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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27) 패턴 파악, 생존의 열쇠] 일본 어부들이 돌고래떼 놓친 이유는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위기 벗어난 돌고래의 뛰어난 사고력… 격변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패턴 파악해야

▎돌고래는 인간처럼 패턴을 파악하는 사고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사진:© gettyimagesbank
이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생명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바로 우리 인류이니 말이다. 두 번째가 우리와 600만년 전 유전자 상으로 헤어진 침팬지라는 것도 안다. 그러면 세 번째는 누굴까? 얼른 답이 떠오르지 않겠지만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바다에 사는 돌고래다. 돌고래? 진짜 그럴까? 돌고래가 똑똑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서로의 패턴 파악한 ‘어부 vs 돌고래’ 공방전

재미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오래 전 이 돌고래들과 일본 어부들 사이에 조용한 공방전이 벌어진 적이 있다. 어부들은 돌고래를 잡으려 하고, 돌고래들은 잡히지 않으려 했던 공방전인데, 누가 이겼을까? 당연히 인간이지 않을까 싶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돌고래들은 고등어나 멸치 떼를 좋아한다. 이 먹잇감은 수백만 마리씩 떼 지어 다니지만 바다가 워낙 넓은 데다 공중에서 내려다 볼 수도 없으니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녀석들은 서로 소통한다. 수백㎞나 되는 곳까지 퍼져 나가는 초음파를 통해 정보를 교환한다.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녀석들은 정보만 교환하는 게 아니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인기곡’도 있다. 어떤 녀석 하나가 내는 특정한 음이 괜찮다 싶으면 다들 따라 한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듯 녀석들에게도 ‘사투리’가 있을 정도다. 그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다.

덕분에 녀석들은 서로 도울 수 있다. 한 녀석이 먹잇감 무리를 발견하면 ‘칙칙’하는 고유한 소리로 ‘여기에 먹이가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모두들 모여 든다. 곳에 따라서는 1000마리가 넘는 돌고래들이 ‘작전’에 참여하기도 한다. 작전은 언제나 비슷하다. 마치 양떼를 몰 듯 먹잇감 무리를 한군데로 몬 다음, 동시에 큼지막한 초음파 저음을 토해낸다.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는 이 초음파 저음은 고등어들에겐 마른 하늘에 천둥 소리와 같고, 갑자기 옆에서 터지는 대포 소리나 다름 없다. 대포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으면 귀가 멍멍해지는 건 물론이고 정신까지 멍해지는 것처럼, 고등어들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초음파 대포’가 고등어 떼를 덮치는 순간, 기절하는 놈들부터 자기도 모르게 몇m씩 뛰어 오르다 부레가 터져 죽는 놈들까지 일대 혼란이 일어난다. 고등어들에게는 아수라장이, 돌고래들에게는 풍요로운 만찬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고등어 떼가 클수록 만찬 규모도 커진다. 참치나 상어 같은 녀석들까지 합세하는 까닭이다. 이 녀석들 역시 약속이나 한 듯 수백만 마리의 고등어 떼를 마치 팽이 돌리듯이 빙글빙글 돌리면서 한가운데로 모이게 한다. 밀집도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각자 주특기를 구사해 만찬을 즐긴다. 돌고래들은 초음파 대포를 쏘고 참고래나 범고래들은 이 무리로 돌진, 몇m나 되는 커다란 꼬리로 고등어들을 내리쳐 정신을 잃게 만든다. 상어들은 입을 벌리고 무조건 돌진하는 편이다. 만찬을 즐긴 사람들이 춤 추고 노래하듯 돌고래들은 바다 표면을 솟구쳐 오르는 공중 뛰기로 만찬을 자축한다.

그런데 이 즐거운 자축이 녀석들의 목덜미를 잡았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게 뭘 뜻하는지 알게 된 일본 어부들이 즉시 달려와 그물을 쳤던 것이다. 너비가 20㎞나 되는 그물을 드리운 어부들에게 그건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식이었다. 엄청난 고등어 무리는 물론이고 큼지막한 돌고래들과 참치까지 한 번에 잡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돌고래들의 점프는 그들에게 만선의 신호였다.

즐거운 자축 무대가 죽음의 잔치로 변하자 돌고래들도 가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녀석들은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법, 우선 ‘축하 쇼’를 줄였다. 축하 점프를 할 때마다 이런 일이 생기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상한 건 다른 나라 어선들은 이전처럼 돌고래들의 축하 쇼를 볼 수 있었지만 유독 일본 어선들만 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녀석들이 일본 어선을 구별할 수 있었던 걸까?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랬다.

