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한국의 내수 시장이 작다고? 

 

타마키 타다시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니혼게이자이신문 서울지국장)
일본의 위스키 메이커 산토리가 자국에서 생산하는 위스키 ‘히비키’ 17년산 중 두 종의 주류 제품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히비키는 ‘야마자키’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위스키 중 하나다. 히비키의 판매 중단 소식에 소비자들은 적잖게 놀라며 이유를 궁금해 했다. 산토리는 판매 부진 때문이 아니라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량이 감당이 되지 않아 판매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히비키 17년산과 ‘하쿠슈’ 12년산의 인기가 높아 위스키의 원액이 바닥나는 바람에 당분간 생산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스키 원액은 수요가 갑자기 늘어난다고 바로 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산토리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판매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위스키의 인기가 올라 제품이 부족한 상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1960년대와 80년대 직장인·학생들 사이에서 위스키는 가장 인기 좋은 주류였다. 맥주나 소주처럼 저렴한 술이 아니기 때문에 애주가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거품 경제의 붕괴와 발맞춰 젊은층을 중심으로 독주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위스키는 한 때 ‘동경의 대상’에서 ‘과거 세대의 술’이 돼 버렸다. 젊은이들은 위스키 대신 맥주와 와인, 칵테일을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 1980년 35만㎘였던 가정용 위스키 소비량은 2007년 7만㎘로 뚝 떨어졌다. 산토리는 이런 주류 시장의 변화에 발맞춘 수요 예측을 통해 12년산과 17년산 위스키 원액을 생산해왔다. 현재 공급 물량 부족에 시달리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서 위스키 수요가 극적으로 다시 살아났다. 해마다 위스키 소비가 증가하며 2017년에는 17만㎘로 수량이 불어났다. 지난 10년 간 일본 시장이 2배 이상으로 커진 것이다. 시장 성장의 첫 번째 이유는 품질 향상이다. 일본 위스키는 품질이 해마다 향상되면서 국제 주류 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지며 면세점 기념품으로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또 다른 이유는 시장 개척의 성과다. 위스키 판매가 부진하던 시절 산토리는 고심 끝에 ‘하이볼’ 판매에 주력했다. 위스키 소다인 하이볼은 일종의 칵테일로 1950~60년대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다가, 순식간에 인기가 사그라든 술이다.

산토리는 위스키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과거 히트 상품인 하이볼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해 인기 여배우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소다와 섞어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고, 맛이 깔끔해 웬만한 요리와도 궁합이 좋다. 2000년대 중반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하이볼 부활 전략은 크게 성공하며 위스키 수요가 다시금 늘어났다. 하이볼의 인기는 해협을 건너 한국에도 밀려들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하이볼을 판매하는 술집이 점점 늘고 있다. 일본이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내수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제 시장 확대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위스키 수요 회복의 사례는 노력에 따라 잠재된 시장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커피 시장도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커피를 사랑한다. 유명 프렌차이즈 커피숍은 물론 개인이 운영하는 커피숍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캔커피 시장도 거대하다. 당연히 ‘커피 시장은 포화상태’라는 인식을 모두들 갖고 있었다. 이런 생각에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이 도전장을 던졌다. 점포에 특별 제작한 커피머신을 설치했다. 고급 원두의 커피를 셀프 서비스로 이용할 수 있는 판매대다. 가격은 한 잔에 100엔에 불과하다. 서비스 초기에는 ‘커피숍이 사방에 깔린 마당에 편의점에서 누가 커피를 사마시겠느냐’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서비스는 대히트하며 여러 우려를 불식시켰다.

지난해 세븐일레븐 커피는 10억잔이나 판매됐다. 2013년 이 서비스를 시작하고 5년 만에 거둔 성과다. 누계 판매량은 39억잔에 달했다. 차원이 다른 판매량에 유통 업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븐일레븐의 도전은 기존 커피숍 시장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1000억엔에 달하는 새로운 거대한 신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한국에서 ‘내수’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 어김없이 나오는 얘기가 있다. “한국은 내수 시장이 작다. 수출 주도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비즈니스는 우선 해외 시장을 타킷으로 삼지 않으면 이익을 보기 어렵다.” 이런 주장이 사실일까 의문이 든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올해 3만 달러 달성이 확실시 된다. 한국의 인구는 5000만 명이 넘는다. 3만 달러에 5000만 명을 곱해 보자. 과연 작은 시장일까. 소비 성향이 높은 3만 달러의 소득자가 5000만 명이나 있는 시장은 세계를 둘러봐도 많지 않다. 한국 기업들이 ‘작은 시장’을 이유로 내수를 포기하고 있는 사이 일본 기업들은 부지런히 ‘유망한 한국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714만 명이다. 전년 대비 40%나 증가했다. 온천은 물론 이자카야, 초밥·라면·오코노미야키 가게, 고급 요정…. 일본에서 한국인들의 소비력은 무시무시하다. 백화점·하비숍·스포츠용품점 등도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인들이 들끓는다. 한국에도 진출했음에도 일본 유니클로 점포에 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몰려 쇼핑을 즐긴다. 나리타·간사이 국제공항에 가보면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얼마나 많은 쇼핑을 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인들은 쇼핑이든, 관광이든 일본을 여러 차례 찾는 단골 고객이다. 일본 경제에는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일본에서 쇼핑을 즐긴 많은 한국인은 “일본이 더 저렴하고 서비스와 상품이 다양하다”고 말한다. 이는 적지 않은 한국인이 자국에서의 소비 활동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격이 비싸고, 상품의 종류는 적으며, 대형마트나 인터넷쇼핑이 아니면 제품을 고르기 어려운 데다, 서비스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쌓인 불만을 일본 등 해외에서 풀어내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내수 시장이 작아서…’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일본에서 쇼핑을 즐기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 비관할 것은 없다. 불만은 사업의 큰 기회다. 유통·외식·서비스 등 수많은 내수분야가 잠재적인 성장 산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3만 달러 X 5000만’ 시장의 크기를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1439호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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