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중국이 두려운 미국 ... 한국은 지금…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전 공정자금관리위원장)
최근 ‘중국 제조 2025’ 계획이 미·중 갈등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를 둘러싼 협상도 양국 사이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위협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된 이 계획은 2015년 중국이 발표한 야심작이다. 이 플랜은 5대 프로젝트와 10대 전략사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업 기초 강화, 친환경 제조, 고도 기술장비 혁신, 스마트 제조업 육성, 국가 제조업 혁신센터 구축이 5대 프로젝트다. 핵심은 10대 전략사업이다. ①신에너지자동차 ②첨단선박장비 ③신재생에너지장비 ④산업용로봇 ⑤첨단의료기기 ⑥농업기계장비 ⑦반도체칩 차세대정보기술 ⑧항공우주장비 ⑨선진궤도교통설비 ⑩신소재 등이다.

거의 모든 첨단 분야를 포괄하는 이들 분야에서 중국은 2049년까지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중국이 밝힌 3단계 계획도 흥미롭다. 우선 중국은 세계 주요 제조국을 등급화했다. 미국은 1등급, 독일과 일본은 2등급, 그리고 영국·프랑스·한국은 중국과 함께 3등급이다. 우리 수준이 중국과 비슷한 3등급으로 분류가 된 것이다. 중국이 세계 최고가 되는 과정은 3단계로 나누어진다. 1단계는 2025년까지이고 목표는 강국 대열에 들어서기, 즉 3등급을 탈피해 2.5등급 정도로 가겠다는 것이다. 2단계는 2035년까지다. 2등급 국가인 독일과 일본을 넘어 강국 중간 수준, 말하자면 1.5등급 정도까지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3단계가 종료되는 2049년까지는 강국 선두, 즉 미국을 제치고 1등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2025년은 우리나라에서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는 해이다. 노령인구 비율이 사실상 20% 근처가 되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해이다. 중국의 계획대로라면 노령화와 저성장으로 자꾸만 힘이 빠져가는 대한민국 경제는 2025년에 중국에 추월당하기 시작하는 셈이다.

지난해 여름 대만을 방문했을 때 국립대만대학의 한 경제학 교수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자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자기들도 비슷하다고 언급했다. 대만의 젊은이들이 자기 나라를 ‘귀도(鬼島)’ 곧 ‘귀신의 섬’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강소기업 수준의 중소기업이 많아 나름 견실한 경제구조를 지켜온 대만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중국의 경제권으로 편입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대만은 중소기업 중심으로 가다 보니 국가를 대표하는 브랜드를 가진 대기업이 별로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글로벌 공급사슬에서 중소기업은 하청 내지 납품 업체로 전락하면서 영업이익율은 떨어지고 경제는 힘들어진다. 자기 브랜드가 없는 기업은 납품과 하청구조에 시달리면서 충분한 이익을 내기 힘들다는 것은 상식이다. 중소기업 중심의 평등한 경제구조를 구축했다고 우리의 롤모델처럼 여겨졌던 대만 경제가 이제는 그로 인해 힘들어지고 있다. 자기 브랜드를 가진 대기업이 별로 없다 보니 대만의 폭스콘 같은 기업은 중국에 생산공장을 짓고 글로벌 기업인 애플의 하청기업 역할을 하고 있다. 자기 브랜드가 없는 폭스콘은 조금 과장된 표현을 빌리자면 ‘죽지 못해 사는’ 수준의 박한 마진에 시달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 무대에서 애플의 갑질은 악명이 높다. 오죽하면 “애플과 거래하는 것은 ‘러시안 룰렛’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자조섞인 지적까지 나오겠는가. 폭스콘은 글로벌 하청기업의 비애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다 보니 대만의 능력있는 젊은 인력들은 희망이 없는 대만을 떠나 중국에 취직하고 있고 대만에 남은 젊은 인력들은 박봉에 시달리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자기 브랜드가 없이 글로벌 하청구조에 시달리면서 상당 부분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된 대만 경제가 중국으로의 인력 유출 등 어려움에 시달리는 모습은 보기 안타깝다.

그런데 이제 우리의 모습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독일의 싱크탱크인 메릭스는 중국 제조 2025의 가장 큰 피해자로 대한민국을 지목했다. 우리나라가 독일·아일랜드 등과 더불어 제조 2025의 최대 피해자, 즉 고위험국으로 지목된 것이다. 중위험 국가로는 미국·일본·프랑스·오스트리아·덴마크 등이 거론됐다. 저위험 국가는 포르투갈·그리스 등이다.

그러고 보면 제조 2025의 피해자 중 중위험국에 속하는 미국이 더 호들갑을 떨고 있는 셈이다. 이와 달리 고위험국인 우리나라는 태평세월이다. 예를 들어보자. 위에서 언급한 중국 10대 전략 사업의 ⑥번에 해당하는 차세대정보기술 분야는 반도체를 포함하고 있다. 반도체 핵심칩 국산화, 첨단 메모리 개발, 5G 기술 개발,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처리 앱 개발 등이 이 분야의 세부 내용이다. 우리가 먼저 뛰어 가야 할 분야들이다. 위에서 ①번으로 거론된 신에너지자동차 분야에는 전기자동차·연료전기차 등의 세부 내역이 포함돼 있다. 중국이 내연기관 자동차에서는 다른 나라에 밀렸지만 전기자동차는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되겠다는 각오가 확고한 셈이다. 반도체와 전기자동차에 대한 중국의 결기를 보며 당장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떠오른다. 중국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경우 우리가 자랑하는 세계적 브랜드의 앞날이 어두워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대기업의 갑질이야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이제 우리 기업이 글로벌 하청구조 속에서 동반성장이라는 단어를 아예 들어본 일조차 없는 잔인한 글로벌 대기업의 하청기업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딴 곳에 정신이 팔려있다.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제 등이 주요 어젠다이다. 글로벌에 대한 의식과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 중국이 달의 뒷면에 착륙한 날은 중국에 의해 따라잡히고 있는 모습에 대한 성찰을 해야했을 것 아닌가. 최근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신산업정책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레토릭에 그친 느낌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2019년 우리 경제가 다시 희망을 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해답이 나온다. 예를 들어 우리도 대한민국 제조 2025 플랜을 만들어내고 이를 국가적 어젠다로 삼고 국가 에너지 결집에 나서야 한다. 나아가 노동시장 개혁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노조의 ‘촛불청구서’에 목매지 말고 저성장 시대에 맞는 노동관행과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이를 설득하면서 새로운 산업과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에너지를 총동원해야 한다.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어젠다를 다시 테이블 위에 올리고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다시 저비용·고효율 구조로 바꾸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동안 이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으로 너무 많은 자원과 시간을 낭비했다. 이제 이 정책의 우선순위를 뒤로 보내고 혁신성장을 중심으로 한 미래 먹거리에 올인해야 한다.

게임 업체 넥슨이 중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진다. 넥슨의 인수 후보로 중국의 텐센트가 거론되고 있다. 이 소식을 들으면서 대만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도 이제 중국 경제권으로의 편입이 본격화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도 엄습한다. 과거 진념 전 부총리는 의미있는 지적을 했다. “지금은 우리가 중국인들로부터 발마사지를 받지만 머지않아 우리가 중국 사람들에게 발마사지를 해주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의 언급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진다.

1469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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