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경기 좋지만 근로자 임금 상승은 더뎌…일하는 방식 개혁 통한 생산성 향상 필요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일본의 대기업 경기는 개선됐지만 임금 인상 및 생산성 향상은 아직 더디다는 평가다. |
|
일본 경제는 지난해 대졸자의 98%가 졸업 이전에 취업이 확정될 정도로 고용 사정이 나아졌다. 일손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폐업하는 기업이 속출할 정도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7%에 달했던 일본 경제는 올해도 완만한 확장 국면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왔다. 올 1분기의 실질 GDP 성장률은 9분기 만에 소폭 마이너스 성장(전기 대비 -0.2%)을 기록했지만 이는 주택이나 재고투자 등의 감소에 따른 일시적인 것이다. 2분기 이후 다시 플러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다만 일본 경제의 완만한 회복세를 억누르는 리스크 요인이 부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미국 정책금리의 지속적인 인상과 함께 그동안 해외 자금 조달을 늘려왔던 신흥국에서 금융 불안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지원성 금융을 받게 된 아르헨티나 외에도 베네수엘라·터키 등의 경제 상황이 어려우며, 브라질이나 멕시코의 통화가치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이런 신흥국의 사정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금리 인상 정책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흥국 경제·금융 불안 탓에 안전통화인 일본 엔화의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 이 경우 일본 경제에 부담이 커진다. 사실 그동안 호조를 보인 일본의 공작기계, 스마트폰 관련 전자 부품 등의 수출이 올 1분기에는 다소 둔화되기도 했다.미국의 관세율 인상 정책이나 미·중 통상마찰이 점차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줄 우려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철강재 등의 관세율을 올린 데 이어 중국의 대미 수출액 중 절반이 넘는 금액의 품목에 대해 관세율을 인상했다. 이에 대해 중국도 보복에 나서는 등 양국 무역마찰의 파장을 일본 산업계도 우려하고 있다. 미·중 통상마찰이 계속 악화될 경우 일본의 대중·대미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기타 국가의 수출 및 성장 둔화로 일본의 수출 둔화 악영향도 나타날 수 있다.이들 리스크는 일본의 생산·수출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기업의 설비투자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 지난 6월 일본은행의 기업 체감경기 조사인 단칸지수(단기 경제 관측지수)는 대기업 제조업 기준으로 21포인트에 머물러 전기 대비 1포인트 하락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로 일본 기업의 체감경기가 다소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 체감경기 다소 악화물론 일본 기업의 체감경기 악화가 전체 경기의 악화로 당장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기업의 설비투자 의욕이 강하다는 것도 같은 일본은행의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은행이 지난 6월에 집계한 일본 기업들의 2018 회계연도 설비투자 계획을 보면 투자 증가율이 7.9%를 기록해 지난 3월 조사의 -0.7%에서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일본 기업의 수익이 엔고에도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한편 극심한 인력 부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산업용 로봇이나 사무업무 합리화를 위한 인공지능(AI) 등 정보기술(IT) 투자를 확대하려는 의욕이 강한 것으로 거시경제 지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인프라를 포함한 관광산업 진흥책에 힘입어 올해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처음으로 3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일본 관광산업은 호조세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다. 이와 관련한 서비스업, 지역밀착형 산업에서의 투자 및 고용 확대 의욕도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의 관광객들을 대거 유치하고 있는 일본의 관광산업의 호황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그동안 아베노믹스의 효과와 함께 일본 기업의 자체적인 구조혁신 노력이 맞물리면서 일본 경제의 성장 구조가 과거보다 대외 충격에 대해 강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아베노믹스 초기에는 대규모 금융완화를 통해 엔저를 유도하고 주가를 끌어올리면서 일본 기업의 수출 확대를 뒷받침했다. 이와 함께 법인세 인하, 산업경쟁력 강화법을 통한 규제 완화와 구조조정 촉진 정책이 맞물리면서 일본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됐다. 일본 기업은 과거 20년 동안 완만하게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마무리 단계에서 아베노믹스의 구조혁신 정책이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소니의 경우 과거와 달리 반도체 부품이나 콘텐트, 금융 등을 중심으로 한 수익구조로 변화했으며, 파나소닉도 차량용 부품 등 기업 간 거래(B2B) 기업화가 가속되는 혁신을 이뤘다.기업의 수익 개선 정책이 점차 일본 기업의 투자 확대로 이어지면서 고용의 양과 질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일본의 가계 소비는 아직 기업의 설비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실정이다. 