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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CT 공룡도 ‘혁신의 외주화’] 사내벤처 육성, 스타트업 쇼핑 

 

김유경 기자
구글·MS·아마존 투자회사로 변신... 인공지능·바이오·자율주행차 투자로 플랫폼·기술 확장

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는 일본 닌텐도가 아닌, 미국의 증강현실(AR) 게임제작사 나이언틱랩스가 개발했다. 나이언틱랩스는 인그레스(Ingress) 등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은 증강현실(AR) 콘텐트의 강자다. 지난해 말에는 삼성전자가 4000만 달러(약 454억원)를 투자하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포켓몬고의 성공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나이언틱랩스는 사실 구글의 사내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회사다. 구글 맵·스트리트 뷰 개발진이 대거 참여해 2010년 시작해 2015년 구글에서 분사했다. 구글이 자사 인재들을 활용해 벤처기업을 키워 플랫폼을 강화하는 한편, 시장에 새로운 혁신의 길을 제시한 사례다.

나이언틱랩스도 구글의 사내벤처 출신


이렇듯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사내벤처 육성과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세계적으로 사내벤처·스타트업 육성에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기업은 구글이다. 구글은 현재 사내벤처 지원 프로그램인 ‘에어리어120(AREA 120)’을 운영 중이다. 자사 임직원들의 벤처 창업을 독려하기 위한 제도다. 사업계획 심사를 통과하면 해당 팀원은 기존 업무에서 완전히 빠지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다. 구글은 이 팀에 샌프란시스코 구글 오피스 사무실을 제공하며, 회사 설립도 지원한다. 구글은 초기 투자자로, 서비스 출시와 홍보도 돕는다. 구글뉴스·지메일·애드센스 등 구글 핵심 서비스가 이런 사내벤처 프로그램에서 탄생했다.

구글은 경쟁사·스타트업으로의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사내벤처를 육성한 측면도 있다. 구글은 또 2009년 독립투자회사인 구글 벤처스를 설립하고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300개가 넘는 기업에 투자를 집행했다. 그간 모바일·인터넷 서비스 회사에 집중 투자해왔는데, 최근 들어 생명공학·의료·인공지능(AI)·운송 등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구글은 우버·블루보틀·파머스 등 이미 대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유튜브와 네스트·어반엔진스·마카니파워 등은 아예 인수했다. 대기업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플랫폼이, 스타트업은 자금력이 필요한데 구글벤처스가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구글은 세계에서 3번째로 서울에 캠퍼스를 세워 국내 스타트업의 세계 진출, 네트워킹 강화, 업무 공간 제공, 전문 인력 멘토링 등을 제공하고 있다”며 “정책 제안 보고서 등 한국의 스타트업 육성에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개러지(Garage)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처음에는 직원용 애플리케이션 제작 목적으로 시작했으나, 임직원들의 아이디어 은행으로 역할이 커지고, 이를 공유하는 일이 많아지자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으로 재탄생 했다. 아이폰용 키보드 앱인 ‘워드플로우’와 업무용 메신저 ‘카이자라’, 모임 장소 앱 ‘토스업’ 등이 이 프로그램에서 시작됐다. MS가 사내벤처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30년 가까이 안정된 경영상황이 이어지면서 회사 성장이 정체돼서다. PC용 소프트웨어에 매달렸기 때문에 모바일로의 환경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미국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 창업자 폴 그레이엄은 2007년 “MS는 죽었다. 아무도 MS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딕 브래스 전 MS 부사장도 “제너럴모터스(GM)가 트럭만 팔 수는 없듯, MS도 윈도와 MS오피스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MS는 사내벤처 육성과 스타트업 인수·합병(M&A)으로 신성장동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직장인 소셜미디어 ‘링크드인’과 개발자 커뮤니티 ‘깃허브’를 각각 262억 달러, 75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런 덕에 MS는 지난해 애플을 제치고 글로벌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현재 구글·인텔·바이두·델·퀄컴 등 글로벌 ICT 기업들이 세계 CVC 상위권을 싹쓸이 하고 있다. 아마존과 애플도 각각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에퀴글로벌을 통해 블록체인을 중심으로 한 스타트업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공유차량 업체 우버가 전기스쿠터 업체 ‘버드·라임’을 인수하는 등 최근 유니콘들도 스타트업 M&A로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등이 온디맨드 플랫폼을 중심으로 큰 규모의 벤처 투자에 나서고 있다. 특히 소프트뱅크는 올해부터는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등 신흥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술 기업에 대한 거품 우려 제기도

새로 등장한 ICT 기업들이 전방위 사업 확장에 나선 데 위기의식을 느낀 기존 대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사내벤처 육성과 스타트업 인수에 나서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이 오프라인 산업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어, 기존 대기업들은 그간 취약했던 ICT 분야와 신기술 기업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르노와 닛산, 미쓰비시는 지난해 공동 펀드 ‘얼라이언스 벤처(Alliance Ventures)’를 출범시켰다. 자동차 관련 ICT 스타트업에 2023년까지 총 10억 달러를 쏟아 붓는다. 이미 지난해 코발트가 함유되지 않은 고체 배터리를 개발한 미국 아이오닉 머티리얼스에 2억 달러를 투자했다. 포드도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아르고를 10억 달러에 인수하는 한편, 폴크스바겐과 자율주행차 합작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미국 최대 통신회사인 버라이즌도 5세대(5G) 이동통신 콘텐트 스타트업을 인수하기 위해 LG유플러스 등 해외 통신사들과 전방위 협력에 나섰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혁신은 원론적으로는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투자수익(ROI)과 효율을 지향하는 조직에서는 파괴적 혁신이 사라지고 만다”며 “이에 따라 사내의 기업가정신 연구가 기업의 혁신, 벤처 창업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다만 세계적인 증시 정체와 기술 기업에 대한 거품 우려가 제기되며 올해는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가 부진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술 투자자들은 과거 기회를 놓칠 것을 우려했지만 이제는 손실을 경계하고 있다”는 럭스캐피털의 조시 울프의 말을 전하며 “미국 스타트업들은 2018년 역대 가장 많은 1310억 달러의 기록적인 액수를 조달했다. 다만 지난해 말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의 주가 하락 이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신중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476호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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