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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14) 신은경 차의과학대 의료홍보미디어학과 교수] 노년은 행복할 일만 남은 인생의 황금기 

 

‘나는 누구인가, 후반전 어떻게 살 것인가’부터 고민... “후반전 휘슬은 스스로 부는 것”

▎사진:전민규 기자
“인생에도 축구 경기처럼 하프타임이 있습니다. 이때 후반전인 인생 2막을 위한 작전을 잘 짜야 합니다. 두 가지 자문이 필요하죠. 나는 누구인가? 후반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 전반전을 전 국민이 알아보는 대표 여성 앵커로 산 신은경 차의과학대 의료홍보미디어학과 교수는 자신도 이때 ‘인생사명 선언문’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지혜롭고 올바른 말하기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강연, 집필 및 방송을 통해 전파해 청소년·청년·여성·직장인들의 삶을 변화시키겠다.”

계기가 있었다. 2008년 나이 오십에 그는, 음해를 받아 공천을 못 받은 남편 대신 18대 총선에 출마했다. 남편인 박성범 의원을 내조해 지역구를 관리해 지역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낙선했다. 그후 2년여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광야 같은 시절을 보내야 했다. ‘세상이 나를 거부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딱히 할 일도, 찾는 사람도, 수입도 없이 고립돼 지냈다. 그러다 극동방송이 주최한 하프타임 세미나에 참여해 후반기 인생사명을 깨닫게 됐다. 그 후로 방송·책·강연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후반기 인생 설계와 동기 부여를 돕고 있다. “막상 선언문을 작성하기는 했지만 아무도 찾지 않던 때라 방송 등을 할 기회도, 가능성도 없었죠. 그런데 간증 프로그램에 나와 달라는 극동방송의 요청을 시작으로 다시 방송을 하게 됐고 책을 낸 후엔 강의 요청이 이어졌어요.” 그는 “저는 50세가 하프타임이었지만 나이 서른이나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하프타임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후반전 휘슬은 스스로 부는 겁니다. 후반전을 멋지게 살고 싶다면 바로 지금이 하프타임에요. 인생 후반전은 속도보다 방향과 의미가 더 중요하죠. 저는 인생사명 프레임에 맞으면 돈 한 푼 안 생기는 강연도 하고, 설사 억만금을 준다 해도 이 프레임과 무관하면 거절합니다.”

신 교수는 1981년 KBS에 아나운서로 입사해 3개월 연수 후 간판 뉴스인 9시 뉴스의 앵커로 발탁됐다. 그 후 12년 간 이 프라임 타임 뉴스를 진행했다. 그 무렵 첫 여성 앵커로 [9시 뉴스를 기다리며]란 책도 냈다. 왕년의 그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선정된 KBS 특집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진행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88 서울올림픽 메인 앵커로 활약했다. 앵커를 마친 후엔 유학길에 올라 영국 웨일즈대 대학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앵커 시절 스포트라이트 깨나 받았지만 왕년의 나를 버렸어요. 하프타임 세미나에 참가한 지 3년 만에 다시 작은 대학에 몸담았습니다. 1000명이 듣는 강연장은 아니지만, 내가 가르치는 한 학생이 내 이야기에서 삶의 지혜를 얻어 인생이 달라진다면 보람을 느낄 거 같아요. 할리우드 스타 그레타 가르보는 얼굴을 가린 채 85세까지 숨어 살았지만 오드리 헵번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대중 속에서 의미를 좇는 후반부 삶을 살았죠. 어떻게 살 건지는 결국 자기 선택이에요.”

인생 하프타임은 어느 나이에도 맞을 수 있어


▎사진:전민규 기자
그는 성공보다 행복을 좇는 인생 후반전은 재미와 성장, 의미가 잣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제보다 생각이 깊어지고 어제 못 느낀 보람을 오늘 느낀다면 성장한 거라고 말했다. “이 세 요소의 구성 비율은 저마다 다르겠죠. 의미를 추구하려다 자칫 자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건강 및 재정 상태, 형편과 취향, 무엇보다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잘 맞아야죠. 좋다는 운동도 과하면 부작용이 있고 많은 사람이 권하는 여행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돼요. 저는 에너지가 많지 않아 충분히 쉬어야 하는 타입이죠. 저마다 나답게,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는 흙 묻은 금수저를 자처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진명여고에 진학한 후 대학입시 1차에 실패해 후기였던 성신여대에 진학했다. 열등감에 빠져 지내느라 공부도 소홀히 했다.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그러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방송이었다. 고교 시절 은사였던 이정숙 선생님의 권유도 떠올랐다. 국어를 담당했던 선생님은 그가 책 읽는 것을 들어보고 강당에서 열린 교내 행사 때 무대 사회를 맡겼다. 장내 아나운서도 시켰다. “아나운서 하면 정말 잘 하겠다”는 격려도 했다. 성적은 중간 수준이었지만 선생님 덕에 앞으로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나운서에 대한 도전은 재수를 해야 했다. 두 번째 방송사 시험은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80년 언론 통폐합으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듬해 4월 KBS에 입사했다. “이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자식으로 태어난 우리는 모두 금수저입니다. 어려운 시절은 막다른 땅굴이 아니라 긴 터널입니다. 터널은 언젠가 끝나게 마련이고 반드시 밝은 빛이 기다리죠. 인생을 길게 내다보고 살지는 못했어요. 그냥 그때그때 열심히 살았고, 그런 대로 나쁘지 않았어요. 그랬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나름대로 계획을 해도 그대로 안 되더라고요.”

