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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세난 닥치나] 애써 대출 받아 전셋값으로 돌려줄 판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지방→경기→서울로 전셋값 하락세 번져… 집값 동시 하락 땐 세입자 피해 우려

다락같이 오르던 서울 주택 전셋값이 5년 7개월 만에 내렸다. 강남의 한 아파트는 전셋값을 1억원 내렸지만 한 달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강북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직은 전셋값에 큰 변화가 없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며 전세 수요가 줄자 하나 둘 전셋집이 쌓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새 아파트 입주가 봇물을 이룬 영향이 크다. 전세 수요도 줄었다. 집값 상승 기대감에 전세보다는 매매를 선호하면서다. 서울에서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逆)전세난’이 본격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세입자를 제때 구하지 못한 집주인이 주택 수리 등을 내세워 세입자를 유혹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에 전세를 살고 있는 장선우(44) 씨는 요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3년여 전 분양 받은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는데 살고 있는 전셋집이 도통 빠지질 않아서다. 장씨가 분양받은 아파트의 정식 입주 기간은 5월 초까지로, 이때까지 입주하지 못하면 잔금 연체료를 물어야 한다. 장씨는 전세 만기가 아직 1년 정도 남았지만 집주인과 상의해 2월 초 부동산중개업소 전셋집을 내놨다. 하지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있어도 정작 계약하겠다는 사람은 없어 속만 태우고 있다. 장씨는 “처음에는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없어 집주인이 전셋값을 시세보다 5000만원가량 내렸다”며 “그래도 계약이 안 돼 전셋값을 더 내려줄 수는 없는지 집주인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가 살고 있는 집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셋값이 10억원이 넘었다. 하지만 불과 한달 사이 1억원 이상 빠져 9억원 이하에 전세 물건이 나오고 있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봄 이사철도 조용히 지나갔다. 최근 몇 년간 가장 조용했던 봄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간 무섭게 오르며 수많은 ‘전세 난민(오른 전셋 값을 감당하지 못해 2년 마다 이사를 다니는 사람)’을 양산했던 ‘미친 전셋값’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신규 입주 물량이 크게 늘어난 데다 세입자의 자가(自家) 전환, 재건축 이주 시기 조정 등으로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다.

강남 4구가 전셋값 하락 주도

4월 2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3월 전국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주택(아파트·연립·단독주택 포함) 전셋값은 2월 대비 0.08% 하락했다. 월간 기준으로 서울 전셋값이 떨어진 것은 2012년 8월 이후 무려 5년 7개월 만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비싼 강남 4구(서초·강남·송파·강동구)가 하락세를 주도했다. 서초구는 3월 한 달 간 0.76% 내렸고, 강동구는 0.63% 떨어졌다. 송파구와 강남구도 각각 0.5%, 0.23% 내렸다. 지난해 말 9억~10억원 선에서 계약되던 서초구 반포동 반포푸르지오 84㎡(이하 전용면적)형 전세는 최근 8억5000만원에 계약됐다. 서초구 잠원동 롯데캐슬 2차 168㎡형 전세는 12억원 선이었으나 최근 10억원 이하에 계약이 됐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84㎡형은 최근 전셋값이 1억원가량 내려 8억~9억원 선에서 전세 물건이 나온다. 오는 6월 입주가 시작되는 서초구 잠원동 아크로리버뷰 84㎡형 전셋값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14억∼15억원을 호가(부르는 값)했으나 자금은 12억∼13억원에 시세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5년 7개월여 간 서울에서는 전세 난민이 생겨나고 급등한 전·월셋값을 내느라 서민의 등골이 휘었다. 전셋값은 2년 계약 만기가 끝나면 어김없이 5000만~1억원가량 올라 있었다. ‘미친 전셋값’이 소비와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면서 급기야 전세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전셋값 망국론’까지 나오기도 했다. 정부는 행복주택·뉴스테이와 같은 임대주택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공급을 늘려가겠다는 전월세 대책을 내놨지만 미친 전셋값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공급 부족’이라는 갈증을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서울 전셋값은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지방은 빈 집이 늘면서 진작 하락세로 돌아섰고, 서울 전셋값 영향으로 덩달아 뛰던 수도권(경기·인천) 전셋값이 약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올 들어 서울로 번지기 시작했고, 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서울 전셋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송파구 잠실동 다음공인 김현혜 실장은 “1월에는 학군 수요가 몰리면서 반짝(전셋값이) 오르기도 했지만 곧바로 수요가 줄면서 전세 호가가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감정원의 주간 단위 가격동향 조사에서도 2월 셋째 주(2월 19일 기준) -0.02%를 시작으로 서울 전셋값이 약세로 돌아섰다. 강여정 감정원 주택통계부장은 “수도권 택지지구 입주 증가, 노후 아파트 수요 감소 등으로 전세 물건이 누적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서울 전셋값이 약세로 돌아선 건 무엇보다 서울 인근 수도권에 신규 입주 아파트가 많기 때문이다.

