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다시 보는 마쓰시타의 경영철학 

 

타마키 타다시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의 100세 이상 인구는 6만7824명(2017년 9월 기준)이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장수 국가’다. 또 ‘장수 기업’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기업조사 업체인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창업한 지 100년이 넘은 기업 수는 지난해 기준 3만3069개다. 이 중 역사가 가장 긴 회사는 오사카의 건축회사 곤고구미(金剛組)다. 야마토(大和) 시대인 578년에 창업했다.

최근 일본의 ‘100년 기업’ 목록에 새로운 이름이 추가됐다. 가전회사로 유명한 파나소닉이다. 올해 창업 100주년을 맞아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의 평전과 생전 발언을 담은 책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파나소닉은 지난해 7조9822억엔(약 80조원)의 매출과 3605억엔(약 4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매출은 6%, 영업이익은 37% 증가했다.

파나소닉이 사명을 마쓰시타로 썼던 시절에는 라디오·TV·VTR·세탁기·냉장고 등이 주력 생산품인 생활가전 업체였다. 지금의 파나소닉은 전혀 다른 회사다. 현재 사업 분야는 가전, 자동차, 주택, 기업 간 거래(B2B) 등이다. 파나소닉은 미국 전기자동차(EV) 제조사인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안전시스템, 운전자지원 시스템, 전자 거울, 차세대 조종석 등 제품에서도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자동차 관련 사업의 매출은 연 2조엔에 이른다. 주택 사업도 호조세다. 파나소닉은 ‘에너지 절약’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시스템 에어컨과 온수·조명·축전 시스템 등을 결합해 에너지 소비가 적은 주택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B2B 분야에서는 항공기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개발, 공급하고 있다. 모두 예전에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사업으로 성장 궤도에 재진입했다.

쓰가 카즈히로(津賀一宏) 파나소닉 사장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1990년까지 50년 간 꾸준히 성장을 일구었다. 대형 가전업체로는 높은 10%대 이익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높은 이익률과 막대한 내부유보금 덕에 한 때 ‘마쓰시타 은행’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창업자 마쓰시타가 1989년 사망한 이후 20년 넘게 파나소닉의 성장은 멈췄다. 영화사업 진출, 액정패널 및 플라즈마디스플레이(PDP) 사업 투자, 휴대폰·디지털카메라 사업 강화 등 여러 시도를 했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지 못했다.

결국 2011년 7722억엔의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며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과거의 거대한 성공 경험은 오히려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을 가로막았다.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근무한다는 직원들의 안일함 속에 위기의식도 부족했다. 파나소닉은 브랜드 파워와 기술력, 이를 이끌어 갈 인재를 겸비한 회사였다. 그럼에도 이익을 내지 못한 것은 바로 ‘경영’의 문제 때문이었다. 쓰가 사장은 이런 문제가 팽배해있던 2012년 사장에 취임했다. 그가 관리 개혁, 임직원 의식 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설득력을 얻은 말은 “회사의 이익이란 사회에 공헌한 보상”이라는 생전 마쓰시타의 발언이었다. 마쓰시타는 기업의 이익을 이렇게 정의하며, 사회에 공헌하지 못하는 회사는 존재 가치가 없다고도 했다. 마쓰시타 경영철학이다. 쓰가 사장은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회사는 창업자의 정신에 반하는 존재”라고 마쓰시타의 철학을 재해석해 임직원들에게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임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높은 성과급은 대표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임직원들은 돈만을 좇아 일하는 것은 아니다. 쓰가 사장은 일에 사회적 역할을 부여해 자부심을 갖게 하는 한편, 인정 욕구를 자극했다. 마쓰시타의 철학은 21세기인 지금도 충분히 가치가 살아 있는 셈이다. 쓰가 사장은 의욕으로 똘똘 뭉친 임직원을 이끌고 과감히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자동차와 주택을 중점 성장 사업으로 꼽고 집중 투자에 나섰다. 파나소닉은 극적 변신을 진행했다.

어떻게 해야 기업을 지속가능한 존재로 만들 수 있느냐는 세계 기업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지금까지 그 해답은 모범생으로도 불리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제시해왔다. GE는 미국 증시의 대표적 주가지표인 다우지수에 1907년부터 110년 간이나 이름을 올렸다.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며 늘 미국의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은 애를 먹고 있다. 실적 또한 부진했다. 그 결과 2018년에 다우지수 리스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100년 전 파나소닉을 창업한 마쓰시타는 일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존경 받는 기업인이었다. 창업자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경영철학과 자금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기업인으로서 사명감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세계 경제의 대공황이 찾아왔을 때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파나소닉 역시 경영난에 시달렸다. 당시 마쓰시타는 “한 사람의 직원이라도 그만두게 해서는 안 된다. 기업인의 사명은 가난을 극복하는 일”이라며 임직원과 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했다. 안일한 인원 감축으로 단기 실적을 올리려는 요즘 경영자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파나소닉의 사훈은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A Better Life A Better World)’이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사회 전체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야말로 기업의 역할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실천했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된다. 엄청난 증세 국가가 돼 멸망하고 말 것이다.” 마쓰시타는 1970년대 이미 일본의 어두운 미래를 예견하고 국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인재 육성에 70억엔의 사재를 털었다. 일본의 정치인 사관학교로 불리는 ‘마쓰시타정경숙’을 설립했다. 1989년 마쓰시타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유산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백만장자로 알려졌지만 그의 재산은 대부분 파나소닉 주식뿐이었다. 살고 있는 집 외에 부동산도 없었고 예금도 거의 보유하지 않았다. 기부와 사회공헌 사업에 사재를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쓰시타의 경영철학과 회사의 DNA에 대한 절대적 신뢰, 존경이 파나소닉이 위기에서 부활하는 원동력이 됐다.

마쓰시타의 사위는 한때 파나소닉의 사장, 회장을 역임했다. 마쓰시타의 손자는 현재 파나소닉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사위는 경영자로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마쓰시타는 전문경영인으로 교체했다. 손자 역시 사장이 되기 위한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최고경영자(CEO)에 오르지 못했다. 현재 부회장의 직함은 명예직이며,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파나소닉에게 중요한 것은 ‘지배의 존속’이 아닌 ‘기업의 존속’이다.” 마쓰시타의 경영철학에 대한 일본 재계의 해석이다. 창업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꼭 창업자 일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이행은 파나소닉을 100년 간 존속시킨 배경이며, 기업인으로서 마쓰시타가 널리 존경 받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비즈니스 모델의 끊임없는 혁신과 다음 100년을 향한 도전.” 쓰가 사장이 2018년 연두에 한 말이다. 파나소닉은 창업자의 정신을 살리면서 200년, 300년 지속가능한 기업을 향해 막 달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 타마키 타다시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닛케이 서울지국장)

1452호 (2018.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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