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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스마트 모빌리티 산업은 지금] 규제·반발·표준화 애로에 급제동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공유차는 택시 생존권 요구에 법 개정 난항…자율주행차는 인프라 확보 시급

▎카카오 카풀 서비스 진출에 반대하는 택시업계 종사자들이 24시간 파업에 돌입한 10월 1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택시회사 차고지에 택시들이 서 있다.
미래형 자동차에 앞다퉈 관심을 갖고 사업에 뛰어들고는 있지만, 딱히 진전을 이루지는 못하고 않다. 오히려 각종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대로라면 미국·일본은 물론 중국·인도에도 뒤질 판이다. 미래형 자동차를 뜻하는 ‘스마트 모빌리티’ 분야에서 국내 산업계가 마주한 달갑잖은 현실이다. 자동차 산업은 기존의 완성차와 부품뿐 아니라 신개념인 공유차·자율주행차 등이 가세한 ‘얼라이언스’ 구조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지만, 국내 현장은 업계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과거 2차 산업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낡은 규제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제조의 융합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대세’에 발맞추기 위한 산업계의 여러 노력에도 현실은 만만찮다.

최근에도 이런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례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카카오택시’ ‘카카오드라이버’ 같은 전에 없던 서비스로 수 년 간 스마트 모빌리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ICT 기업인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는 정식 출시를 준비 중인 공유차 개념의 서비스 ‘카카오 T 카풀’에 참여할 운전자를 사전 모집한다고 지난 10월 16일 발표했다. 목적지가 같거나 방향이 비슷한 이용자끼리 함께 이동할 수 있도록 운전자와 탑승자를 연결해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다. 기존에 있던 카풀 문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앞서 카카오모빌리티는 올 2월에 카풀 분야 스타트업 ‘럭시’를 인수하면서 전국적인 승차난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이 서비스 출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왔다.

카카오·쏘카 등 새 공유차 서비스 논란


카카오는 카카오택시와 카카오드라이버에 이은 스마트 모빌리티 ‘3종 라인업’을 구축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택시 업계가 예상대로 크게 반발했다. 전국의 택시 관련 단체들로 구성된 ‘불법 카풀 관련 비상대책위원회’는 10월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약 5만 명이 모인 가운데 대규모 집회를 열고 “카카오 등 ICT 업계의 카풀 서비스 확대는 현행법에 저촉될 뿐 아니라 택시기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침해 행위”라며 서비스 출시 준비에 대한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하루 동안 전국 택시가 일제히 파업을 벌이기로 결의해 일부 택시가 운행을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서울 지역에서 7만여 대가 이에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단체들에 속한 전국 택시 종사자만 2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이들은 대체로 비대위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장모(54)씨는 “카카오 측이 앱으로 대리운전 콜을 연결해주는 카카오드라이버 서비스를 도입했을 때도 느꼈지만, 이젠 카풀로까지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건데 마치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장악하려는 격”이라며 “카풀 서비스가 24시간 도입되면 택시들이 존재 이유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서울개인택시조합은 카풀 서비스 탓에 개인택시 면허 가격이 대폭 하락하면 국내 택시 산업이 몰락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택시 업계는 이처럼 국내에서 공유차 개념의 새 서비스가 도입될 움직임이 보일 때마다 집단 반발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섣불리 관련 규제 개선에 나서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해왔다. 이들로서는 밥줄이 걸린 문제라 그만큼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업계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면서도 한편으로 스마트 모빌리티 사업 확장에 어려움이 많음을 하소연한다. 카카오와 합병한 포털 ‘다음’의 창업자이기도 했던 이재웅 쏘카 대표가 지난 10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도 이런 시각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느라 불편하고, 택시기사는 낮은 처우에 지쳐 있고, 택시회사들은 기사를 못 구해 차를 놀리고 있고, 새로운 모빌리티 혁신 기업들은 정부와 택시 사이에 끼여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지금,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고생하고 있죠. 정부는 혁신 기업들이 마음 놓고 혁신하게 하고, 그 결실을 사회와 잘 나누면서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만들고, 혁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기존 산업을 연착륙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려는 것(노력)이 필요합니다. 같이 머리를 맞대봤으면 좋겠습니다.’

