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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학각색(各學各色)’ | 온라인 댓글 논란 어디로? - 문화인류학] 사이버보수성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김동주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사이버공간의 상황적 보수성 악용해 댓글 조작…온라인 문화의 가능성과 한계 짚어야

인류학은 19세기에 부족사회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시작된 학문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인류 전체의 공통점과 여러 사회 집단이 가지는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세계화에 따라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사회관계와 사회 집단의 형태, 사회 집단들 사이의 구별짓기와 불평등, 그리고 타 문화와의 소통이 현대 인류학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 인터넷과 사이버공간에 대한 인류학 연구도 새로운 소통의 기술과 공동체 구성의 원리가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적 삶에 영향을 주는지에 주목한다. 초기에는 새로운 기술의 보급과 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의 문제가 주로 제기됐다면, 최근에는 특정한 문화적 맥락 안에서 개인들이 인터넷과 사이버공간을 이용하는 방식과 그것이 사용자에게 주는 의미를 에스노그라피(참여·관찰, 심층면담 등으로 집단의 특성을 파악하는 조사기법)로 연구한다.

인터넷 인류학은 특히 온라인과 오프라인 문화가 서로 주고받는 영향에 대하여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였다. 사용자들이 특정한 문화적 맥락 안에서 인터넷 또는 소셜미디어에서 보이는 소통 습관을 비교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익명성을 이용하는 방식을 분석했다. 이를테면 이슬람권의 여성들처럼 오프라인에서 사회 활동이나 소통이 제한되는 사람들에게는 인터넷이 사적 소통과 공적 소통 사이의 새로운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또 주류 문화에서 소외된 소수자 집단의 경우에도 여러 계정을 이용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2010년에 시작된 ‘아랍의 봄’은 사이버공간과 소셜미디어가 가진 이런 특성을 이용해 새로운 방식의 민주화와 시민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과 사이버공간은 바로 그 익명성 때문에 양가적 욕망이 걸러지지 않고 표현되는 장이 되기도 한다. 프라이버시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도, 타인들과의 교류와 소통이 감정적으로 흘러가기 쉽고 익명성을 악용한 언어폭력이 일어나기도 쉬운 환경이다. 그렇다고 사용자들이 이 공간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는 문화일수록 일상의 행복한 장면이나 성공한 모습만을 공유하며,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쉽게 지지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특정 게시물에 달리는 댓글들이 기존의 큰 흐름을 좇아 편승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사이버공간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상황적 보수성, 즉 사이버보수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보수성을 이용해 댓글 조작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곧 댓글이 원래의 취지였던 양방향 소통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조작을 위해 매크로 또는 봇(bot) 프로그램이 이용되는 경우, 접속자가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완벽하게 구별해 낼 수 있는 보안 기술은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권력이나 이윤을 위해서 댓글과 가짜뉴스를 양산해 선거에 개입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지난해에만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18개국에서 문제가 됐다. 이 상황을 모른다면, 모든 댓글 뒤에는 당연히 제각각 다른 글쓴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댓글의 추세를 보고 자신의 시각이나 의견을 만들어나가는 것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또 활자화된 형태의 댓글은 구어로 작성된다 하더라도 여러 번 읽히고 매번 다른 해석이 가능한 문자를 통해 전달되는 글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내용은 더욱 강하게, 사실적인 내용은 더욱 설득력 있게 전하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지금 뒤늦게나마 온라인 문화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성찰하며, 사이버공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배우는 ‘챙김’의 기회를 가지게 됐다고 본다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일까.

※ 김동주 교수는…KAIST(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에서 인류학을 담당하고 있으며, 카이스트신문사 주간을 역임하고 있다.

1440호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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