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한국 양궁의 경쟁력, 그리고 국가 경쟁력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9월 28일 서로 무관할 듯싶은 뉴스 두 건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둘 다 우연히도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기구에서 시작된 뉴스였다. 하나는 스위스 로잔에 자리한 세계양궁연맹(WA)이 한국의 대표 선발 결과에 놀랐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경제포럼(WEF)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을 지난해와 똑같이 26위로 평가했다는 내용이다.

먼저 양궁 소식을 보자. 11월에 멕시코에서 2017년 세계양궁선수권대회가 개최될 예정인데, 이 대회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기보배 선수가 한국 대표팀에서 탈락했다는 내용이 WA 홈페이지에 머리기사로 올랐다고 한다. 기보배 선수는 2년 전 코펜하겐에서 열린 지난 대회의 개인전에서 우승한 디펜딩 챔피언이자, 여자 리커브 세계 랭킹 2위의 강자다. 다가오는 세계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것은 분명히 큰 이변일 것이다. 그러나 WA가 놀란 까닭은 다른 데에 있다. 전관예우(?)는 고사하고 무정할 만큼 철저하게 기록과 원칙대로 한국 대표선수를 선발하는 과정에 새삼 놀란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한국 양궁이 왜 세계 최강인지, 그 비결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2017년 WEF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는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에 나아진 게 없다는 것 말고는 새로울 게 없는 소식이다. 우리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007년 역대 최고인 11위에서 꾸준히 하락해 2014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26위에서 머물러 있다.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우리의 국가경쟁력이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이유를 노동(73위)과 금융(74위) 등 만성적인 취약 분야 탓으로 설명한다. ‘노동시장 효율성’ 순위는 지난해 77위에서 올해 73위로 네 계단 상승했다고 하지만 경쟁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최하위 수준이다. 그중에 특히 열악한 항목은 노사 간 협력(130위)과 정리해고비용(112위)이다.

그러나 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필자가 관심이 있는 분야는 제도이다. 왜냐하면 애쓰모글루(Acemoglu)와 로빈슨(Robinson) 교수가 공동 집필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2012), 그리고 김승욱 교수가 그의 저서 [제도의 힘](2015)에서 강조했듯이 제도야말로 국가의 번영을 좌우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도는 한 나라의 중장기 경제성장률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다. 흔히들 경제가 성장하려면 혁신, 자본축적,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노스(North)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자본의 축적, 혁신과 같은 모든 기업가적 활동은 규제를 비롯한 그 나라의 제도에 의해 좌우되는 내생변수이다. 따라서 종전에 성장의 동인이라고 믿었던 변수들은 성장 그 자체이지, 성장의 원인은 아니다.

제도가 중요하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WEF는 2006년부터 각 나라의 제도 수준을 총 21개 항목으로 나누어 비교하고 있다. 그 결과 2017년 한국의 제도경쟁력은 58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만 놓고 보면 최하위 수준이다. 경쟁국보다 비교 열위에 있는 제도가 경제회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다. 투자자 보호 강도(13위)를 제외한 20개 항목이 모두 개선이 필요한 문제투성이다. 그중에서 특히 열악한 공공 부문은 정부 규제 부담(95위), 정책 결정의 투명성(98위), 정치인에 대한 신뢰(90위), 공무원 의사결정의 편파성(82위), 사법부 독립성(72위) 등이다. 민간제도 중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부문은 기업 이사회의 유효성(109위), 기업경영윤리(90위), 소수주주의 이익보호(99위) 등이다.

한국 양궁은 왜 세계 최강이고 국가 경쟁력은 왜 열악한가. 결국 각각의 제도 경쟁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양궁 대표 선발제도는 WA가 놀랄 만큼 경쟁력이 뛰어나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의 역량과 노력도 남다를 것이다. 그래도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게 된 비결을 하나 꼽으라면 선발제도의 경쟁력이다.

대표선수를 선발하는 규칙을 객관적인 기록 중심으로 투명하고 예측가능하게 만들고, 원칙대로 무정하게 집행하는 제도가 양궁 경쟁력의 원천이다. 그 과정에서 기보배 선수처럼 세계 톱 랭커가 안타깝게 탈락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런 까닭에 기존 국가대표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늘 분발하고, 새로운 선수들도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끊임없이 생기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제도는 어떤가. WEF 평가 결과에 따르면 경제활동 게임의 규칙에 해당하는 규제는 많고 복잡해서 지키기 쉽지 않고(규제부담 95위), 정책 결정 과정은 투명성과 거리가 멀고(98위), 법과 정책 집행에서 원칙보다 편파성이 크게 작용하는(82위) 등 전반적으로 참담한 수준이다. 사실상 국가 제도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이 저조한 이유를 노동시장, 금융시장과 같은 특정 시장의 문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위기의식이 없는 너무나 한가한 태도일 것이다.

제도의 위기는 달리 보면 신뢰 자본의 위기다. 우리나라의 신뢰 자본이 낮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올 초의 에델만 신뢰지수에서도 우리나라 국민이 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28%, 기업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9%로 조사 대상 28개국 중 최하위로 나타난 바 있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한 까닭은 공공 및 민간부문 모두에서 제도 경쟁력이 열악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 재도약의 기회를 잡으려면 무엇보다 제도혁신을 서둘러야 한다. 양궁 대표 선발 제도처럼 국가 제도 또한 공정하고 투명하고 예측가능하게 규칙을 바로 세우고 원칙대로 집행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규칙의 품질과 적용·판단에 이르는 제도 전반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이를 그대로 둔 채 선수와 감독을 채근한다고 해서 경기력이 크게 높아질 수 없는 법이다. 같은 이치로 제도혁신이 필요한 곳에 제도를 그대로 두고 정책적 노력을 강화한다고 해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제도적 접근과 정책적 접근을 구분하고, 국가의 앞날을 위해 제도혁신이 필요한 분야는 더 늦기 전에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적 제도이든 또는 민간 제도이든 기존의 규칙을 바꾸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기존의 규칙을 토대로 수많은 이해구조가 형성돼 있어 문제투성이 규칙을 바꾸는 일에도 많은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역대 정권들이 규제개혁을 주창했지만 제도혁신에 이르지 못하고 정책적 조정에 그쳤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제도혁신을 제대로 하려면 정치 지도자의 기업가정신이 필수조건이다.

1405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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