현행법상 스마트 모빌리티 활성화 어려워


▎쏘카의 공유차. 공유경제는 ‘소유’에서 ‘공유’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스마트 모빌리티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개념이다.
현재 이 대표의 쏘카는 자회사인 VCNC를 통해 종합 승차공유 서비스 ‘타다’를 출시하고 시장의 초기 반응을 살피고 있다. 일종의 렌터카 임대 서비스로, 모바일 앱으로 이용자가 배차를 신청하면 주변에 있던 타다 승합차가 지원되는 방식이다. 회사가 배차를 정하며, 타다 운전사는 따로 승객의 목적지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카카오택시와는 조금 다르다. 보다 차별화하기 위해 교통 약자를 대상으로 한 ‘타다 어시스트’와 고급 택시 서비스인 ‘타다 플러스’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이 대표가 직접 하소연했듯 까다로운 현실이 사업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전국택시노동조합 등 4개 택시 단체는 성명서를 내고 “이 대표를 규탄하며, 타다 서비스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맞섰다. 다른 기업의 비슷한 서비스 출시 또는 출시 준비 때마다 되풀이됐던 불법 논란도 여전히 의식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34조에 의거, 렌터카를 이용한 유상 운송과 기사 알선 행위를 일절 금하고 있다. 사업용이 아닌 차량을 유상으로 운행하거나 임대, 알선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스마트 모빌리티 성장의 주춧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공유차 모델이 유독 국내에서만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규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계속 제기돼왔다. 다만 해당 법 시행령 제18조에선 11~15인승 승합차 등에 예외적으로 기사 알선을 허용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VCNC 측은 여기에 주목하고 불법 논란을 피하기 위해 타다 서비스에서 11인승 승합차만 운영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유차 서비스의 개념으로 세계 스마트 모빌리티 시장을 휩쓴 우버마저 한국 진출엔 결국 실패했듯(2013년 진출했다가 2년 만에 철수), 공유차는 ‘한국의 우버’를 꿈꾸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그동안 도전했다가도 거센 난관에 부딪혀 좌초하기 십상인 분야였다. 이 분야 국내 1위 스타트업인 ‘풀러스’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현행법에 저촉되는 유상 운송이라고 판단하면서 서비스에 제한이 따르는 어려움을 겪은 끝에 지난 6월 김태호 대표가 사임하고 직원의 70%를 구조조정해야 했다. 풀러스는 앞서 2016년 사업을 시작해 220억원을 투자 받는 등 유망한 스타트업으로 꼽혔지만, 사업 확장을 막는 규제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를 않고 수익 확보가 어려워져 지난해만 117억원의 순손실이 발생했다.

다른 스타트업인 ‘차차크리에이션’ 역시 렌터카 이용자가 대리운전 기사에게 운전을 맡기게 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하는 ‘차차’ 서비스를 출시했지만 지난 7월 국토부로부터 유상 운송, 즉 불법이라는 판정을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카카오 모빌리티나 VCNC도 합법적인 서비스를 위한 준비에 힘썼다지만, 예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판단할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정부가 말로는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를 위한 규제 완화엔 소극적이라는 것이 산업계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산업계 한 관계자는 “어쨌든 정부로선 법 그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입법부에서 의원들이 공유차 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법 개정에 나서야 하는데, 정치권은 표가 걸려 있으니 택시 업계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형국”이라고 하소연했다. 오히려 택시 업계의 영업권을 입법 취지로 내세우면서 공유차 확대를 막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 두 개가 발의돼 산업계를 또 한 번 긴장시켰다.

ICT 기반의 스마트 모빌리티 생태계를 더 크게 발전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자율주행차 분야에서도 한국은 아쉬움이 많다. 예컨대 풍부한 완성차 제조 노하우를 갖춘 현대자동차그룹이 일차적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분야이지만, 그조차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에 비해선 후발주자로서 다소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5월 블룸버그는 글로벌 자율주행차 현황에 대한 분석 기사에서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등을 선두주자로 꼽은 반면, 현대차에 대해선 “아직 일반 도로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테스트할 계획이 없다”며 “2025년까지 시장에 자율주행차를 출시할 준비가 덜 된 후발주자”로 평가했다.

