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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들, 소액주주 찾아 삼만리] 올 주총도 감사 선임 때 ‘3%룰 대란(지배주주 의결권 3%로 제한)’ 불가피 

 

황정일 기자
섀도보팅 폐지로 지난해 상장사 66곳 어려움 겪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 위해 상법 개정해야

▎현대자동차·삼성전자 등 국내 대표 기업의 주주총회가 3월 18일부터 본격적으로 열린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전경.
숨은 주주를 찾아라! 소액주주가 많은 한 중소기업 임직원이 지난해 이맘 때 본업을 뒤로하고 한 일이다.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한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해서가 아니다. 주주를 찾아 정기주주총회(이하 주총) 참석을 독려하거나 의결권을 위임받지 못하면 주총 때 임기가 끝난 감사나 감사위원을 새로 뽑을 수 없어서다. 감사·감사위원을 뽑으려면 의결권이 있는 전체 주식의 25%가 주총에 참석해야 한다. 그런데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율은 매우 낮다. 더구나 지배주주(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높더라도 22%를 더 확보하지 못하면 감사를 새로 선임할 수 없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정부가 2017년 주주의 의결권 행사 보장 등을 이유로 섀도보팅(Shadow Voting·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를 폐지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그나마 섀도보팅 제도가 있을 때는 주총 참석자가 적어도 한국예탁결제원이 의결정족수를 채워줘 감사·감사위원 선임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섀도보팅이 폐지되면서 일부 상장사는 소액주주를 찾아 정족수를 채우느라 애를 먹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지난해 주총에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곤란을 겪은 상장사는 66곳이었다. 이들 기업이 처리하지 못한 주총 안건은 96건에 이른다. 2017년(9건)에 비해 10배가량으로 급증했다.

올해 154곳 감사·감사위원 선임 못할 수도


그런데 올해도 다르지 않다. 이른바 ‘주총 시즌’이 시작되면서 상장사마다 소액주주를 찾느라 분주하다. 특히 소액주주가 많은 중견·중소기업에서 이런 문제가 심각하다. 소액주주는 대개 시세 차익에 관심이 있을 뿐 주총에는 관심이 없다. 소액주주의 주식 보유 기간은 평균 3.1개월에 불과하고, 주총 참여율은 1.88% 수준이다. 대기업이라고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SK텔레콤·기아자동차·아모레퍼시픽 등이 최근 주총 의결권을 위임받기 위한 대리인을 공시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원활한 주총 진행을 위해 의결정족수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상장사의 사업보고서 등을 전수조사한 결과 임기 만료로 올해 주총에서 감사·감사위원을 새로 뽑아야 하는 상장사는 737곳이다. 이 중 지분 5% 이상을 갖고 있는 주요 주주나 기관투자가가 없어 감사·감사위원 선출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는 상장사는 20.9%인 154곳에 이른다. 감사·감사위원을 새로 선임해야 하는 상장사 5곳 중 1곳은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상장사는 임직원이 직접 주주 집을 방문해 가며 주총 참석이나 의결권 위임을 요청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중견·중소기업이 많은 코스닥 상장사의 소액주주는 기업당 평균 1만1379명에 이른다. 한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소액주주 집을 찾아가면 대부분 ‘이미 주식을 팔아서 관심이 없다’며 문전박대를 한다”고 토로했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대안으로 전자투표제를 제시한다. 주주가 주총장에 가지 않아도 PC나 스마트폰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기업들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주주 수가 적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전자투표를 이용한 주주는 전체 대상자의 0.5%에 그쳤다. 주식 수 기준 전자투표 의결권 행사율은 3.76%(기관투자가 포함)였다. 2017년(2.2%)보다는 약간 높아졌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상장사가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것과 주주들이 실제로 참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란 얘기다.

