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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리는 해운업 재건 시즌2] 대형 선사 몸집 불리기, 중소 선사 구조조정 필요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정치인에서 해운 전문가 출신으로 해수부 장관 교체… 여전한 공급 과잉, 강화되는 환경 규제 암초

▎1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선주협회에서 열린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이 컨테이너사업 통합 기본합의를 체결했다. (왼쪽부터) 황호선 해양진흥공사 사장,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 이윤재 흥아해운 회장. / 사진:연합뉴스
최근 해양수산자원부 장관이 교체되고 최대 국적선사에 새로운 ‘선장’이 부임하는 등 한국 해운 업계가 변환점을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해운 재건’이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는 한진해운의 몰락과 함께 사상 최악의 어려움에 빠진 국내 해운업을 재건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고 지원에 나섰다. 사정은 녹록하지 않지만 신임 해수부 장관 임명을 계기로 해운업 재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해운 전문가 장관, 화주 출신 선사 대표

문 대통령은 문성혁 신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우리 주력 업체가 무너지며 해운 강국으로서의 위상, 경쟁력이 아주 많이 무너져 있는 상태”라며 “위상이나 경쟁력을 되살리는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해운 업계에선 해운 전문가로 통하는 문 장관의 취임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문 장관은 현대상선 일등 항해사 출신으로 한국인 최초로 스웨덴 세계해사대학 교수에 임용된 항만·해사·물류 분야 전문가다. 해양산업과 수산 분야에서 해수부가 당면한 과제가 많은 데도 ‘해운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만큼 해운 재건에 속도를 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는 방증이다. 정치인 출신인 김영춘 전 해수부 장관이 해운 재건의 공감대를 모으고 기틀을 닦는 데 주력했다면, 문 장관 체제에서는 선사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문 장관은 취임식에서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해운산업을 개편하고,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확충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우리 해운과 항만 분야의 스마트화에 박차를 가하자”고 말했다.

민간 부문에서도 굵직한 인사가 단행됐다. 국적 최대 선사인 현대상선에 배재훈 전 범한판토스 사장이 새로 부임한 것. 현대상선은 그간 유창근 대표이사가 키를 잡고 선대 확대 등을 주도했지만, 글로벌 해운사 대비 실적 회복이 더뎠다. 해운업 전 분야에 대한 이해가 높고 글로벌 네트워크도 탄탄한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영업 측면에서 특별한 성과를 보이진 못했기 때문이다.

새 사장에 배 대표가 선임된 것은 유 사장과 다른 측면에서 능력을 발휘할 인물이 필요해서다. LG상사 출신으로 LG반도체 미주지역 법인장 등을 지낸 그는 2010~2015년 범한판토스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물류 분야 전문성을 갖췄으면서 화주의 시각으로 시장을 읽어 현대상선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LG전자 모바일 부문에서 근무하고 비즈니스솔루션 마케팅 담당 부사장을 역임하는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어 최근 해운사들이 주목하는 IT분야 혁신을 주도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해운 업계 관계자는 “배 대표가 회사의 체질 개선을 주도하고 컨테이너선 영업 분야는 한진해운 출신인 박진기 부사장이 주도하는 구도”라고 설명했다.

실제 배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현대상선의 체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적자 노선 구조조정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현대상선이 운영 중인 47개 노선 중 16개 노선이 적자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선 효율화 방안을 추진 중이며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해운 재건 정책은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먼저 해운 재건의 주축인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초기 유동성 확보에 성공했다. 해양진흥공사는 3월 28일 5000억원 규모의 공모채권을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출범 이전부터 해운 업계의 기대가 컸지만, 활용 가능한 현금이 부족해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펼치지 못했던 해양진흥공사가 현금 확보를 계기로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해양진흥공사는 납입자본금 3조1000억원으로 설립됐으나 이 중 2조9000억원이 현물성 자산이었다.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통합 작업 주목


▎현대상선 현대드림호. / 사진:현대상선
이와 함께 오랫동안 논의됐던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컨테이너사업 통합도 본격 추진된다. 두 회사의 컨테이너선 부문 통합은 지난해 4월 해운 재건 계획의 일환으로 근해 컨테이너 선사 과잉 문제에 대응해 선사들이 자발적으로 통합에 나서는 것이다.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은 4월 15일부터 사전 운영 협력체계를 가동 중이다. 사무실을 전면 통합하고 항로 공동 운영, 전산시스템 통합 등 실질적인 통합법인 운영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어 오는 10월 통합법인 설립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통합법인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 흥아해운의 컨테이너사업 부문과 장금상선의 동남아 컨테이너사업 부문을 통합해 운영하기로 했다. 이후 2020년 12월까지 한-중, 한-일 등 장금상선에 남은 컨테이너사업 부문을 모두 이관할 예정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 관계자는 “우리나라 근해 컨테이너시장 2위, 3위 선사 간의 자율적인 통합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는 등 한국 해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해운 재건의 파고는 여전히 높다. 이제 시작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우선 업황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빅데이터연구센터에 따르면 올해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폭은 4.2%로 예상돼 지난해(약 5%) 대비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공급 과잉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운임 상승도 제한적이다. 컨테이너 선사들의 경우 영업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규제도 부담이다. 해운사는 내년 9월 이후부터 의무적으로 선박평형수처리장치(BWTS)를 장착해야 한다. 황산화물(SOx) 규제 강화도 내년부터 실시돼 선박 개조 비용 발생이 불가피하다.

특히 원양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41만TEU로, 글로벌 선사 중 9위 규모다. 이는 1위 머스크의 10분의 1, 7위 에버그린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발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포함하더라도 규모의 경제로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불가능하다. 현대상선과 2M(머스크·MSC)의 전략적 협력관계는 내년 3월 끝나는데, 새로운 얼라이언스에 가입하거나 적어도 계약연장을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결국 글로벌 대형 선사는 몸집을 키우고 중견 선사는 과도한 경쟁을 피해 구조조정에 성공해야 해운 재건이 성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컨테이너선 합병과 같은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KMI 관계자는 “초대형 선박 발주 외에도 대선 기관을 활용하고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 혹은 통합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국적선의 적취율을 제고하기 위한 전략도 적극적으로 시행해 안정적 수요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483호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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