블룸버그 “현대차, 자율주행차 준비 덜 된 후발주자”


▎이동통신사들도 정보통신기술(ICT) 시스템으로 자율주행차 산업에 가세하고 있다. 사진은 KT가 지난해 강원 지역에서 시연한 자율주행버스의 모습. 양손이 자유로운 운전자가 창밖으로 손을 뻗어 드론이 배송한 택배를 받고 있다.
현대차는 일단 내년부터 자율주행차의 대규모 실증 운행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동일 현대차 전무는 “자율주행차의 양산을 위해선 차량 가격을 정하는 것 외에도 사회적 신뢰성 확보 등 많은 선결 과제가 존재한다”며 “다른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도 아직 완전한 자율주행 기술의 상용화 시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앞당기려면 ICT나 교통 인프라 확보와 ‘표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박 전무는 “ICT와 완성차가 융합한 커넥티드카 통신 기술 표준화가 늦어지면서 서비스 표준과 법규를 반영한, 정확한 차량 사양 확정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또 교통 환경이 표준화돼 있지 않아 자율주행차에서 필요로 하는, 복잡한 상황에 대한 인공지능의 판단이 아직 덜 만족스러운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허남용 국가기술표준원장도 최근의 한 기고문에서 “자율주행차의 일상화를 위해선 기술 못잖게 중요한 게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신기술에 호환성과 안전성 및 방향성을 주는 표준이 그것”이라며 표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차량용 반도체(ECU)와 센서 제어 시스템, 차량 내·외부 통신, 초정밀 지도 등이 주요 표준화 대상으로 꼽힌다. 현재 자율주행차 관련 국제 표준은 활발히 개발되고 있으며, 한국은 늦었지만 여기에 참여하기 시작해 귀추가 주목된다. 허 원장은 “9월에 헝가리에서 열린 한 국제 표준화 회의에서 자율주행 중 고장이 나면 갓길로 이동하거나 속도를 줄이는 등의 안전성 관련 표준 개발을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이 공동 주도하기로 한 성과가 있었다”면서 “산·학·연 협력 강화를 통해 국내 기술의 국제 표준 채택 사례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공유차의 경우처럼 자율주행차에서도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의 ‘자율주행차 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개혁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자율주행차 관련 입법이 이미 시작된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자율주행차 시험 운영을 위한 시행규칙 정도만 겨우 정비된 상태다. 국내 자율주행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선 도로교통법과 자동차관리법 및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의 개정이 필요하며, 입법 전 정부 차원에서 법률 개정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지난해 말 기준 자율주행차가 겨우 50대 정도 운행된 데 그친 것도 규제 개선이 선행되지 못해서라는 얘기다.

한편 이런 가운데서도 기업들은 미래를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새 먹거리로 스마트 모빌리티에 주목한 SK그룹은 쏘카 등에 투자해 공유차 서비스 기반의 플랫폼 사업자로 거듭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장은 쉽지 않은 국내에서 눈을 돌려 해외 투자로 활로를 개척하려는 구상도 있다. 미국 공유차 업체 ‘투로’에 투자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도 호주 기업 ‘카넥스트도어’에 투자해 기술을 공유하고, 새로운 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를 선보이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업체와 함께 소비자들의 차량과 스마트폰을 연결해주는 ‘현대 오토 링크’라는 앱을 개발할 계획이다.

지난해 국내 자율주행차 50대 운행 그쳐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최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보일 만큼 적극적이다. 업계는 오는 2020년에 국내 공유차 시장이 5000억원 규모로 성장하면서 국내외 투자의 결실을 일부 맺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분야에서도 비록 지금까진 후발주자에 그쳤지만, 앞으로 선두주자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산업계 곳곳에서 엿보이고 있다. 완성차와 함께 자율주행차의 근간을 이룰 전장(자동차전자장치) 분야에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ICT 시스템 분야에선 SK텔레콤과 KT가 각각 가세해 신사업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법률·제도 정비와 더불어 사회 전체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1456호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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