더 인상적인 건 그물에 갇히더라도 멋지게 탈출하는 녀석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그물에 갇힌 참치들은 어떻게든 그물을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물은 그러면 그럴수록 몸을 조인다. 이걸 안 돌고래들은 가만히 있었다. 이미 잡힌 몸이니 아무리 몸부림을 쳐봤자 필요 없다는 것을 알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체념했던 걸까? 아니었다. 녀석들은 어선이 바다에 놓은 그물을 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후진 기어를 넣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용수철처럼 힘껏 솟구쳐 올랐다. 후진기어를 넣으면 20초 정도 그물의 윗부분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항아리 입구처럼 열리는 공간이 생기는데 바로 그 곳으로 차례차례 힘껏 솟아 올라 그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다음 어선이 쫓아올 수 없는 곳에서 참았던 공중 묘기를 선보였다. 마치 다시 한 번 잡아보라는 듯 멋진 공중 회전을 한 다음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회심의 복수를 한 것이다.

이 돌고래들을 연구해 온 미국 해양생물학자 캐런 프라이어는 어부들과 돌고래들 사이에 일어난 이 공방전이 서로의 패턴 파악 능력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 연구 결과를 ‘휴머니즘의 동물학’에 소개한 독일의 동물학자 비투스 드뢰셔는 사고력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생각을 통해 패턴을 찾아낸 덕분에 어부들은 만선을, 돌고래들은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패턴 파악은 곧 미래 예측

패턴이란 무엇인가? 패턴이란 어떤 현상이나 움직임이 반복적·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다른 현상과 섞여 있거나 숨겨져 있기에 숨은 그림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이상 지능이 있어야 찾아낼 수 있는데, 찾아내기만 하면 엄청난 경쟁력이 된다.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있고,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있다는 건 곧 미래를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가령 상대가 왼쪽으로 세 걸음 갔다가, 오른쪽으로 두 걸음 가는 패턴을 파악했다면 그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어부들이 먼저 올린 ‘1승’은 돌고래들의 패턴을 파악한 덕분이었다. 점프만 보고도 보이지 않는 바다 수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 수 있는 게 패턴 파악의 장점인 까닭이다. 돌고래들이 어부들을 멋지게 따돌린 대응책도 마찬가지였다. 녀석들은 어부들의 패턴을 파악해 살 길을 찾아냈다. 이후엔 어부들이 첨단 기기를 사용해 우위에 서긴 했지만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게 있다. 무엇이 승자를 만들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은 언제나 더 나은 삶으로 가는 열쇠였다. 옛날 파라오가 다스리던 이집트의 제사장들은 매년 봄 지금의 수단에 있던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신전에 모여 중요한 의식을 거행했다. 의식의 목적은 다가올 1년 농사를 결정하는 나일강이 과연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하는 걸 예언하는 것이었다. 1년 농사가 백성의 생존과 국가의 재정을 좌우하는 것이니 이 의식은 국가 중대사였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치러진 이 의식은 예언의 권위를 높이는 장치였을 뿐 실제는 강물의 색깔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강물 색깔에 따라 그 해 농사 수확량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맑은 강물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수확량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고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강물이 흐리고 어두우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동시에 온다는 신호였다. 큰 홍수가 올 수 있었지만 덕분에 풍작을 기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강물 색깔이 녹갈색일 때였다. 재앙이 다가온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이 색깔이 나오면 제사장은 왕에게 위기를 예언하면서 비축한 곡식을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예언은 대체로 맞아 떨어졌고 제사장은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걸 아는 능력이 어디 흔한가. 예언은 그의 힘이었다. 그는 어떻게 강물 색깔로 예언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신통한 능력이 아니었다. 오랜 관찰과 경험으로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강물이 투명하면 백(白) 나일강의 강물이 우세하다는 것이고, 흐리고 어두우면 청(靑) 나일강이 우세하다는 의미였다. 녹갈색은 홍수가 빨리 와서 모든 걸 망친다는 신호였다. 참고로 나일강의 상류는 크게 두 갈래인데, 서쪽의 백 나일강은 우간다와 케냐, 탄자니아에 걸쳐 있는 아프리카 최대의 담수호이자 세계 3위인 빅토리아호에서 발원하고, 동쪽의 청 나일강은 에티오피아의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시작돼 수단의 하르툼에서 백 나일강과 합쳐진다. 하류인 이집트에 홍수를 가져다 주는 건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지역을 흐르는 청 나일강이 범람할 때인데 여기서 생겨나는 색깔의 의미를 알았던 것이다. 그 이상의 원인은 몰랐지만 색깔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았기에 미래를 예언할 수 있었다.