앞으로 일본 경제의 과제는 기업의 수익·투자 확대가 소비 확대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일 경우 대외 여건이 악화해도 일본 경제는 내수를 중심으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에서 고용 확대, 임금 상승 나타나실제로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근로자들의 실질임금 상승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력 부족 문제가 겹쳐 다소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일본 가계는 그동안 임금 하락, 디플레이션에 고전해왔기 때문에 소비 마인드가 크게 개선되기 위해서는 경기 회복세가 장기화되고 임금 상승 추세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다만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중요한 과제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그동안 여성의 사회 진출이나 고령자의 고용이 확대되는 등 노동력의 양적 투입이 경제 성장에 기여해왔다. 인구 중에서 일하는 사람의 비중이 커져 일본의 인구 1인당 소득 증가율은 최근에 높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같은 취업자 1인당 소득 증가율은 아베노믹스 이후 오히려 둔화돼왔다. 고용의 양적 확대가 여성 및 고령자 등의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이런 상황을 극복해 인구 감소, 인력 부족 시대에도 경제적인 활력을 유지하고 지속 가능한 임금 상승 기조, 소비 확대를 이루려면 생산성 향상이 필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생산성은 결국 일하는 근로자의 창의와 노력에 따라 뒷받침되기 때문에 일본 정부도 일하는 방식 개혁에 그동안 주력했다. 마침 지난 6월 29일에 ‘일하는 방식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는 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해 1인당 시간당 생산성의 향상을 유도해 경제적인 활력을 제고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잔업시간을 연간 720시간, 1개월의 상한선을 100시간 미만으로 해서 연간 단위로 탄력적으로 잔업시간을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연봉 1075만엔 이상의 금융업 딜러나 컨설턴트 등의 전문직에는 ‘탈 시간급제도(고도 프로페셔널제도)’를 도입해서 잔업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성과로 임금을 결정하기로 했다. 전문직의 경우 성과를 통한 생산성 향상 관리를 보다 강화하면서 탄력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런 근로 관행이 정착되고 일본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 임금 상승, 소비 확대라는 선순환이 강화될 경우 일본 경제의 성장활력이 높아지고 저출산 인구고령화 시대에서도 경제 활력의 급격한 쇠퇴를 어느 정도 억제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 전후 최장 기간 경기확장 가능성물론 생산성 향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과제다. 따라서 일본 기업이나 산업계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과 함께 제4차 산업혁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스마트 공장 구축을 위한 혁신과 함께 최근에는 사무직 업무에서의 인공지능(AI) 도입 등 업무 혁신에 주력하고 있다. 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 등의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공장에서만 도입해 부분적인 혁신에 그친다면 회사 전체 차원의 생산성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일본 기업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회사 전체적 차원에서의 구조전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주력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다만, 극심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생산성 향상이 생존 과제가 되고 있는 음식점 등의 서비스업의 경우 중소·영세 사업자가 많으며, IT 기술을 도입해서 주문·조리·계산 등의 전체 업무를 합리화 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산업 현장에서 부족한 AI 등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인터넷 기술직 등을 양성하는 노동·교육 시스템을 강화하면서 노동력을 성장 부문으로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이 과제가 되고 있다.일본 기업들이 수익성을 높이고 활력이 회복되고 있는 데다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려는 일본 정부의 정책 방향도 강화되고 있어서 일본 경제는 과거 0%대 초반의 낮은 성장세와 디플레이션에 고전했던 시기에 비해 경제적 활력이 고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아베노믹스가 지향하는 2% 성장이라는 목표의 달성은 어렵고 각종 과제의 해결에 시간이 소요되고 인구 감소세를 극복하기도 쉽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중 통상마찰 등으로 세계 경제 환경이 다소 악화돼도 올해 중에 일본 경기의 회복세가 급격하게 악화될 가능성도 작다고 할 수 있다. 내년 후반기에는 세계·일본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가능성은 있으나 올해 일본 경제는 1% 내외의 성장세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에 전후 최장의 경기확장 기록을 갱신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