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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와 갈등 반복하는 금감원 왜?] 정부 눈치 보며 오락가락 대응하다 불협화음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금감원 “시장 안정화와 투자자 보호” vs 금융 업계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아”

▎분식회계 의혹을 받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5월 8일 금융감독원을 향해 “민감한 사안의 정보를 무분별하게 공개·노출하고 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홈페이지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과 금융감독원의 갈등이 깊어질 전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위반 결정이 확정되면 금감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들의 갈등 내용은 대략 이렇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종속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부풀려 1조9000억원대 당기순이익을 허위로 만들었다고 봤다. 금감원은 이런 내용을 5월 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에 조치 사전통지서로 전달했는데, 문제는 같은 날 통지서 발송 내용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이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확정된 결과가 아닌 예비적 성격의 감리 결과를 금감원이 사실인 것처럼 공개해 투자자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사흘 만에 26% 급락했다.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5월 8일 자사 홈페이지에 ‘금감원 감리와 관련해 요청 드립니다’라는 게시물에서 금감원을 겨냥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통지서 전달을 알린 이유에 대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였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기업 때리기 식에 지나지 않아”


▎윤석현 신임 금융감독원장.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해 시장에서는 금감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사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당시인 2016년 12월 참여연대의 분식회계 의혹 제기에 ‘문제 없음’이라고 회신했고, 지난해 2월 국회 업무보고에선 “회계기준 위반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나서 “문제없다”던 회계처리가 “고의적 분식회계”로 바뀐 것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번 일이 ‘정권 코드 맞추기’에 따라 뒤바뀐 결정이라는 소문도 나온다.

금감원은 은행·증권·보험감독원 등을 통합해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특수법인이다. 금감원은 금융시장의 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회사 검사권과 감독권을 쥐고 있다. 당초 금감원은 관료조직에서 독립돼 금융감독 기능을 맡으라는 취지로 설립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료들은 관료조직을 키웠고, 금감원은 금융위 산하기구로 전락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감원 임원 인사시스템이 정권과 연결돼 있다 보니 정치 논리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그렇다 보니 기업들은 정권이 바뀌거나 정책상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이번엔 누가 기업 때리기 피해자가 될지 우려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금융감독의 일관성을 저해하고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에는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의 3연임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김정태 회장의 ‘셀프연임(후계자를 키우지 않고 본인 연임에 유리한 구도를 만드는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3연임을 강하게 반대했다. 급기야 하나금융 회장 선출 절차가 진행 중이던 지난 1월 금감원은 김정태 회장의 특혜대출, 채용비리 등 관련 의혹을 둘러싼 CEO 적격성 검사가 끝나지 않았다며 하나금융에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잠시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하나은행 채용비리 조사 과정에서 갑자기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2013년 하나금융 사장 시절 지인의 아들을 하나은행 채용에 추천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6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직까지도 하나은행의 2015~2016년 채용비리 의혹 11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때문에 금융회사들은 금감원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금감원은 감독권을 무기로 금융회사 위에 군림하려 한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감독권 역할도 있지만 금융회사들이 금융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금감원의 할 일”이라며 “금융시장의 안정이라는 명목 하에 회사들을 잡아 가두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감원도 할말은 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금감원은 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감독을 통해 시장 안정화와 투자자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곳”이라며 “가령 특정 기업이 밉다고 법에 있는 감독규정을 바꿔서 감독을 할 만큼 느슨한 곳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투자자 보호와 규제를 함께해야 하는데 사실 현장에서 조사를 하다 보면 현재 금융감독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있어 조사가 어려울 때가 많다”며 “정책과 감독을 함께 시행하는 현 구조로는 역할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금감원의 금융감독 체제는 금융위가 만든 제도와 규정의 틀 안에서 검사와 감독을 집행해야 한다. 감독규정 개정이 필요하면 금감원은 금융위의 승인을 받아 감독규정 개정을 통해 손 봐야 하지만 사실상 쉽지 않다. 금감원이 독립권을 외치는 이유다. 윤석현 신임 금감원장은 지난 5월 8일 취임사에서 “금융감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독립성 유지가 필요하다”며 “금융감독이 단지 행정의 마무리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 시절 줄곧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요구했다. 금융위를 해체해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춘 금융정책은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금융감독 정책과 집행은 금감원이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게 윤 원장의 구상이다. 다만 금융위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까지 감안하면 20년 간 유지된 금융부처 조직 체계를 뒤흔드는 ‘대수술’이어서 실제 개편으로 진행되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복수 감독기구 도입 의견도

이유가 어찌됐든 최근 금감원의 오락가락 잣대는 금융시장에 혼란을 주기에 충분하다. 예컨대 최흥식 전 금감원장 낙마 역시 성숙한 금융감독체계보다는 관치에 기반을 둔 완력을 발휘하면서 빚어진 참사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셀프연임’에 시끌벅적하게 제동을 건 자체가 금감원의 후진성을 보여준 셈이다. 일부에서는 금감원 내부의 자정 능력에 기댈 것이 아니라, 보다 제도적인 차원에서 비리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434호 (20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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