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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그렇게 속고 또 찾을’ 매력 있나] 낮은 임금, 국내 내수시장 접근성 뛰어나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입주기업 96% “재입주 의향 있다” … “국내 중소기업 발전 돌파구 될 수 있어”

‘그렇게 속고 또 가냐’. 개성공단의 재가동 추진 소식에 대한 인터넷 댓글이다. 2016년 개성공단 전면 중단 이후 1년여 간 공단 입주기업들은 적지 않은 손해를 봤다. 이번 남북 화해무드를 타고 공단이 다시 가동되더라도 정치적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성공단은 언제든 남북 관계의 볼모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다수가 재입주 의향을 나타냈다. 무엇이 국내 중소기업을 개성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일까.

남북 정상회담 개최로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과거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6%가 재입주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와 개성공단기업협회가 발표한 ‘개성공단기업 최근 경영상황 조사’에 따르면 26.7%가 ‘개성공단 재개 시 무조건 재입주’한다고 답변했다. 69.3%는 ‘정부와 북측의 재개 조건 및 상황 판단 후 재입주’라는 입장이었다. 아직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고 또 다른 돌출 악재에 따라 공단 폐쇄가 반복될 위험성이 크지만, 정부의 대책을 확인한 후 입주할 생각이 있다는 얘기다. 재입주 의향 없음은 4%에 그쳤다.

“재입주 의향 없다” 4% 불과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 경제협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2004년 가동을 시작한 개성공단은 남북 관계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어왔다. 북한이 핵실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도발 행동을 할 때마다 개성공단은 남북 양측에서 ‘지렛대’가 되어 최소 인원 체류, 잠정 중단, 재가동 등을 반복했다. 2016년 2월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결국 전면 중단에 처해지는 운명을 맞았다. 반복되는 정치 리스크에 입주기업들은 적지 않은 손실을 봐야 했다. 앞선 설문조사에 따르면 입주기업들은 2016년 개성공단 전면 중단 이후 업체당 약 20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 환산하면 입주기업 전체 2500억원 규모다. 96%의 업체가 경영상황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14%는 ‘생산 중단 혹은 급격한 매출 감소로 사실상 폐업 상태’라고 밝혔다.

이 같은 경험과 상존하는 리스크에도 업체들이 개성공단에 다시 들어가려는 이유는 생산입지로서의 이점 때문이다.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입주기업들은 재입주 희망 이유로 ‘개성공단이 국내외 공단과 비교해 경쟁력이 높다’(79.4%)라고 답했다. 이 밖에 ‘투자 여력 고갈 등으로 대안이 없어서’(10.3%), ‘시설 매각 등 정부 피해 지원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5.2%) 등의 의견이 있었지만 비중은 크지 않다. 남겨진 시설이나 원자재 때문에, 또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울자 겨자 먹기로 가는 게 아니라 개성공단의 사업환경이 좋아서 입주한다는 의미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개성공단이 중국·베트남 등 주변의 다른 생산입지에 비해 가지는 장점은 많지 않다. 북한은 무역자유도가 낮고 이로 인해 글로벌 시장 접근성도 좋지 않다. 만든 물건을 가져다 팔 시장이 제한적이란 뜻이다. 북한의 경제 성장, 또는 중국 시장 등 대외 접근성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잠재적 시장의 기회도 크지 않다. 현지에서 저렴한 원자재 조달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고, 무역 경로가 막힌 만큼 원자재 투입 및 비용 여건도 좋지 못하다.

노동력도 공급 측면에서 보면 조건이 나쁘다. 인구 규모가 크지 않아서다. 개성 인근 인구는 약 30만명, 폐쇄 전 개성공단 인력은 약 5만명으로 이미 인력수급이 한계에 다다른 수준이다. 기업의 필요에 맞는 자율적 채용 및 관리도 불가능하다. 개성공단의 북한 인력 채용은 간접 채용 원칙에 따라 북한 측 알선기관을 통해서 이뤄진다.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에서 북한의 2018년 ‘노동 자유도’는 186개국 중 가장 낮은 수준(0~100점 중 5점)으로 나타났다.

재입주하는 데 들어가는 경영 부담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년2개월 간 폐쇄된 공단을 재개하기까지 많은 수리비용과 해외 바이어 설득, 북한 근로자 임금 처리 등이 남아 있다. 남북경제협력보험(경협보험)과 지원금을 반납해야 하는 자금 마련도 숙제다.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면 기업들은 지급받았던 경협보험금을 반환해야 한다. 2013년 개성공단이 6개월 간 중단됐을 때도 정부는 기업에 지급했던 보험금을 전액 돌려받았다. 입주기업들이 보험금을 이미 대체투자에 사용한 경우가 많아 유동성에 부담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낮은 임금은 이런 많은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앞의 설문조사에서 입주기업들은 개성공단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저렴한 인건비(80.3%)를 꼽았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따르면 개성공단 근로자의 법정 최저임금은 74달러, 평균임금은 180~190달러 수준이다. 경쟁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중국(824달러)이나 베트남(241달러)보다도 낮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60%가 노동집약적 업종(섬유봉제·가죽·가방·신발)임을 감안하면 낮은 임금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또 임금에 비해 생산성이 높다. 산업부·한국무역협회의 ‘개성공단과 주요 해외 공단과의 경쟁력 비교연구’ 보고서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생산성을 한국 평균의 71% 수준으로,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 각각 60% 및 40% 수준으로 평가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2008년 중국과 개성공단 진출 기업을 대상으로 생산성 수준을 평가한 결과에서는 본사(한국) 대비 개성공단의 노동생산성은 약 77%, 중국은 69% 수준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서 입주기업들이 개성공단의 경쟁력 우위요소로 꼽은 ‘언어 소통’(3.9%)이나 낮은 이직률도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해외 지역에 비해 세금 부담 적어

일부 품목으로 한정하면 시장 접근성도 무시할 수 없다. 주요 시장이 국내 내수시장인 경우다. 어차피 서울에서 팔 물건이라면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만드는 것보다 개성에서 만드는 게 효율적이란 얘기다. 실제로 입주기업의 28%는 개성공단의 장점으로 물류 여건을 꼽는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류의 이동시간이 절약되고(14.5%), 이에 따라 물류비용을 아낄 수 있다(13.2%)는 것이다. 더불어 다른 해외 지역에 비해 기업들이 내야 할 세금의 숫자도 적고 세율의 부담도 적은 편이다. 세제도 비교적 단순하다. 생산품을 국내로 들여올 경우 관세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이 해외 생산지에 대한 대안으로서 국내 기업들의 선택권을 넓혀준다고 설명한다. 임금 수준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 중국·베트남·인도 등지의 생산지로부터 리쇼어링를 결정한 기업들이 안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김상훈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중소기업이 중심 되어야’ 보고서에서 “중소기업은 남북 경협 재개 단계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며 북한에 진출할 수 있는 경제 주체”라며 “남북 경협사업이 경영난 해소와 성장동력을 찾는 국내 중소기업 발전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435호 (20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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