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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29) 카나리아의 교훈] 실패는 빨리 잊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서 해결 방법 모색…날마다 새로워져야 경쟁력 갖춰

▎사진:© gettyimagesbank
사상 최악의 더위가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솔로몬 왕이 반지에 새겼다는 말 그대로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한 달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생활은 더위 이전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뜨거운 바람은 선선해질 것이고 이내 찬 기운마저 느껴질 것이다. 거리에서만이 아니다. 그때쯤에는 우리 삶에도 찬바람이 불 수 있다. 경영자들에게는 1년 매출이 가시화되면서 그럴 것이고, 월급쟁이라면 1년 동안 뭘 잘 했고 못했는가 하는 성과 평가가 서늘한, 아니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다가올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이 가을 열매처럼 보기 좋게 익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겨울이 오기도 전에 살얼음판을 걷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런 일이 우리 발등에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자 하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나름 괜찮은 방안을 만들어낸 자연의 주인공이 있다. 저 먼 대서양에 떠 있는 섬, 카나리아 제도라는 이름을 있게 한 카나리아라는 새다. 얼마 전 프로그램을 잘 만들기로 소문난 나영석 PD가 ‘윤식당 2’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진행해 우리나라에 그 존재를 알린 바로 그곳이다. 제도(諸島)라는 말 그대로 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유럽에서는 휴양지로 이름난 곳이다.

섬 이름이 카나리아이듯 녀석들은 이 섬을 대표할 만하다. 귀엽고 깜직하게 생긴 데다 목소리까지 고와 이미 로마시대부터 애완용으로 뿐만 아니라 관상용으로 유명한 녀석들이다. 애완용으로 길러지는 작은 새 중 가장 먼저 인류의 집안으로 진출했다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유튜브에서 ‘카나리아(canary)’를 검색해 보면 녀석들의 아름다운 지저귐을 곧바로 들을 수 있다. 우리에게 ‘꾀꼬리 같은 목소리’라는 표현이 있다면 영어에는 ‘카나리아처럼 노래 부르다(sing like a canary)’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다만, 우리에게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여성을 지칭하는 것에 반해, 카나리아들의 매혹적인 노래는 수컷들의 전유물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남자들은 연인에게 멋진 스포츠카나 으리으리한 집, 또는 울퉁불퉁한 근육을 선보이지만, 이 녀석들은 아름다운 노래 실력을 선사한다. 요즘 시골에 가면 목청 좋게 울어대는 개구리들이 노래로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봄이 되면 이곳 숲에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가득하다. 이때쯤 공개 구혼 오디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당락 기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 실력이다. 목소리 크다고, 있는 힘껏 열심히 부른다고 선발되는 게 아니다. 가슴에 착 와 닿는, 그러니까 삶의 경험이 녹아 있는 듯한 원숙한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비투스 드뢰셔 [휴머니즘의 동물학])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섬은 망망대해에 떠 있기에 풍요로운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생후 3~5년쯤 되는 카나리아의 사망률이 굉장히 높다. 멋진 외양만 보고 골랐다가는 신혼 초에 배우자를 잃는 슬픔을 겪을 수 있고 그러면 새끼를 키우기가 힘들어진다. 암컷은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했을 것이고, 건강을 상징하는 어떤 지표를 찾아내야 했을 것이다. 여느 생명체가 그렇듯 아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 텐데, 그 결과 탄생한 게 이 노래자랑대회다. 우리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눠보면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듯 노래를 들어보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오디션이 날이면 날마다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봄 한 철 치러지기에 기회는 딱 한 번이다. 당연히 합격과 불합격, 기쁨과 비애가 엇갈릴 수 밖에 없다. 1978년 페르난도와 마르타 노트봄이라는 부부 학자가 이 섬에서 녀석들을 관찰 연구한 적이 있는데, 그중 한 청년 카나리아에 대한 사례가 인상적이다. 녀석은 무려 35곡이나 되는 레퍼토리를 기세 좋게 소화했음에도 4곡 정도만 어느 정도 관심을 끌었을 뿐, 무려 31곡을 퇴짜 맞은 끝에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열심히 부르기는 했지만 더 멋진 실력을 가진 녀석이 나타나는 바람에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아예 가능성이 없었으면 모를까 될 듯 말 듯하다 안 되는 것이야 말로 견디기 힘든 건데 녀석은 어땠을까?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 게 없을까?’ 하며 비탄에 빠졌을까?

노트봄 부부도 녀석의 이후 행동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35곡이면 상당히 많은 곡을 소화한 것인데, 그런데도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으니 말이다. 온 숲을 찾아 헤맨 끝에 드디어 이 녀석을 찾은 그들은 이 루저(loser)의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깜짝 놀랐다. 녀석은 힘이 쭉 빠진 채 비탄에 잠겨 있거나 축 쳐져 있는 게 아니라 뭔가를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연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해 퇴짜를 맞은 과거를 깨끗이 잊고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노래 실력이 좋은, 그래서 멋지게 짝 찾기에 성공한 커플 근처로 가서 이 영광의 주인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르길래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내 노래는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퇴짜를 맞게 됐는지, 이런 비교를 하면서 몰래 그 비결을 배우고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이 청년 카나리아만이 아니었다. 삶의 경험이 부족한 탓에, 또는 경험은 있었지만 가슴에 와 닿는 표현을 하지 못한 탓에 고배를 마신 청년들은 마치 아쉽게 대학 입시에 떨어진 학생처럼 심기일전, 최고의 벤치마킹 대상을 찾아, 그들을 유심히 관찰한 후, 다음 해 봄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물론 그렇다고 다음해 오디션에서 100% 합격이 보장되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노력한 녀석들은 다른 녀석들에 비해 다음 해 합격률이 높았다.


