재정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갈수록 강화되는 정부의 회계감사에 대한 유치원 업계의 불만을 이번 사태의 핵심 문제로 지목한다.

사립유치원 이익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집단 휴업계획을 철회하면서 ‘9·18 보육대란’으로 기록될 뻔했던 사립유치원 집단휴업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한유총 지도부는 9월15일 교육부와 합의 끝에 휴업철회에 합의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9월16일 새벽, 한유총 투쟁위원회가 “휴업을 강행한다”며 합의를 뒤집었다. 그러자 이날 밤 지도부가 “휴업을 철회한다”고 합의를 재확인했다. 이어 9월17일에 국회에서 휴업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지난 6월 말에도 한유총은 재정 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집단 휴원을 벌이겠다고 정부를 압박하다가 휴업일을 하루 앞두고 교육부와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집단 휴업을 철회한 바 있다.

역풍은 거셌다. 관련 소식이 알려지면서 학부모 사이에서 사립유치원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대부분의 유치원이 파업을 철회했지만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파업 철회를 하지 않은 유치원이 어딘지 공유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휴업 여부를 둘러싸고 사립 유치원들이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여론에도 휴업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파업을 주도한 사립유치원 업계의 요구사항 대부분이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립유치원이 집단휴업 카드까지 들고 나오는 표면적인 이유는 국공립 유치원 취학률을 현재 25%에서 2022년까지 40%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계획 때문이다. 사립유치원 입장에서는 국공립유치원이 더 많아지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한유총의 주장에 따르면 국공립유치원의 학부모 추가 부담액은 공짜, 사립은 22만원이다. 원아가 국공립유치원으로 몰리는 이유다.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유치원 줄 서서 입장하는 건 국공립의 얘기”라며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원아 수가 줄어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공립유치원을 확대하면 사립유치원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정 투입 늘려야” vs “재정 운영 투명성 확보해야”


이에 따라 한유총은 사립유치원에 정부 지원금을 더 투입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공립 유치원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재정 지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교육부는 사립유치원의 재정 운영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예산 증액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립유치원 설립자는 유치원이 사유재산을 들여 설립한 개인 재산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만큼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립유치원이 정부와의 줄다리기를 통해 정말 얻고자 하는 것은 재정회계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사립유치원 관계자는 “회계 자율성을 두고 정부와 업계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접점을 찾는지가 사태 해결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정회계 투명성과 감사 강화는 사립유치원 업계가 줄곧 강하게 반발해온 사안이다. 사립유치원의 재무회계는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이 규칙은 법인 차원에서 적용되는 규칙이다. 사립유치원 대다수는 법인이 아닌 사인(개인)이 운영자다. 한국교육연구원의 2016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4291개 사립유치원 가운데 3739개(87%)가 사인이 운영하는 유치원이다. 이로 인해 사인이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의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하지 못하는 형태로 운영돼왔다. 따라서 사인이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에 적용 가능한 별도의 규칙을 제정할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여기에 최근 누리과정 등의 도입으로 국공립유치원뿐 아니라 사립유치원에 대한 국가 지원이 늘어나면서 사립유치원 회계감사가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그동안 정부는 만 3~5세 유아 대상 국가 공통 과정인 ‘누리과정’을 도입해 매년 12조원 안팎으로 지난 4년 간 전 계층에게 유아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최근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이 9개 광역시·도 어린이집과 유치원 95곳을 점검한 결과 91곳(96%)에서 운영비 부당 사용 사례 609건(205억원)이 적발되는 등, 사립유치원의 재정 투명성이 도마에 올랐다. 일부 사립유치원들이 감사 저지를 위해 골드바까지 동원한 로비·청탁을 하는가 하면 운영 자금을 설립자 개인의 보험료, 가방 구입비, 자녀 학비 등으로 유용한 사실까지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고가 투입된 유치원 재정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해묵은 과제인 유아교육(유치원)-보육(어린이집) 통합(유보통합)과도 관계가 있다. 본격적인 유보통합 추진에 앞서 원활한 유보통합을 위해 재무·회계 규칙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만 0~2세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만 3~5세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나뉘어 있다. 다니는 기관에 따라 교육비도, 교육과정도 천차만별이다.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따라 교육부와 교육청의 관리·감독을 받지만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상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돼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특히 누리과정이 생기면서 유아교육과 보육의 이원화 문제는 더욱 부각됐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유보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사립유치원 재무회계 규칙’ 제정을 추진했다. 유치원 예결산을 학부모에게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재산변동 사항을 관할청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한유총이 사업체에 대한 지나친 간섭을 이유로 강력 반발하면서 공청회도 열지 못하고 무산됐다. 대신 교육부는 올해 초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을 개정했다. 여기에는 유치원을 사립학교처럼 여겨 회계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립유치원은 정부가 전 계층에 지원하는 ‘공통과정지원금’,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학급운영비 등 ‘보조금’, 학부모 등이 부담하는 ‘수익자부담수입’을 각각 구분해 회계장부에 세입(수입)재원을 명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또 세입·세출 결산표를 신설해, 세출(지출)예산 과목에도 지원금, 보조금, 부모 부담 수입, 기타 등 세입 재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해 9월 시행되면서 2018학년도 회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될 전망이다. 올해 사립유치원 측이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 배경이다.

사적 재산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사진:ⓒgetty images bank
정부는 사립유치원의 회계 운영과 감사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현실적 여건을 고려할 때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사립유치원이 교육이라는 공공성을 띠는 기관이기도 하지만, 설립한 투자자가 사회공익사업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생계유지의 목적도 있었으므로 이들에 대한 사적 재산도 인정해줘야 한다고 본다. 설립 과정에서의 차입금이나 이자, 장기 시설투자 비용 등을 회계에 어떻게 계상할 것인지도 논란거리다. 사립유치원 측은 “현행의 재무회계 규칙에는 유치원의 설립시 투입된 재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며 “유치원을 설립할 때 투입된 재원이 국민의 세금에 의한 재정이라면 당연히 투명성이 강화돼야 하지만 개인의 재산이 투입된 것이라면 재정만큼의 투명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사의 주기와 방법에 대해서도 관할 시·도교육청의 감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는 “과거 사립유치원이 정부를 대신해 유아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그들을 무조건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붙일 게 아니라 사립·국공립유치원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1403호 (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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