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평가 위해 논술 폐지 검토 … “신문·연구소 보고서 참고하는 게 도움”
▎은행들이 필기시험을 부활시키면서 취업준비생들의 시험준비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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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은행고시’가 부활한다. 10년 전 은행들은 다양한 인재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필기시험을 없애고, 서류와 면접시험만으로 뽑는 인력채용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최근 특정 계층 자녀에 대한 채용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다시 필기시험을 부활시켰다. 최근 은행연합회는 은행권 필기시험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은행권 채용 절차 모범규준을 금융당국에 전달했다. 모범규준은 은행이 채용절차를 진행할 때 필기시험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금융당국에 제출한 초안으로 6월 말 이사회에서 모범규준안을 의결하면 회원사인 은행들이 모범규준을 내규에 반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고사항이지만 최근 은행권 채용비리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만큼 필기시험을 두지 않은 은행들이 필기시험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우리은행 등은 채용 과정에 필기시험을 두고 있다. 지난해 채용 비리로 은행장까지 사퇴하며 골치를 썩었던 우리은행은 11년 만인 올 상반기 필기시험을 도입했다. 지금까지 필기시험을 보지 않은 대부분 은행들은 서류전형에서 지원자 상당수를 걸러내고 면접 등 절차로 최종합격자를 가려왔다. 채용 절차는 서류전형→1, 2차 면접(인·적성 검사 포함)→ 최종합격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필기시험이 부활하면서 서류전형→필기전형→논술→1, 2차 면접(인·적성 검사 포함) 순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변별력 높이기 위해 시험 난이도 높아질 듯KB국민·우리·신한·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올해 2000명 이상을 뽑을 예정이다. 아직 채용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NH농협·IBK기업·KDB산업·수출입은행 등까지 더하면 3000명을 웃도는 취업준비생에게 입행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기시험을 보지 않았던 신한은행도 올 상반기부터 필기시험을 부활시키겠다고 밝혀 취업준비생들의 시험 준비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필기시험 난이도는 취업준비생들의 최대 관심사다. 한 은행 관계자는 “앞으로는 필기시험 결과가 채용당락을 좌우하게 되는 만큼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난이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은행끼리도 시험 수준을 두고 눈치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대부분의 은행은 1, 2교시로 나누어 필기시험을 치른다. 시험 문제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관리하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활용하거나, 경제·금융·금융상식 등을 객관식으로 출제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1교시엔 6개의 NCS 영역(의사소통·수리·문제해결·자원관리·정보능력·조직이해)에서 70문항을 출제한다. 2교시에는 지원 부문별로 일반(경제·금융, 일반사회), 디지털(해당 분야 기초지식, 일반사회)로 구분해 30문항으로 각각 평가한다. 오는 6월 8일 필기시험을 실시하는 신한은행도 NCS직업기초능력 평가와 금융 관련 시사상식·경제지식 두 분야로 나눠 시험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NCS 시험을 보지 않는 은행들은 경제·금융·상식·국사·적성검사 등의 분야 문제를 은행 내부에서 만들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경제·금융·상식·국사 분야 객관식 문제와 함께 주관식 서술형(논술형)도 출제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인적성검사 시험도 진행한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하반기 채용에서 논술문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8일 필기시험을 실시한 우리은행은 1교시에는 경제, 금융, 일반상식(MBS, 전환사채, 환율, 양적완화, 테이퍼링, 적격대출, 워크아웃 등)에 대한 객관식 80문항, 단답형 10문항을 출제했다. 세부적으로는 국제 경제, 경제 트릴레마(3중 딜레마), 외환보유 종류, 파생상품의 손익구조 등 전문 지식을 묻는 문제를 다수 출제했다. 2교시에는 적성검사(언어, 수리, 추리, 시각적 사고, 상황판단)에서 100문항으로 구성했다.이에 은행권 인사 담당자들은 필기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최근 경제나 금융시장의 이슈는 물론 금융지식, 상식 등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평소에 경제·금융에 관한 이슈와 트렌드 등을 자주 접하는 것이 중요하고 틈틈이 경제신문과 KB경영연구소에서 나오는 금융 관련 자료를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금융용어, 수학적 이해도와 같은 공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앞으로는 채용 면접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채용 면접을 볼 때 외부 인사가 반드시 면접위원으로 참석하기 때문이다. 상반기 채용을 진행 중인 우리은행은 1, 2차 면접 모두 면접위원의 50%를 외부 전문가로 뒀다. 기업은행은 2차 임원면접의 50%가 외부 위원이다. 농협은행은 10명 중 2명이 외부인이다. 신한은행은 외부 인사관리(HR) 전문가와 내부통제 관리자를 포함한 ‘채용위원회’를 만든다. 개별 전형마다 점검 절차를 통과해야 다음 전형을 진행할 수 있다.
필기시험 도입으로 채용비리 근절될까?한편 은행권에서는 필기시험 도입으로 다양한 인재를 뽑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다양한 인재를 채용하자는 취지에서 필기시험을 없애기로 한 건데 다시 시험을 부활시키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채용 모범규준 도입으로 채용비리 논란에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융합형 인재를 채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필기시험을 재도입하더라도 채용비리를 차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채용비리 의혹을 받았던 KB국민은행은 그동안 필기시험을 통해 신입사원을 채용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