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가 현실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는 나라
‘미얀마를 조국으로 부르는 사람들’ 발언에 그쳐
|
내정 간섭이나 종교 간 대결 양상으로 비칠까 우려교황이 ‘로힝야족’이라는 용어 대신 ‘미얀마를 조국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같은 복잡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이다. 교황은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집권 이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온 ‘소수민족 간 평화 정착’ 사업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교황은 “종교적인 차이가 분열과 불신의 이유가 돼선 안 된다”라며 “오히려 화합과 용서, 관용과 현명한 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힝야족 탄압 중지를 에둘러 요청한 셈이다.11월 30일 미얀마의 이웃 무슬림 국가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글라데시 사회가 미얀마에서 대피한 로힝야족 난민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데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교황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대통령궁에서 압둘 하미드 대통령을 만난 후 연설에서 “방글라데시 사회는 대규모로 유입된 난민들에게 임시 거처와 생필품을 주는 등 인도주의 손길을 가장 분명하게 뻗어줬다”고 치하했다. 교황은 “국제사회가 대규모 난민 사태를 낳은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시급한 인도주의적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방글라데시에 즉각 물질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힝야족을 염두에 둔 발언이지만 로힝야라는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교황은 그런 미얀마에서 가톨릭 신도들에게 용서와 연민부터 설교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교황은 11월 29일 최대 도시 양곤의 축구경기장에서 20만 명의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 강론에서 교황은 “복수의 유혹이 있더라도 용서하고 연민의 마음을 가져라”며 “복수는 하느님의 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미얀마인들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처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라고 전제한 후 이처럼 용서와 연민을 언급했다.미얀마에는 약 66만 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전체 인구 5150만 명의 1%를 약간 상회하는 숫자다. 하지만 미야마 가톨릭 교회가 설치한 16개의 교구 중 15개가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계속되는 북부 카친 주와샨 주의 소수민족 거주지에 몰려 있다. 교황이 이곳을 찾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과거 즉위 미사에서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애정으로 감싸겠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가톨릭은 낙태, 피임, 동성애에 대한 비난에 몰두하느라 유연함과 자비, 그리고 동정이라는 사회의 거대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가난하고 곤궁에 빠진 사람을 돕는 기독교도의 의무를 강조했으며 관대함과 낙관주의에 입각한 가톨릭 신앙으로 종교 대화 촉진을 촉구했다.이런 프란체스코 교황을 표현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된 낱말은 겸손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 그리고 종교와 사상을 포함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다. 미사를 집전하며 “돈과 성공, 권력, 쾌락 같은 많은 우상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는 희망을 주는 듯 행세하고 있다”고 일침을 놨기 때문이다.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도 질타했다. 그는 “나이 든 노숙자가 길거리에서 얼어 죽는 건 뉴스가 되지 않고, 주가가 2포인트 하락한 건 뉴스라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말로 공감을 얻기도 했다. “정의의 성장은 경제 성장보다 어렵다. 바람직한 소득 분배, 고용 창출 등을 위해 단호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는 발언도 큰 반향을 불렀다.일부에서 그를 두고 ‘완벽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판하자 “마르크스주의 정치 철학은 잘못됐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남미에서 해방신학이 판을 칠 때도 정치 활동이나 발언은 삼가고 오로지 신앙 활동에만 매진했다. 이에 따라 교황은 용기와 분별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로 평가받아왔다.하지만 교황은 결국 미얀마에서 공개 연설과 미사에서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인종청소’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다만 비공개 면담에서 우려를 전달했다고 교황청은 밝혔다.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발언도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솔직한 표현으로 유명한 교황이지만 자칫 내정 간섭이나 종교 간 대결 양상으로 비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는 분석이다. 분별력이 용기를 잠시 누른 셈이다.이에 따라 국제인권단체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교황의 미얀마 방문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한 로힝야족 난민은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분조차도 우리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니 슬프다”라며 “이를 통해 미얀마의 인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아시아 지부 필 로버트슨 부지부장은 “지금 로힝야족은 모든 것을 빼앗긴 상태인데 이름마저도 빼앗겨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2011년 미얀마 민주화를 주도한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도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21세기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로힝야족 학살과 인권유린에 대해 군부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불교도인 국민을 염두에 둔 정치적인 행보로 보인다. 하지만 이 때문에 자국의 핵심적인 인권문제를 외면했다는 비난을 넘어 자칫 탄압의 주범이란 오명을 쓸 판이다.
로힝야 탄압 근원은 군부독재 잔재로힝야 탄압은 근원을 살펴보면 결국 군부독재의 잔재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제대로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일본 NHK방송은 “민주화 과정에서 불교와 연결된 미얀마 민족주의가 힘을 얻어 다수파의 소수파 탄압으로 이어진 것이 더 큰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제는 군부가 아닌 민주화를 주도했던 세력이 배타적인 민족주의 세력으로 변해 로힝야족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일부 과격 불교 민족주의 단체가 민주화 이후 배타적인 이슬람 차별 운동을 벌이면서 로힝야족을 테러리스트로 오도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지목한 조직이 1982년 결성된 ‘969운동’이라는 불교민족주의 단체다. 이 단체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바미얀 석불을 폭탄으로 파괴하는 반달리즘을 벌이자 자극을 받아 반이슬람 운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아웅산 수치를 중심으로 한 민주세력이 선거로 권력을 얻는 데는 성공했다. 수치는 이런 세력에 정치적인 빚이 있다. 하지만 민주화를 이루고 수치를 지지하는 세력 모두가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세력은 아니라는 데서 미얀마의 비극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