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포커페이스로 경영하기 

 

이상호 참좋은여행 대표

“오직 인간만이 얼굴(Prosopon)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내린 정의다. 헬라어 프로소폰은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로 번역된 후, 오늘날 퍼스널리티(Personality)의 어원이 됐다.

사람의 얼굴에는 60여 개의 근육이 있다. 이 근육들이 서로 달리 움직이며 1만 가지에 가까운 표정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오직 사람만이 그 표정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다. 거짓 웃음과 진짜 웃음,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제 아무리 발달한 인공지능이라도 그 차이를 구분해 낼 수 없지만 사람은 초등학생이라도 대번에 알아볼 수 있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얼굴과 그 표정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언제부터인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서 플래시 세례를 받는 유명인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 그 흔한 모습 중에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띈 것은 특검사무실로 출두한 경남도지사의 얼굴이다. 지극히 평온한 표정, 옅은 미소를 살짝 띠면서 어떤 불쾌함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포커페이스’. 모든 감정을 넘어선 듯한 무표정 덕분에 혹자는 “뭘 잘했다고 저리 뻔뻔한가”라 야단을 치고 또 다른 이는 “죄가 없으니 역시 당당한 모습”이라며 박수를 보낸다.

여기에 비하면 기업인의 출두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어 보인다. 잔뜩 주눅 든 표정과 근심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앞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정관리에 자신이 없는 기업인은 휠체어라는 소품을 활용해 자신의 처지를 더욱 초라하게 표현한다. 미세먼지 걱정 없는 날에도 마스크는 필수고, 여기에 간호원과 링거까지 걸고 등장한다면 집요한 언론사 기자들도 인터뷰를 포기하고 만다. 물론 그 소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연륜도 있어야 함은 물론, 때로는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비아냥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하지만 말이다. 혐의의 경중이나 파워게임에서의 위치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TV에 나타난 포토라인의 유명 인사 중에는 포커페이스를 제대로 유지한 정치인 쪽이 승리자로 보인다.

경영자의 표정관리는 대단히 중요하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아버지의 표정은 온화해도 좋고 한껏 들떠 있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내 가족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는 경영자가 되면 사소한 감정 표현이 때로는 낭패가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늘 곁에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회사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회의를 할 때 참석자들은 사장의 얼굴 표정을 살핀다. 난감하다. 때로는 근엄하게 또는 신중하고 결단에 찬 표정을 짓고 싶지만, 본업이 배우가 아닌지라 대개 어설픈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대부분의 경영자는 가장 방어적인 표정, 인상을 쓰는 얼굴로 상황을 대처하는 자기만의 대비책을 가지게 된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단답형으로 말을 맺는 필자의 케이스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이런 경우 가장 바람직한 얼굴은 앞서 예를 든 포커페이스다. 원래 도박용어로 나온 말이지만 이 단어가 도박장을 빠져 나오는 순간, 남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닌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한 자기 노력이 된다. 쉼 없이 고뇌하고 흔들리는 상황에서의 무표정은 어쩌면 혹독한 자기 수양의 결과가 아닐까.

직원들이여 사장의 무표정에 실망하거나 겁먹지 말기 바란다. 기업의 역사를 돌이켜 보았을 때 무표정보다 과도한 감정의 낭비와 그로 인한 오해가 불러일으킨 참사가 더 많지 않았던가.

1448호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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