▎tvN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윤식당 2’는 대서양의 카나리아제도에서 촬영했다. / 사진:© gettyimagesbank
녀석들은 왜 이런 ‘문화’를 가지게 됐을까? 아마 수없는 실험과 시도를 해본 결과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노력을 했는데도 안 된다 싶으면 포기하거나 무조건 더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 다음, 신속하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안 것이다. 또 다른 카나리아 전문가인 미셸 크로이처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짝짓기에 성공한 카나리아들, 특히 앞의 녀석처럼 퇴짜를 맞은 후 다음 해에 재빨리 성공한 녀석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연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클로드 귀댕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유혹]).

퇴짜를 맞은 수컷들은 그저 기계적으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녀석들에게는 노트봄 부부가 관찰했던 청년 카나리아처럼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그러니까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되는 역할모델을 찾아가 그들의 노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패턴이 있었다. 잘 들어야 잘 부를 수 있는 까닭이다. 주변에 이런 실력자들, 그러니까 아버지나 삼촌이 있는 녀석들은 행운아들이었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주변에 실력자들이 있을수록 실력 향상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혼자 고립되는 녀석들은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능력 자체를 가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신붓감들은 대체로 고난도의 노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집에서 카나리아를 기를 때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새로 태어난 새끼에게는 ‘스승’을 붙여주고, 어느 정도 크면 암수를 따로 떼어놓는 안타까운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절절한 구애를 할 게 아닌가!).

카나리아들의 세상에 이런 문화가 뿌리 내린 건 그곳이 섬이어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지금 우리가 대체로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도 이 카나리아 성공 원리가 필요할 듯싶다. ‘열심히’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잘’ 하는 것이고, 원하는 게 안 되었을 때는 깨끗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말이다. 새로운 기회는 여기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어디서건 기회는 그냥 주어지는 법이 없다. 좌절에서 멈추고, 슬픔에서 주저앉아 버리면 거기가 끝이다. 사실 우리에게도 살아간다는 건 항상 오디션을 보는 과정일지 모른다. 선택 받아야 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고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돌아설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삶의 높낮이도 어찌 보면 여기서 시작된다. 이걸 새로운 시작점으로 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삶이 바뀐다.

경험을 해 보면 누구나 알게 되는 것이지만 성과가 멋지고 대단한 일수록 그 과정은 절대 멋지지 않다. 과정이 아름답다고 하는 건 거짓일 때가 많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그런 것이고, 제3자 관점에서 볼 때 그런 것이지 당사자에게 그 과정은 절대 아름답지 않다. 아니 사실은 대단히 고통스럽고 힘들다. 무너지는 가슴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과정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땀과 눈물로 그 과정을 채워야 할 때가 많은데 말이다. 그러니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또 다시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원점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한 사장은 주요 경영진들과 회의를 할 때마다 가끔씩 묻는 게 있다.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뭘까요?” ‘혹시 우리가 지금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물음이다. 그들에게만 던지는 물음이 아니다.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다. 진짜는 항상 숨겨져 있을 때가 많고, 가치 있는 건 보이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보이는 솔루션보다 보이지 않는 본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로 머리를 맞대다 보면 솔루션은 만들 수 있지만 나중에 보면 일시 방편에 불과할 때가 많아요. 솔루션은 발등의 불을 끄는 것과 비슷하거든요.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결국 조금 있으면 또 다른 발등의 불로 떨어집니다. 그러니 문제의 근본, 본질을 알아야 해요.”

그가 말하는 문제의 본질이란 다름 아닌 원점에서 세상과 회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야 진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 되고 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가늠하는 것도 제대로 된 원점에 설 때 가능하다. 탁월한 리더들은 하나 같이 현장 가기를 즐겨 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들은 그걸 좋아하는 걸까? 사실 그들에게도 그건 귀찮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곳이 공장이건 고객이건 시장이건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경쟁력이 거기서 시작되기에 가는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그들의 탁월함 또한 여기서 시작한다.

문제는 원점이 어디에 있는지, 또는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작점을 모르니 제대로 시작할 수 없고,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니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바라는 일이 안 될 때만 원점이 필요한 게 아니다. 하고자 하는 일이 기대 이상으로 잘 되었을 때에도 원점이 필요하다. 미국의 어떤 유명한 미식축구 감독이 기자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 뭘까요?” “아주 짧은 기억력!” 빨리 잊어버리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좋은 선수가 된다는 말이다.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이렇게 말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그렇다. 내일 떠오르는 태양은 오늘의 태양이 아니다. 태양이 다르니 세상도 다를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에 맞춰 살아야 한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찬 바람 부는 한겨울에도 따뜻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447호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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