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화폐 보유자 노린 해킹, 새로운 보안 이슈로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보유자를 정조준한 해킹 사건이 줄줄이 터지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등 직접적으로 해킹을 당한 적이 없는 코인원 사용자조차 불과 1시간여 동안 e메일과 유선전화를 이용한 사회공학적 해킹에 공격당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가상화폐 보유자를 노린 해킹이 새로운 보안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지난 6월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은 자사 고객의 개인정보 3만건이 해킹으로 유출됐다. 그후 빗썸 이용자 중 일부는 보이스피싱 세력 등이 자신들의 가상화폐를 탈취했다고 주장했다. 4월에는 가상화폐 거래소 야피존이 해킹 당했다. 9월에는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이즈가 해킹을 당해 이 회사 고객의 전자지갑에서 21억원어치 가상화폐가 사라졌다.가상화폐 소유자를 노린 사회공학적 해킹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말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스마트폰을 해킹하는 방식으로 가상화폐를 탈취한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지난 8월 해커가 비트코인 보유자의 스마트폰을 해킹해 가상화폐를 탈취한 사례를 자세하게 보도하며 이 같은 사회공학적 해킹이 미국 본토 외에도 인도네시아, 터키 등에서 광범위하게 시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해커는 비트코인 보유자의 스마트폰을 해킹하기 위해 이동통신사 고객센터를 상대로 보이스피싱을 시도해 해커가 보유한 스마트폰으로 기기변경을 요청했다. 이동통신사가 기기변경 요청을 받아들이자 해커는 기존 비밀번호를 모두 바꾸고 전자 지갑에서 가상화폐를 모두 이동시켰다.뉴욕타임스에 스마트폰 탈취 시도를 알린 미국 블록체인 보안 업체 블록시어의 대니 양 최고경영자(CEO)는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영토에서 벌어진 사회공학적 해킹에 대해서는 확답을 줄 수 없지만, 한국계가 미국에서 스마트폰 해킹을 당한 사실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동통신사 고객센터에서 경험이 적은 상담원의 빈틈을 노린 해커가 전화번호를 옮기면 해당 스마트폰에 가상화폐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된 경우 모든 가상화폐를 탈취할 수 있다”며 “개인은 유비키와 같은 하드웨어로 된 2차 보안장치를 구비하는 것 외에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조언했다.경찰청은 본지의 정보공개청구 요청과 관련해 “이동통신사 고객센터 대상의 보이스피싱 등의 사건이 있었는지는 파악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내 이동통신 3사는 인터넷이나 전화로 기기변경을 할 때는 신분 확인과 관련된 문서를 팩스로 받도록 돼 있거나 공인인증서를 사용해야 하며, 고객센터 대상의 보이스피싱 공격 등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조만간 이 정보를 활용한 2차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회공학적 해킹이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지난해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가 1000만 명의 개인정보를 해킹당한 최악의 보안사고에서도 사회공학적 해킹 기법이 동원됐다. 해커는 인터파크의 특정 직원에게 악성코드가 심겨진 첨부파일을 설치하게 해 회사 데이터베이스에 침투했다. 해커는 먼저 이 직원의 가족 e메일을 해킹한 후 가족을 사칭해 직원에게 e메일을 보냈고, 첨부파일에 악성코드가 숨겨진 화면보호기(가족사진으로 구성)를 보내 열어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 직원은 가족으로부터 온 e메일에 첨부된 가족사진이 실제로 담겨있는 화면 보호기가 해커의 공격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2014년 벌어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원자력발전소 해킹 사건에도 사회공학적 해킹 기법이 쓰였다. 해커는 한수원 퇴직자의 e메일을 해킹했고, 그 계정으로 현직 직원들에게 ‘도면입니다’라는 제목의 e메일을 첨부파일과 함께 보냈다. 동료였던 사람이 도면이라며 보냈으니 평소라면 열어보지 않았을 첨부파일을 무심코 열어본 것이다.
인터파크·한국수력원자력도 사회공학적 해킹에 당해사회공학적 해킹 수법은 다양하다. 해외 보안 컨퍼런스에선 악성 코드가 들어있는 USB를 특정 회사 로고가 있는 목줄에 묶어 그 회사 복도에 놔둔 것, 사무실에 침입해 어깨너머로 특정 직원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 사무실 쓰레기를 뒤져서 정보를 얻은 것, 보안 컨퍼런스에 참석한 사용자들과 가짜 명함으로 교류하면서 회사 보안 담당자들의 신뢰를 얻어낸 것 등이 있었다.해외에선 방지책 연구도 활발하지만 국내에선 사회공학적 해킹이란 개념조차 낯설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보안 관련 가장 권위 있는 컨퍼런스인 블랙캣/데프콘에 참가하면 사회공학적 해킹 세션이 따로 있고 인기도 가장 많지만, 국내에선 아직까지 보안 기술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사회공학적 해킹이 문제가 되는 것은 보안의 가장 약한 연결 고리를 공략하기 때문이다. 바로 사람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해커 케빈 미트닉은 “인터넷 보안의 최대 맹점은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승주 교수는 “아무리 좋은 보안장치가 있다고 해도 그 접점엔 (약한 고리인) 사람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한 IT기업에서 자사 보안망을 해커와 같은 방법으로 미리 해킹해 약점을 찾는 ‘침투 테스터’로 일하고 있는 한 해커는 기업에 침투할 때 사람을 공격하는 게 가장 쉽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이니까 위험할 줄 알면서도 어떤 행동을 한다”며 “보안 사고가 터지는 것을 기술로 다 막기 힘든 이유는 사람이 보안에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공학적 해킹의 가장 흔한 예는 보이스피싱이다. 김승주 교수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조직은 자신들을 단속하던 경찰을 고용하고, 시나리오 작가를 영입해 사기 수법을 정교하게 다듬는다고 한다. 김 교수는 “사람을 속이겠다고 작정하면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사회공학적 해킹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미국 회사들은 서비스나 제품을 개발하면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회공학적 해킹에 대비해 예상 가능한 침투 시나리오와 이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한다. 사용하는 사람의 실수까지 제품 개발 때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은 심리학자들과도 협업한다. 예컨대 경고 메시지 하나 보낼 때도 어떻게 하면 사용자가 실수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학회에서 발표한다.
보안 시스템 뛰어나도 사람이 취약점
※ 사회공학적 해킹 - 시스템이 아닌 사람의 취약점을 공략해 원하는 정보를 얻는 공격 기법이다. 대표적인 것이 개인 금융정보와 자산 탈취를 목적으로 한 보이스피싱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e메일, 인터넷 메신저, 트위터 등을 통해 사람에게 접근하는 채널이 다각화됨에 따라 지인으로 가장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