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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경계 허물어져
52년 간 숱한 히트작 쏟아내1967년 처음 시작된 CES는 52년 간 숱한 ‘히트작’을 쏟아내며 수많은 기업과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그야말로 혁신의 산실(産室)이다. 첫 CES를 수놓은 히트작은 휴대용 라디오였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영상을 무리 없이 보는 시대이지만 당시만 해도 신기술로 주목을 받았다. 3년 후인 1970년 필립스가 CES에서 선보인 비디오카세트녹화기(VCR) ‘N1500’은 가정용으로 크기를 줄이고 가격을 대당 2000달러(기존 VCR은 7만 달러)로 낮춘 획기적인 VCR로 세계적인 비디오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1982년 CES에 모습을 보인 ‘코모도어64’ 컴퓨터는 1994년까지 세계에서 약 1700만대가 팔리면서 PC 시대가 왔음을 선언했다.종전의 아날로그 전송 방식에서 벗어난 고화질(HD) TV도 1998년 CES에 등장해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위성 디지털 방송 시대가 열렸다. 이는 세계 TV 시장을 장악한 한국과 일본의 TV 대전(大戰), 즉 치열한 기술 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2008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2009년 3차원(3D) TV, 2011년 스마트TV가 모두 CES에서 선을 보였다. 오늘날 산업계 다방면에서 활용도가 높아진 무인항공기 드론도 CES 출품을 계기로 발전했다. 2010년 패럿이라는 프랑스 업체가 CES에서 처음 공개한 드론이 지금처럼 4개의 프로펠러를 장착한 형태였다. 당시만 해도 ‘값비싼 장난감’처럼 여겨졌지만 이젠 세계 각지에서 활용도가 높아진 중요한 제품이 됐다.이 밖에 세계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테트리스’ 게임(1988년), 생전의 스티브 잡스가 극찬했던 태블릿(2010년)과 스마트워치(2012년)도 CES 무대를 빛냈다. 그런가 하면 CES는 ‘당분간 대체할 만한 기술이 없을 것으로 보였던’ 신기술이 예상보다 빨리 쇠락할 수 있음을 보이는 무대로도 기능했다. 1981년 CES에 등장했던 CD플레이어가 15년 후인 1996년 CES에선 다른 신기술인 DVD플레이어로 대체돼 영원한 승자는 없음을 보여줬다.
OLED TV도 드론도 CES 통해 세계인과 만나최근 수년 간은 AI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 신기술이 CES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4차 산업혁명’ 흐름을 반영했다. 올해 역시 ▶5세대(5G)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헬스케어 ▶스마트홈 ▶3차원(3D) 프린팅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등의 분야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만난 신기술이 선을 보였다. CES 현장을 다녀온 ICT 업계 관계자는 “예년 CES 때보다 신기술 적용의 ‘실현 가능성’ 측면에 중점을 둔 신제품이 많이 모습을 보인 것이 이번 CES의 특징이었다”며 “글로벌 기업들 간 상용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CES는 이제 산업계는 물론 금융권까지 관심을 가지는 행사로 지위가 격상된 모습이다. 국내 일부 시중은행은 디지털 관련 부서 직원을 CES에 파견, 현장에서 주요 부스를 둘러보고 최신 ICT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 힘썼다. 디지털 금융 환경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어서다. CES, 그 혁신의 역사는 다양한 갈래로 이어지고 있다.
[박스기사] CES 2019에서 한풀 꺾인 중국굴기 - 미·중 무역전쟁 탓? 참가 기업 줄어최근 수년 간 CES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중국굴기’다. 중국은 2000년대 이후 경제에서의 고성장을 발판 삼아 제조업 육성에 힘썼고, 그 결과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기업들이 다수 나왔다. 알리바바나 화웨이 같은 ICT 기업이 대표적이었다. 이번 CES에선 의외로 중국굴기가 한풀 꺾인 모습이었다. CES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CES에 참가한 중국 기업은 모두 1211곳으로, 지난해(1551곳)보다 22%가량 감소했다. 최근 4년 사이 CES에 참가한 중국 기업 숫자가 줄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전체적인 행사 규모는 오히려 커졌으며, 해마다 중국 기업의 힘도 강해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한국만 해도 CES 참가 기업이 지난해 217곳에서 올해 338곳으로 크게 증가했다(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 집계). CES 현장을 짚어본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번 CES에선 ‘중국은 없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약해진 모습이었다”며 “참가 기업 숫자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전시에서도 혁신적인 모습이 부족했고 관람객들의 관심도도 크게 떨어져 보였다”고 했다.예컨대 중국의 전기자동차 업체 바이톤은 지난해 CES 미디어데이 때 입장하는 줄이 길게 늘어설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올해는 간신히 객석을 채웠다. 그나마 세계 최초 ‘폴더블폰’ 타이틀을 가져간 로욜이 취재진의 관심을 받았지만 로욜조차도 좁은 발표장 객석을 다 채우지 못했다. 그해 CES의 키워드를 제시하고 업계 트렌드 선도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 CES 개막 기조연설자 명단에도 중국 기업과 기업인의 이름은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미국과의 무역 분쟁 여파로 전반적인 참가가 저조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CES가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행사여서다. 일부 외신은 “미국 행사에 중국 기업이 들러리 형태로 참가하는 걸 우려해 많이 불참한 것”으로 해석했다. 한편 일각에선 적잖은 중국 기업들이 실제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단순히 국가 자존심이 걸렸다고 해서 불참할 만큼 CES가 작은 행사가 아니며, 오히려 매우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이다.익명을 원한 ICT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의 제품을 베껴 만들어 추격해온 중국의 ‘카피캣’ 전략이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CES가 미래형 신기술을 공유하는 자리인 만큼 카피캣 제품만으로는 참가해도 호응을 얻는 데 분명히 한계가 있으며, 이번 CES에서 중국 기업들의 참가 규모 감소로 그 한계가 입증된 게 아니냐는 시선이다. 반면 쫓기는 처지가 됐던 한국 기업들은 이번 CES에서 혁신적인 신기술들을 잇따라 선보이며 참가 규모도 늘어 업계에 기대감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