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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어제는 신데렐라, 오늘은 천덕꾸러기 

 

가치투자와 ‘손안의 새’... 성장주 쏠림 속 가치주 퇴조 조짐

몸이 아주 작은 나이팅게일 한 마리가 참나무 가지에 앉아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나운 매가 나이팅게일을 발견했다. 매는 먹이를 찾아다니던 중이었다. 매는 번개처럼 날아와 나이팅게일을 잡았다. 매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노래만 부르고 있던 나이팅게일은 달아날 수가 없었다. 당장 목숨이 끊어지게 생긴 나이팅게일은 간절한 목소리로 매에게 애원했다. “매님 저는 아주 작은 새입니다. 저를 잡아먹는다 해도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잡아먹더라도 매님의 배를 채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발 저를 놓아주십시오. 정말로 배가 고프시다면 저보다 더 큰 비둘기나 토끼를 잡아먹는 것이 훨씬 나을 겁니다.” 하지만 매는 나이팅게일의 애원을 뿌리치면서 이렇게 말했다.“미안하다 작은새야. 하지만 내가 아직 구경도 하지 못한 먹이를 쫓기 위해 이미 내 발톱 안에 들어온 먹이를 놓아준다면 그보다 더 멍청한 짓이 어디 있겠니. 그러니까 너라도 우선 확실하게 먹어두는 것이 좋겠다.” 불쌍한 나이팅게일은 매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해 크래프트하인즈의 손실 탓에 2001년 이후 최저 수준의 이익을 기록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2000년대 초반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우화를 소개하며 가치투자에 대해 역설한 적이 있다. “이득을 얻으려고 구매한 모든 자산을 평가하는 공식은 기원전 600년 경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 처음 제시한 이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이솝입니다. 다소 불완전하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투자 통찰은 ‘손안의 새 한 마리가 숲 속의 새 두 마리보다 낫다’입니다. 이 원칙을 지키려면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숲 속에 실제로 새가 있는지 어떻게 확신하는가. 새가 언제 몇 마리 나타날 것인가. 무위험 이자율(미국 재무부 장기채권 수익률)은 얼마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면 숲의 최대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중략)…‘성장투자’와 ‘가치투자’가 대조적인 투자 스타일이라고 입심 좋게 말하는 시장 논평자와 펀드매니저들은 모두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장은 가치 방정식을 구성하는 한 요소에 불과합니다…(중략)…나는 입증되지 않은 수많은 기업 중에서 몇몇 승자를 골라내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대신 2600년 전 이솝이 제시한 낡은 방정식을 우리가 어느 정도 확신하는 기회에 적용해 숲 속에 새가 몇 마리가 있으며 언제 나타날 것인지를 가늠해 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기업의 현금 유출입 시점이나 그 규모를 절대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보수적으로 추정하며, 뜻밖의 실적으로 주주들이 피해보는 일이 없을 만한 산업에 집중합니다. 투자와 투기는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승리를 만끽하는 시절에는 구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아마추어 투자자는 물론 전문가들은 일부 업종 주식의 가치가 기업의 가치와 분리됐다는 망상에 빠진 듯했습니다. 이런 초현실적 상황에는 ‘가치 창출’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따라다닙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증권 업계는 새도 없는 숲을 파렴치하게 팔아넘기면서, 대중의 주머니에서 수십억 달러를 자신의 주머니로 이전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거품은 터지게 돼 있습니다.”

가치투자의 핵심 ‘저평가 주식 사는 것'

가치투자는 한마디로 100원짜리 물건을 40원에 사는 투자법이다. 이를 워런 버핏은 “1달러 지폐를 40센트에 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00원의 가치를 가진 물건이 어떻게 40원에 시장에 나와 있을 수 있을까. 시장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인간의 광기와 탐욕이 춤을 추는 공간이다. 시장에서 주가가 비이성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은 그래서다. 그러나 길게 보면 주가는 기업의 내재가치를 찾아간다. 이때 주가가 해당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낮게 거래되는 주식이 있다면 매입했다가 그 가치에 수렴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가치투자의 원리다. 가치투자를 무기로 앞세운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2009년이후 매년 20.5%의 수익률을 올렸다. 미국의 주가지수인 S&P500의 연평균 수익률(9.7%)에 비해 압도적이다. 1965년 이후 버크셔 해서웨이의 시장가치는 247만7627%나 성장했다.

가치투자는 기업의 가치와 적정 주가 평가 능력을 갖추는 것을 전제로 한다. 기업의 실제 가치가 얼마인지 파악해야 주가가 싼지 비싼지 알 수 있고, 주식을 매입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버핏은 기업의 내재가치란 “해당 기업이 향후 벌어들일 수 있는 현금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값”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이 해마다 1억원씩 현금을 벌어들인다면 이 기업의 내재가치는 약 50억원이 된다. 요즘 시중 은행 이자율 2%를 할인율로 가정한 경우다. 다시 말해 서울의 어느 가게가 30억원에 매물로 나왔는데, 이 가게가 해마다 1억원의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다면 가게를 매입할 만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내재가치 계산방식은 매우 주관적이고 이상적인 수준에 머무른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기업의 가치는 평가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주가수익비율(PER)·주당순자산비율(PBR) 등의 척도로 기업의 가치와 적정 주가를 따지는 상대 평가법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테면 기업이 회계원칙 안에서 순이익을 조정할 때 기업 가치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울고 10년 이상 가는 권력이 없듯이 영원할 것 같았던 영화에 그늘이 생기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의 회오리가 몰아치면서 성장주 쏠림 현상이 나타나자 가치투자가 뚜렷한 퇴조 조짐을 보인 것이다. 지난 2월 말 공개된 버핏의 서한은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난해 기록한 순이익은 40억 달러로, 2017년(449억 달러)에 비해 자릿수 자체가 줄었다. 2001년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투자의 귀재가 고전한 데 대해 언론들은 “가장 유명한 투자자가 가장 나쁜 한 해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시장

저조한 성적의 원인으로 지목된 건 거꾸로 세워진 케첩병으로 유명한 세계 5위 식품기업 크래프트하인즈에 대한 투자 실패였다. 경영난을 겪던 크래프트하인즈는 150억 달러 규모의 상각 처리, 배당금 삭감을 발표하며 주가가 폭락했다. 이 회사의 지분 26.7%를 갖고 있던 버크셔 해서웨이도 30억 달러를 손실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버핏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하인즈가 여전히 훌륭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현되지 않은 이익이나 손실도 순익 계산에 반영하도록 바뀐 미국의 회계기준 때문에 실적이 크게 출렁거린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버핏은 스스로가 ‘콜라 충성자’라 말할 정도로 코카콜라의 팬이다. 실제로도 코카콜라 지분 9.4%를 보유할 정도로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탄산음료가 건강에 해롭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코카콜라는 최근 10년 새 최고 낙폭을 기록할 정도로 변동성이 컸다. 그동안 가치투자의 핵심이었던 소비재 투자 전략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치투자가 이대로 물러날지 아니면 다시 반격의 날을 세울지 알 수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정보 접근의 균등화 등 시장 여건은 가치투자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곳이 시장이다. 투자의 천재가 언제 다시 웃을 날이 올지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76호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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