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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위험한 속삭임 “주가 오를 줄 알았어” 

 

서명수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
사후확신편향과 ‘의사와 환자’…쓸데없는 자만심 부풀리고 판단 오류 일으켜<

▎사진:© gettyimagesbank
술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술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술을 마셨으며 식사를 거르는 날도 많았다. 몇 년 동안 그렇게 생활을 했지만 그는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는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가 그 사람의 상태를 진찰해보았다. 그 사람의 건강은 아주 나빴다. 불규칙적인 식사 때문에 위에 염증이 생겼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간에도 이상이 생겼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병은 너무나 깊었다. 의사의 치료에도 결국 그 환자는 죽고 말았다. 의사는 자기 일을 도와주는 조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환자는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술만 끊었더라도 이렇게 일찍 죽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자 조수가 의사를 향해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이제 와서 그런 말씀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그런 조언을 했더라면 돈이라도 벌 수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의사가 아무리 치료를 잘 하더라도 그 시기를 놓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치료도 치료지만 이 우화처럼 뒷북이나 치는 의사가 많은 게 현실이다. 뒷북을 치는 일이 반복되면 신뢰를 잃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심리학에 ‘사후확신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사후설명편향·뒷북편향이라고도 하는데, 영어로는 ‘knew-it-all-along-effect’라고 쓴다. ‘그럴 줄 알았어’ 효과쯤으로 해석된다. 사건 전에는 알 수 없던 징조나 단서 같은 것을 사건 이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것이 판단에 오류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어떤 사건의 결말을 안 다음에 돌아보면 그런 결말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사후확신편향은 자신이 훌륭한 예언가라고 믿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릇된 판단을 내리도록 인도한다.

훌륭한 예언가로 믿게 만드는 ‘내 그럴 줄 알았어’

예를 들어 보자. 미국 달러화 강세로 한국의 주가가 올랐다. 달러화가 강세면 달러화로 표시되는 한국 기업의 수출 상품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어난다. 시장은 수출기업들의 매출 증가를 예상해 관련 주식이 상승한다. 이 글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타당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달러화 가치가 상승한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주식을 사야할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글을 읽고 생각해보자. 달러화 강세로 한국의 주가가 내렸다. 달러화 강세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관련이 있다. 미국 금리가 올라 지금처럼 국내 금리보다 높으면 한국에 투자됐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외국인 자금의 이탈은 보유 주식의 매도를 의미한다. 외국인 매도세를 받쳐줄 만한 매수세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주가는 내려가게 돼 있다. 특히 증시가 어려울 때 외국인 매도세는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가 그랬다.

이 역시 타당하게 들린다. 그러므로 달러가치가 상승한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주식을 팔아야 한다. 도대체 사후에는 설명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 2007년 경제전문가란 사람들이 2008년 세계 경제를 왜 그렇게 장밋빛으로 그렸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알다가 모를 일이다. 1년 후인 2008년 세계 금융 시장은 무너져 내렸다. 경제 전문가들은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 논리 정연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미국의 중앙은행이 금융정책을 느슨하게 해 통화량이 확대되고 담보 부채가 늘어나게 됐다는 둥, 신용평가 기관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는 둥, 은행들이 자기자본 규정을 소홀히 했다는 둥그럴듯한 이유를 댄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경제위기가 완전히 논리적이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경제위기를 미리 경고해주지 않았을까. 세계 경제학자는 수백만 명에 달하지만, 그 누구도 금융위기의 과정에 대해 정확하게 예언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니 배신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사실 경제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사후확신편향자다.

경제전문가나 의사처럼 개인의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전문가 집단이 이런 뒷북 진단으로 자신의 실수를 덮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사후확신편향이 일반 개인한테 나타나면 어떨까.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보이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런 사건을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바로 불행의 시작이다.

주식투자를 해본 사람이라면 분명 사려고 했는데, 또는 했어야만 했는데 하면서 아쉬워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후 확신편향은 대부분 투자기회를 놓치거나 수익성 높은 투자처를 미리 처분했을 때 나타난다. 예를 들어 투자자들 중에는 20년 전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20년 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1998년 삼성전자의 주가는 3만원대. 삼성전자가 주식 액면분할을 단행하기 직전의 주가가 250만원대니 그동안 80배 이상으로 오른 셈이다. 수 차례의 유·무상증자에 참여했다면 수익률은 100배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에 투자해 백만장자가 된 투자자는 지금 얼마나 있을까. 사실 알 수 없다. 그리고 없을지도 모른다. 삼성전자는 잘 나가는 반도체 회사인 건 맞지만 거대 전자회사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주는 어떤 정보도 없었다. 만일 그때 삼성전자에 투자했다고 해도 20년 동안 주가가 상승과 하락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우직하게 보유할 확률은 번개를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낮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잘 모르는 투자자는 주가챠트를 보면 배가 아프고 후회가 밀려온다. 사후확신편향은 속삭인다. 한 번에 팔자를 고칠 수 있는 대박 주식을 찾아내기만 하면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많은 투자자가 사후확신편향의 달콤한 유혹에 걸려들어 제2의 삼성전자를 찾아나서며 대박의 헛된 꿈을 좇느라 아까운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챠트분석·전문가 말 믿지 말아야

물론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투자의 방법이 문제일 뿐 저금리 시대에 소중한 자산을 지키려면 주식투자는 꼭 해야 한다. 주의해야 점은 먼저 차트 분석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것이다. 챠트를 자주 들여다 보면 저절로 사후확신편향에 빠지게 된다. “이 지점에서 사야 하는 데 못 샀어” 하다가 그 지점이 다시 돌아오면 매수에 들어가 덜컥 물리는 경우가 많다. 또 주식 전문가의 말도 너무 귀담아 듣지 말아야 한다. 우연이 판을 치는 주식시장에서 주가 전망은 어쩌면 무의미하다. 누군가가 주가를 예측할 수 있다고 떠들면 “그래서 얼마나 벌었는가”라고 물어보라. 주식투자는 시장과 거리를 두고 장기전으로 가야 열매를 딸 수 있다. 장기전은 투자 위험을 시간으로 녹일 수 있어서다. 분산도 중요하다. 주식 50개 이상에 분산 투자한다면 전체 위험성이 60% 감소하고 장기 보유로 갈수록 그 위험성은 더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40호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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