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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의 핵심 ‘저평가 주식 사는 것'가치투자는 한마디로 100원짜리 물건을 40원에 사는 투자법이다. 이를 워런 버핏은 “1달러 지폐를 40센트에 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00원의 가치를 가진 물건이 어떻게 40원에 시장에 나와 있을 수 있을까. 시장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인간의 광기와 탐욕이 춤을 추는 공간이다. 시장에서 주가가 비이성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은 그래서다. 그러나 길게 보면 주가는 기업의 내재가치를 찾아간다. 이때 주가가 해당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낮게 거래되는 주식이 있다면 매입했다가 그 가치에 수렴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가치투자의 원리다. 가치투자를 무기로 앞세운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2009년이후 매년 20.5%의 수익률을 올렸다. 미국의 주가지수인 S&P500의 연평균 수익률(9.7%)에 비해 압도적이다. 1965년 이후 버크셔 해서웨이의 시장가치는 247만7627%나 성장했다.가치투자는 기업의 가치와 적정 주가 평가 능력을 갖추는 것을 전제로 한다. 기업의 실제 가치가 얼마인지 파악해야 주가가 싼지 비싼지 알 수 있고, 주식을 매입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버핏은 기업의 내재가치란 “해당 기업이 향후 벌어들일 수 있는 현금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값”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이 해마다 1억원씩 현금을 벌어들인다면 이 기업의 내재가치는 약 50억원이 된다. 요즘 시중 은행 이자율 2%를 할인율로 가정한 경우다. 다시 말해 서울의 어느 가게가 30억원에 매물로 나왔는데, 이 가게가 해마다 1억원의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다면 가게를 매입할 만하다고 볼 수 있다.그런데 이런 내재가치 계산방식은 매우 주관적이고 이상적인 수준에 머무른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기업의 가치는 평가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주가수익비율(PER)·주당순자산비율(PBR) 등의 척도로 기업의 가치와 적정 주가를 따지는 상대 평가법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테면 기업이 회계원칙 안에서 순이익을 조정할 때 기업 가치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달도 차면 기울고 10년 이상 가는 권력이 없듯이 영원할 것 같았던 영화에 그늘이 생기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의 회오리가 몰아치면서 성장주 쏠림 현상이 나타나자 가치투자가 뚜렷한 퇴조 조짐을 보인 것이다. 지난 2월 말 공개된 버핏의 서한은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난해 기록한 순이익은 40억 달러로, 2017년(449억 달러)에 비해 자릿수 자체가 줄었다. 2001년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투자의 귀재가 고전한 데 대해 언론들은 “가장 유명한 투자자가 가장 나쁜 한 해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시장저조한 성적의 원인으로 지목된 건 거꾸로 세워진 케첩병으로 유명한 세계 5위 식품기업 크래프트하인즈에 대한 투자 실패였다. 경영난을 겪던 크래프트하인즈는 150억 달러 규모의 상각 처리, 배당금 삭감을 발표하며 주가가 폭락했다. 이 회사의 지분 26.7%를 갖고 있던 버크셔 해서웨이도 30억 달러를 손실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버핏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하인즈가 여전히 훌륭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현되지 않은 이익이나 손실도 순익 계산에 반영하도록 바뀐 미국의 회계기준 때문에 실적이 크게 출렁거린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버핏은 스스로가 ‘콜라 충성자’라 말할 정도로 코카콜라의 팬이다. 실제로도 코카콜라 지분 9.4%를 보유할 정도로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탄산음료가 건강에 해롭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코카콜라는 최근 10년 새 최고 낙폭을 기록할 정도로 변동성이 컸다. 그동안 가치투자의 핵심이었던 소비재 투자 전략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치투자가 이대로 물러날지 아니면 다시 반격의 날을 세울지 알 수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정보 접근의 균등화 등 시장 여건은 가치투자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곳이 시장이다. 투자의 천재가 언제 다시 웃을 날이 올지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