패턴은 이렇듯 핵심적인 속성을 담고 있다. 아무렇게나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 숨은 그림, 숨은 질서가 들어있다. 인간의 뇌가 패턴 파악에 유난히 예민한 것도 그만큼 효과적이었다는 말일 것이다.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눈과 귀를 갖고 있는 것도 패턴 파악이 생사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턴 속 숨은 그림, 숨은 질서 찾아야


▎이집트의 제사장들은 매년 봄 지금의 수단에 있던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신전에 모여 강물의 색깔을 확인해 그 해 농사의 풍작·흉작 여부를 예측했다. / 사진:© gettyimagesbank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힘, 생존력이란 불확실한 것을 얼마나 확실한 것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에서 좌우된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확실함을 만들어낼수록 생존력은 높아진다. 그리고 이 확실함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주요한 수단이 바로 패턴 파악이다. 그래서 생물학에서는 패턴을 발견하는 능력이 높을수록 고등 생명체로 정의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경기순환 주기를 예상하는 그래프에서부터 주식시장과 세계 유가시장에 대한 예측까지 미래를 예측하려는 세상의 모든 노력은 한마디로 패턴 파악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빅데이터라는 게 뭔가.

우리 힘으로는 처리하기 힘든 작고 무수한 데이터에서 쓸모 있는 패턴을 컴퓨터의 힘으로 찾아내는 것 아닌가. 그래서 패턴 발견 능력은 세상의 변화를 읽는 힘이다. 알기만 한다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힘이다. 이런 능력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한 때 참치를 가장 잘 잡는 선장으로 유명했던 선장이 있었다. 참치는 육지 연안이 아니라 넓고 넓은 대양에서 사는 녀석이라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게 쉽지 않은데 어떻게 이 녀석들을 잘 잡을 수 있었을까?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참치들이 주로 어디에서 주낙을 무는지, 수온이 어떤지를 일일이 기록했어요. 그리고 잡힌 참치의 배를 갈라 무엇을 먹고 있는지 직접 일일이 확인했어요. 그렇게 몇 년 하니 감이 오더군요.” 이렇게 잡은 참치로 지금의 동원그룹을 일으킨 김재철 회장의 이야기다. 관찰과 이 관찰을 축적하는 게 비결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5년 전에 참치를 잘 잡았다고 그 방식으로 지금 잘 잡지는 못해요. 수백만개 낚시가 드리워 있는데 참치도 제 살길을 찾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연구를 계속 해야 합니다. 어군탐지기나 첨단장비만으로 해결되지 않아요. 똑같은 대형 선망선을 타고 나가 1만t을 잡는 선장이 있고, 3000t 밖에 못 잡는 선장이 있어요.”

꾸준하게 관찰하고 그걸 축적하는 건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가치 있는 건 대개 어렵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경험도 많아야 하니 온갖 시행착오를 이겨내야 한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남다른 능력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걸 보게 해준다.

관찰→고찰→깨달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지금 격랑을 넘어 요동을 치고 있다. 나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서 있는 판이 흔들리고 있다. 남북한은 연결을 시도하며 화해 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반면, 우리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은 충돌하고 있다. 내부는 더하다. 최저임금에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그리고 세계 최악의 수준의 저출산·고령화 같은 문제가 모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든 것이 바뀌리라는 신호다. 이런 격랑과 요동 저 아래에, 그리고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이게 지나가면 어떤 상황이 올까?

변화는 항상 누군가에게는 위기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다. 이 거친 흐름 속에 숨어 있는 유효한 패턴을 먼저 찾아낸 사람이 미래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기에 남다른 것을 알아 보는 능력이 점점 필요해지고 있다. 관찰은 잘 보는 것이다(잘 보지 못한 것이 불찰(不察)이다). 앞서 가는 사람들은 관찰을 통해 고찰(考察)을 하고, 고찰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는 이걸 통찰력이라고 한다. 통찰력은 살아가는 힘이고, 멋진 세상을 여는 나만의 열쇠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443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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