대표적으로 정치가 그랬다. 정치 하는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갖은 시련을 겪었고, 19대 총선 예비후보 시절엔 여론조사에서 경쟁자보다 훨씬 앞섰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 대신 공천을 받은 후보는 낙선했다. 그는 자신을 크지도, 작지도 않은 꽃병에 비유했다. 스포트라이트 받던 앵커를 거쳐 유학하던 시절, 국회의원 남편을 내조해 봉사하던 날들이, 그가 믿는 신이 이 꽃병에 화려하게 채색한 때라면 시련과 좌절의 시간은 조각칼로 홈을 파 무늬를 음각한 시절이었다고 믿는다. “젊어서 돈 많은 건 부럽지 않았지만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30대 후반 남의 나라에서 공부에 몰입했죠. 그랬기에 40대에 대학 강단에 섰고, 50대 후반 지금 있는 대학에 몸담았어요. 저는 제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앞으로 30년을 내다볼 때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후회와 미련, 남에 대한 원망 때문이든, 아니면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 때문이든 오늘의 가치를 훼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환갑을 맞은 지난해 말 그는 [내 나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란 책을 냈다. 신은경의 골든 라이프 강의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 책에서 그는 60세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올해 백수인 김형석 교수가 앞서 선창을 했고, 미국 여배우 제인 폰다는 60~90세를 인생 3막 ‘프라임 타임’이라고 일컬었다. 말하자면 황금기인 셈이다. “30~40대가 행복지수가 가장 낮다고 합니다. 치열하게 벌어 자식들 뒷바라지할 때죠. 이제 자식 일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뿐더러 자식들이 장성해 매달리려야 매달릴 수도 없는 나이죠. 성공에 대한 부담은 사라졌고 소소한 행복을 맛볼 때입니다. 행복을 주는 나이랄까, 어떻게 보면 행복할 일만 남은 시절이죠.”

그는 힘들 땐 리셋을 해 보라고 권했다. 인생의 하프타임이 아니라도 리셋은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전이 힘들었다면 오후에 새 날로 리셋할 수도 있다. 말하기 전문가인 그는 “말은 우리의 정신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는 버튼”이라고 주장한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바로 나다. 삶이 꼬이고 관계가 틀어질 때 먼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점검해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 노년엔 나쁜 말은 하지 말고 좋은 말만 하라고 권했다. 불평·불만, 비난·비판 등의 부정적인 말, 자기 비하의 말 말고 감사, 칭찬, 배려하는 좋은 말, 남에게 도움 되는 말, 하다 못해 듣기 좋은 말이라도 하라고 말했다. 나이가 드니 감사할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존재 자체만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되더라고 귀띔했다. “때로는 ‘하얀 거짓말’도 하세요. ‘어쩌면 그렇게 얼굴에서 빛이 나느냐’고 하면 그 말은 듣는 사람에게 좋은 하루를 선물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배우자와의 스몰 토크도 눈을 바라보며 해 보세요. 지적질과 나쁜 말을 하는 것이야말로 꼰대가 되는 지름길이죠. 극단적인 말도 피해야 합니다.”

그는 나이 들어 잘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건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쁜 것 안 봐도 되고 듣기 싫은 말을 덜 듣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셀프 토킹도 해 보라고 부추겼다. “아침에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한마디 건네는 겁니다. ‘뭐 이 나이에 이만하면 괜찮은데!’ 그럼 정말 괜찮은 거 같아요. 사실 그렇게 괜찮지는 않죠. 눈가의 주름과 쳐진 볼살 때문에 서글플 때도 있어요. 그래도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 출연한 김혜자씨가 웃을 때 생긴 얼굴 주름이 표정을 풍부하게 만들었듯이 표정은 자기 표현입니다. 그 주름 만드느라 무려 60년 걸렸는데요.”

그는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할 때 한 신문에서 ‘20대 젊은 여성이 민족의 아픔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쓴 기사를 읽고 빨리 나이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경청은 마음으로 듣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야 공감과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덧붙였다. “‘오늘 야근이야’ 했을 때 아내가 ‘당신은 왜 날이면 날마다 늦어’ 하면 ‘그저께는 일찍 들어오지 않았느냐’고 항변하지 말고 눈을 맞춘 채 ‘여보 요새 힘들지? 이번 주말에 어디 놀러가자’ 해 보세요.”

그는 은퇴한 부부는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월수금은 부인이 동창회 등에 간다든지 남편과 떨어져 따로 지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영화 [라스트 미션]에서 87세 마약 운반책을 연기한 90세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일보단 가족이 우선이야, 가족들을 챙겨’라고 말합니다. 은퇴한 남자들이 흔히 평생 가족을 소홀히 했다고 생각해 인생 후반전에 가족에게 잘하려다 되레 가족 관계를 해치기도 해요. 아내를 돕겠다고 주방에 들어가 참견하다 ‘그냥 나가 놀면 안 돼’ 소리를 듣고 자녀들에게 잔소리꾼으로 되기 십상이에요.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 바로 좋은 은퇴자가 되는 길이죠.”

은퇴한 부부는 ‘따로 또 같이’ 시간 보내라

그는 노년에 피할 일로 돈에 연연하는 것을 꼽았다. “꼭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면 논외지만, 서민적으로 살면 됩니다. 외식을 해도 좋은 식당에서 푸짐하게 먹지 않고 일품 음식 먹으면 돼요. 자식한테 손 벌릴 것도 없어요. 재산 다 물려줬다가 병들어 큰 돈 들어가면 자식들로서는 생돈 들어가는 거 같을 거예요.”

신 교수는 [내 나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 서문을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면 좋겠다”고 맺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잔잔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저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날이 오겠죠? 시니어들이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인력의 순환을 제도화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과학·예술·언론계 등에서 은퇴한 신중년들이 초중고에서 재능기부를 하게 하는 겁니다. 봉사이기는 하지만 차비는 좀 드렸으면 좋겠어요.”

1478호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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