전자투표제도 현실적 대안 아냐


이 때문에 기업들은 ‘3% 룰’ 폐지를 비롯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3% 룰은 1962년 상법 제정 때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겠다며 도입했다. 도입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식 거래가 많지 않았고, 창업주 등 지배주주가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한 기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9년 코스피 지수가 1000을 돌파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총에는 관심이 없는 소액주주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정족 수 미달로 감사 등을 새로 선출하지 못하는 기업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게 1991년 섀도보팅인데, 전체 주주의 의사를 왜곡할 수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2017년 폐지됐다. 정유용 한국상장사협의회 전무는 “3% 룰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라며 “현실에 맞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주총 때마다 겪는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의결정족수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주문한다. 현재 주총에서 감사 선임 등 ‘보통 결의’ 가결 요건은 ‘의결권 있는 주식의 4분의 1이 출석하고, 출석 정원의 과반수 찬성’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미국 일본은 의사정족수 요건이 있긴 하지만 회사가 정관을 통해 이 요건을 완화하거나 없앨 수 있다”며 “의결정족수를 주총에 출석한 주주 수 대비 찬성 비율로 결정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주요국은 의결정족수 조항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기업이 자율로 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1인 회사를 제외한 모든 회사가 주주 2인의 출석으로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독일 역시 보통결의는 출석한 주주의 단순 다수결로 안건이 성립된다. 미국은 펜실베니아주 등 33개 주가 의결정족수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코스닥협회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은 주총 결의에 과도한 비용을 노력을 쏟고 있다”며 “소액주주가 많은 점 등을 고려해 가령 ‘출석한 주식수의 과반수 찬성’ 정도로 결의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의결정족수를 바꾸려면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치권도 3% 룰을 폐지하기 위해 진작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 중인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과 관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의 논의는 2017년 11월 20일이 마지막이다. 정부와 여당은 더 나아가 지난해 초 전자투표·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번에는 야당과 재계가 반대하고 나섰다. 국내 기업이 해외 악성 투기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야 간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이 개정안도 사실상 방치돼 있다. 여당은 3월 정기국회에서 선거제 개혁법안과 함께 상법 개정안 등 경제민주화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지정)에 함께 태우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정부의 상법 개정안 중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건 집중투표제다. 집중투표제는 주총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기존에는 이사 후보에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행사했지만, 집중투표제에서는 1주당 뽑을 이사 수만큼 투표권을 줘서 선호하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다. 예컨대 A, B, C 3명의 이사를 뽑는다고 가정하고, 100주를 갖고 있는 한 주주는 기존에는 3명에게 각각 100주의 찬반권만 행사할 수 있었지만,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면 A에게 찬성 또는 반대 300표를 모두 던지고 B, C에게는 의결권을 포기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최다수를 얻는 사람부터 순차적으로 이사에 선임되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이 자신들을 대표하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하거나, 대주주가 내세운 후보 중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된다.

개정안은 또 기업의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일반 이사와 분리해 뽑도록 했는데,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대주주는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분리 선출하는 단계부터 3%로 의결권을 제한받는다. 지분 쪼개기(3% 이하)를 통해 의결권 제한 규정을 피할 수 있는 해외 투기자본이 감사위원을 뽑아 기업 경영권을 간섭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재계는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 이사회에 진출하는 통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사회가 7명으로 구성된 회사라고 가정하면 최소 4명(감사위원 분리선출 3명+집중 투표제 1명)을 해외 투기자본이 원하는 인물로 선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면 국내 10대 기업 중 4곳은 외국계 주주가 요구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최대주주가 투표 전략을 잘못 짜면 지분이 더 많은 데도 경영권을 빼앗기는 상황도 얼마든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권 “경영권 방어 수단 충분”


이 때문에 재계와 한나라당은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인 차등 의결권과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과 같은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도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는) 지나친 기우로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의 적대적인 인수·합병(M&A)이 발생한 사례가 거의 없고, 이사한 두 명이 이사회에 진출해도 이사회 장악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경영권 방어수단에 대해서는 “2011년 상법 개정으로 의결권 제한 주식 발행 허용과 제3자 신주배정으로 경영권 방어수단이 마련돼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3% 룰 등 주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법 개정을 서두를 필요가 있지만,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 강경하다 보니 이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1476호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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