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투자와 실패에서 배우는 문화 주문... 경기 침체와 미·중 무역전쟁 등이 위험 요인
▎재계 주요 총수들이 1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 참석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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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기존의 사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변하고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남들보다 먼저 차별화된 경쟁력을 키우고 새로운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국내 10대 그룹 경영인의 올해 신년사에 담긴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경기 침체와 미·중 무역전쟁 등 새해 녹록하지 않은 대내외 경영 여건 속에서 국내 주요 그룹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은 신년사에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통한 장기적 성장과 지속가능 경영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지금 하는 일 재정의·재검토 해야올해 10대 그룹 신년사엔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위기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소프트웨어·콘텐트·서비스·에코시스템 등 다각적인 분야로 경쟁의 패러다임이 변화된 지금, 앞으로의 미래는 많은 기업에 있어 성장과 정체의 문제가 아닌 생존 또는 퇴출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처음으로 정몽구 회장 대신 그룹 시무식을 주재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기존과는 확연하게 다른 새로운 게임의 룰이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창수 GS 회장은 “지금 일하는 방식이나 관행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새로운 관점과 방법으로 접근해봐야 한다”며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가 다가올 미래에도 차별화된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을지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역시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의 변화가 순식간에 우리 주력 사업을 쓰나미처럼 덮쳐버릴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위기의식을 강조했다.유통 업계의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은 소비패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인구구조와 라이프스타일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우리의 주요 고객층과 특성 역시 변하고 있다”며 “고객과 가치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방식으로 효율적 소비를 하는 ‘스마트컨슈머’가 일반화되고 있다”며 “우리의 사업 방식은 과거에는 우리의 성공 요소였으나 현재는 남들과 크게 차별화되지 못하고, 어중간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중간자 포지셔닝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총수들이 제시한 대안은 ‘과감한 투자와 실패를 수반한 다양한 시도로 미래 성장 기반을 발굴하자’는 것이다. 허창수 회장은 지속적인 혁신과 적극적인 투자를 당부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의 혁신 기술이 어떻게 시장과 사업모델을 바꿔갈지 눈과 귀를 열고 그 변화의 맥락을 짚어내 미래의 사업기회를 발굴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기남 부회장은 “차세대 제품과 혁신 기술로 신성장 사업을 적극 육성하고, 건설적인 실패를 격려하는 기업문화와 신기술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투자로 미래 지속성장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기남 부회장처럼 실패를 용인하는 기업·조직문화 정착과 사업방식 변화를 언급한 총수가 많았던 것도 올해 신년사의 특징이다. 허창수 회장은 “남이 모방할 수 없는 우리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속적이고 성장 가능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는 조직문화와 조직구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빈 회장 역시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실패하더라도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먼저 직접 경험해보는 것 자체가 큰 경쟁력이 된다”며 “성공보다 빠른 실패(fast failure)를 독려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구체적인 경영전략을 신년사에 담기도 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사업경쟁력 고도화’ ‘미래 대응력 강화’ ‘경영·조직 시스템 혁신’ 등으로 항목을 나누고 2025년 전기로 구동하는 차량을 167만대 팔겠다거나 지난해 무산된 사업구조 개편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히는 등 상세한 경영 계획을 내놨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철강사업은 수요 정체와 가격 하락 기조에 대응하기 위해 프리미엄 제품판매 확대와 끊임 없는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성 강화에 매진하고 비철강사업은 그룹사별 사업모델 개혁과 특화사업을 집중 육성해 그룹의 수익성 제고에 기여한다고 밝혔다.
SK는 ‘행복’, LG는 ‘고객’한화그룹의 방점은 ‘글로벌’에 찍혀 있다. 김승연 회장은 사업 부문별 경쟁력 있는 글로벌 사업 확대, 신성장동력의 엔진이 될 특급 인재 확보,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그룹 준법경영 강화 등을 새해 과제로 제시했다. 현대중공업 한영석·가삼현 사장은 흑자전환을 목표로 혁신적인 원가 절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방안으로 구조 최적화 설계, 공법 및 공정 개선, 전략적 기자재 구매 등을 적극 추진해 생산성을 높이고 공기 단축, 자재비를 절감 등을 제시했다. 또 국제 규제 시행을 기회로 삼아 LNG선 등 친화경 선박에서의 주도권을 잡는다는 계획을 세웠다.SK와 LG는 구체적 전략 대신 각각 ‘사회적 가치’와 ‘고객’이라는 포괄적인 화두를 던졌다. 최태원 SK 회장은 “SK가 건강한 공동체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행복을 더 키워나갈 수 있는 방법은 사회적 가치”라며 “회사의 제도 기준을 관리에서 행복으로 바꾸고 핵심 성과지표에서 사회적 가치 비중을 50%까지 늘리는 한편, 구성원의 개념을 고객·주주·사회 등으로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6월 그룹 총수가 된 이후 첫 번째로 주재한 시무식에서 “시장의 주도권이 완전히 고객으로 이동했다. 남보다 앞서, 지속적으로 고객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구 회장은 ‘고객’이라는 단어를 10분 간 30차례나 언급했다.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10대 그룹의 신년사에 언급된 단어 빈도를 분석한 결과 ‘고객’이 모두 58회로 가장 많았다. 성장과 글로벌이 각각 41회와 35회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 가치(30회)·시장(29회)·경쟁(28회)·새로움(27회)·혁신(25회)·변화(24회)·미래(24회) 등이 톱10 키워드에 포함됐다. 지난해에는 대내외적인 불확실성 확대로 생존·경쟁·변화 등이 주로 강조됐으나 올해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통한 장기적 성장과 지속가능 경영에 대한 고민에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