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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기회비용 치르는 원금보장 상품퇴직금을 비롯한 은퇴자금은 까먹어선 안 되는 돈이다. 안정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이와 달리 목돈 형성 등 증식이 목적인 일반 자금은 그와 달리 수익률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굴려야 한다. 자금 운용에서 안전제일주의를 따르는 사람에게 원금보장은 든든한 약속으로 들린다. 위험이 큰 불확실성의 시대에 원금을 보장해준다니 이렇게 고마운 투자상품이 또 있을까.실제로 퇴직연금은 대부분이 원금보장형이다. 퇴직금만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원금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굳건히 깔려 있다. 100조원 넘게 쌓인 퇴직연금 중에서 원금보장형이 93%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식·채권에 투자한 실적배당형은 7%에 불과하다. 두말할 필요없이 수익률은 쥐꼬리 수준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평균 1.88%로 나타났다. 은행예금보다 못한 퇴직연금이란 비아냥이 나오는 상황이다.수익률도 수익률이지만 원금보장형 퇴직연금은 다른 데 투자하면 낼 수 있는 수익, 즉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특히 보험 같은 장기 상품은 원금보장이 무의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연금보험의 원금보장은 아무 때나 원금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연금수령할 경우에만 해당한다. 만약 일반 금융상품을 수익률 연 3%로 월 100만원씩 20년 붓고 5년 거치 후 연금을 탄다고 할 때 적립금은 3억8000만원에 누적 수익률은 58%에 달한다. 연 2%만 해도 적립금은 3억4000만원, 누적 수익률 41%이다. 여기서 20년 간 납입 후 5년 거치 후 이자 없이 원금만 탄다고 할 때 원금보장 2억4000만원에 대한 기회비용은 수익률 3%의 경우 1억4000만원, 2%는 1억원이다. 더구나 이 사례는 물가를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엄청난 실질적 손해를 입는 결과가 된다.단기 상품이 원금보장을 한다면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 그래도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원금보장형 마케팅이 먹혀드는 건 투자자의 심리상태와 관련이 있다. 개인은 주가의 바닥 국면에서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가가 상승하는 시기엔 위험은 과소평가된다. 그래서 원금보장형은 증시가 침체에 빠져 있을 때 많이 팔린다. 지난 2008년 하반기 미국의 금융위기 때 그랬고, 2011년 10월 유럽의 재정위기 때도 그랬다. 당시 이 상품을 구입한 사람들은 원금은 지켰을지는 모르지만 돈 버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주가 바닥 국면에서 원금보장이 인기원금보장형은 오히려 주가가 정점을 칠 때 투자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투자자는 별로 없다. 그래서 증시가 좋을 때 원금보장형 상품은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주가의 바닥 국면에선 크게 힘들이지 않고 공포 분위기에 사로잡힌 투자자를 상대로 원금보장 장사를 할 수 있다. 결국 원금보장형 투자자는 수익을 포기한 대가로 많은 기회비용을 물어가며 불필요한 보장을 받는 셈이 된다. 경제엔 공짜가 없듯이 투자의 세계에서도 저절로 주어지는 원금보장이란 없다.목돈으로 좀 큰 돈을 단기적으로 투자할 때 원금보장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적립식으로 다달이 얼마씩 부어나갈 때엔 어느 정도는 위험을 안아야 한다.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이라고 한다. 그 대신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 시간은 수익과 안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 전문가들은 연금의 경우 연간 수익률은 최소 4~5% 수준이 돼야 수익성이 개선되고 은퇴후소득 대체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 기준 40%이지만 퇴직연금은 12%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의 권장 소득대체율은 70%이니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원금보장에 목을 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소득대체율은 연금액이 평균소득과 비례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비율이다. 원금보장을 고집하다간 나중에 생활비가 모자라 ‘은퇴 쇼크’를 겪을 수 있다. 무조건적인 안전자산 선호가 결국 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실적배당 투자상품 비중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