전세 난민 늘며 전세 망국론까지 나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분기(4~6월) 전국에서 모두 10만 5121가구가 집들이를 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6% 증가한 수치다. 특히 서울·수도권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나 급증한 5만4323가구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서울·수도권에서는 지난해에도 전년보다 45% 늘어난 17만5000가구가 입주했다. 서울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수도권 입주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2~3년 전 수도권 공공택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분양된 아파트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입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도시,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구리시 갈매지구 등지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서울 인근 신도시에 새 아파트가 대거 입주하면서 전세 수요가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저렴한 수도권 등지로 분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통계청의 인구이동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경기도는 2월에만 1만5542명이 유입된 데 반해 서울은 7234명이 빠져나갔다. 2월 순유입 1위는 경기도, 순유출 1위는 서울이었다. 수요 감소도 최근의 전셋값 하락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몇 년간 전셋값, 집값이 계속 뛰자 불안감을 느낀 전세 수요자들이 기존 주택을 사거나, 신규 분양 등을 통해 내 집 마련에 적극 나선 것이다. 올해 초부터 입주를 시작한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분양 계약자 70% 이상이 서울 등지에서 전세로 살던 실수요자”라며 “신도시 개발 초기여서 생활이 불편한 데도 이 때문에 분양 계약자의 입주율이 꽤 높다”고 전했다. 이 팀장은 “전세시장은 매매시장과 달리 100% 실수요자 시장이어서 전셋집이 몇 개만 모자라도 급등하고, 반대로 몇 개만 남아도 급락할 수 있다”며 “지금은 공급 증가, 수요 감소 등으로 서울 전셋집이 하나 둘 남기 시작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2월 인구 순유입 1위 경기도, 순유출 1위 서울


시장에서는 당분간 서울 전셋값이 더 내릴 것으로 내다본다. 연말까지 새 아파트 입주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1~3월) 전국에서 12만8239가구의 입주했고, 올 하반기에는 약 21만6000가구가 입주한다. 서울·수도권은 1분기 5만5939가구가 입주한 데 이어 2분기 5만4323가구, 하반기 약 11만8000가구가 집들이를 한다. 서울·수도권에서만 분기별로 5만가구씩 입주하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6월 초 서초구 아크로리버뷰를 비롯해 올해 말 9500가구에 달하는 송파구 헬리오시티가 입주해 전세 물건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올해도 강남권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재건축 이주가 기다리고 있어 전세시장이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초구에서는 신반포3차·경남(2673가구), 방배13구역(2911가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2120가구), 한신4지구(2898가구) 등 1만 가구가 넘는 재건축 단지들이 7~12월 줄줄이 이주한다. 그러나 이 역시 수도권의 풍부한 입주 물량, 전세 수요 감소 등으로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이주 수요는 지역 아파트뿐 아니라 신축 빌라, 송파, 수도권 새 아파트 등으로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대규모 이주로 일시적인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전세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는 게 아니라 전셋집이 남아도는 ‘역(逆)전세난’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재건축 단지(지금의 엘스·리센츠·파크리오) 1만5000여 가구가 한꺼번에 입주하면서 송파구는 물론 인접한 강남·강동·광진구 등 주변 일대가 전셋값 급락으로 몸살을 앓았다. 2007년 전셋값이 3억8000만원 선이던 강동구의 한 아파트는 1년 만인 2008년 하반기 전셋값이 2억원 초반대로 급락하기도 했다. 3~4년간 역전세난이 이어지면서 당시 집주인들이 대출을 받아 전셋값을 내주거나 제때 세입자를 들이지 못해 집이 법원경매에 넘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주택 인허가 실적은 76만5328가구, 아파트 분양 실적은 52만 5467가구로 국토부가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77년 이후 최대치였다. 주택 인허가 실적이 70만 가구를 돌파한 것은 1기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90년 이후 25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다. 아파트 분양 물량은 2014년(34만4887가구) 대비 52.4% 급증했다. 이 물량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까지 줄지어 입주하는 것이다.

전문가들 “집값 하락 우려는 시기상조”

역전세난이 벌어지면 단지 전셋값 하락에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008년처럼 역전세난이 벌어질 경우 집값 하락에 따른 ‘깡통전세’를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깡통전세는 집값이 전셋값 밑으로 떨어진 집으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금리 인상 등으로 집값이 급락할 때 생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전세가율이 80%까지 치솟았고, 그 틈을 타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것)’가 성행했다. 심 교수는 “갭투자자들이 정부 규제나 금리 인상, 역전세난에 의한 집값 하락 등을 견디지 못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최근 지방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다. 한꺼번에 수십여 채에 갭투자를 한 집주인이 전셋값이 내리자 갭투자한 집 모두를 경매로 넘겨 버린 것이다. 경매 전문가들은 “실제로 경매가 진행되면 전셋값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할 수 있다. 그러면 세입자들은 전셋값을 온전히 찾지 못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특히 주택시장에선 보통 전셋값 하락을 매매가격 조정의 신호탄으로 보기 때문에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옥죄고 있어 전셋값이 하락이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집값 하락을 걱정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재건축 규제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등 정부 정책의 영향을 받겠지만 적어도 서울 주택은 안전자산이란 이미지가 있어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전셋값이 큰 폭으로 내리면 전세 만기 때 원하는 시기에 전셋값을 돌려 받거나 돌려 줄 수 없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429호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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