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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벤처붐 최전방에 선 김광현 창업진흥원 원장] “불합리한 규제로 골든타임 놓칠까 걱정”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혁신 주저하면 산업경쟁력 잃을 수 있어... 원활한 투자회수 환경 조성해야

▎김광현 창업진흥원장은 창업자들에게 창업을 통한 사회 혁신에 도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 사진:김경빈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올 들어 제2의 벤처붐 조성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 디캠프(D.CAMP)를 방문해 스타트업 대표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한편, 4월 29일에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창업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벤처에 사람과 돈이 몰리는 혁신 생태계를 만들자는 취지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과 플랫폼 비즈니스의 대두로 기존 제조·서비스업의 밸류체인이 근본부터 뒤바뀌고 있고, 일자리 역시 수요에 따라 단기 근로자를 채용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정부는 스타트업 스케일업에만 앞으로 4년간 12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콘텐트·수출·사물인터넷(IoT)·반도체 등 분야별로도 다각적인 지원에 나선다. 정책 집행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창업진흥원이 도맡고 있다. 창업진흥원은 창업 현장의 최전선에 선 정부 유관기관이다. 정부 시책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창업자들에게 맞춤 지원을 펼치고 있다.

기존 제조·서비스업 밸류체인 지각변동

4월 26일 서울창업허브에서 김광현 창업진흥원장을 만나 한국 창업 생태계의 현주소와 과제 등을 물었다. 기자 출신인 김 원장은 2015~18년 디캠프 센터장을 지낸 후 지난해 창업진흥원장에 취임했다. IT 칼럼리스트 ‘광파리’로도 잘 알려졌다. 김 원장은 “한국 창업생태계는 황무지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울창한 숲은 아니며, 엑시트(투자회수)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업진흥원장으로서 1년간 소회와 느낀 점은.

“임직원들과 소통 채널을 열고 직접 혁신 아이디어를 내도록 유도했다. 자발적으로 창업지원 방식을 혁신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신문사에서 사내벤처를 이끈 경험이 창업자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정부가 제2의 벤처 붐을 일으키겠다고 한 배경은.

“저성장·자동화에 따른 세계적 추세다.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활발하며, 미국·중국 등 주요국 간에 창업 경쟁이 치열하다. 대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한계에 다달았다. 신기술을 통한 기회형 창업을 통해 산업을 혁신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시대적 과제다.”

창업 전선 최전방에서 느끼는 어려운 점은.

“역경을 딛고 창업에 성공한 기업인들을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또 과거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만든 규제가 현재 창업과 혁신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 불합리한 규제를 혁파할 수도, 내버려둘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자칫 골든타임을 놓칠까 우려된다. 규제 개선은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지난 10여 년 전과 비교해 창업 트렌드가 달라졌나.

“2000년 전후에는 인터넷포털·온라인 게임 등 새 기술과 서비스를 막는 불합리한 규제가 많지 않았다.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지금은 최초로 개발한 기술·서비스도 규제에 막혀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이에 비해 창업 지원은 많이 개선됐다. 창업공간 등 여러 형태의 지원 프로그램이 생겼다. 아이디어와 의지만 있다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엔젤·액셀러레이터·벤처캐피털 등 투자생태계도 좋아졌다.”

창업·투자·스케일업·엑시트·창업의 선순환 구조가 갖춰졌나.

“엑스트가 여의치 않은 게 문제다. 입구는 넓어졌는데 출구가 여전히 좁다.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사례도 많지 않다. 엑시트가 잘 돼야 재창업, 투자 등 선순환이 가능하다. 선순환 구조는 아니지만 최근 수년 새 많이 개선됐다.”

기술보다 O2O 등 플랫폼 창업이 많은 이유는.

“아이디어와 약간의 기술로 기존 서비스를 개선하는 O2O 창업이 유행했다. 소비자 편익을 늘리는 측면에서 좋게 보고 있지만 O2O 비즈니스의 성공이 쉽지는 않다. 판을 바꿀 만한 기술 창업은 여전히 미흡하다. 다만 숨은 고수들이 의외로 많아, 점차 나아지리라고 본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해외 시장 공략을 정부가 돕고 있다. 2000년 전후에는 해외에 창업공간을 마련해 국내 스타트업의 현지 정착, 투자 유치를 지원했는데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재는 해외 진출을 원하는 창업자를 선발해 해외 액셀러레이터의 창업공간으로 보내, 현지 창업자·투자자들과의 협업을 끌어내고 있다. 앞으로는 국내 스타트업·액셀러레이터가 현지에서 후배 창업자들을 돕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국내 스타트업의 기술력·아이디어 수준은.

“낮지 않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영국 테크스타·미국 플러그앤플레이 간부들이 좋은 팀이 많으며, 더 많은 팀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서울이 아시아 창업 허브가 될 잠재력이 있으며, 한국 진출 뜻을 밝혔다.우수한 인재들이 창업계로 더 들어오면 2000년대 초 벤처 붐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모빌리티처럼 근본적 생태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산업군은.

“일자리 변화가 가장 클 것이다. 자동화가 급속히 진행되면 일자리는 줄어든다. 은행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대신 아마존과 넷플릭스·우버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지기도, 생기기도 하는 복잡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고 혁신을 피하면 산업경쟁력을 통째로 잃어버릴 수 있다.”

정부의 과도한 지원책으로 수준 낮은 창업이 난립하는 것 아닌가.

“생계형 창업은 과잉이지만, 기회형 창업은 과열이 아니다. 2000년대 초 벤처 붐이 꺼지고 10년 남짓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최근 몇년 새 창업환경이 좋아졌다지만 아직 나무를 듬성듬성 심은 수준이다. 숲을 무성하게 가꾸려면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지원 효과 극대화 방안을 고민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씨를 뿌려야 한다. 창업 문턱을 낮추고, 리스크도 줄여야 한다.”

해외에서 제기되고 있는 스타트업 거품 논란은 어떻게 생각하나.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경우 스타트업의 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문을 닫는 유니콘이 생기는 등 거품 붕괴 논란이 나오고 있다. 과열 국면으로 치달았다. 다만 세계적으로는 거품 붕괴를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투자자들이 잠시 숨을 고를 가능성은 있다. 한국의 경우 스타트업 가치가 미국·중국에 비해 현저히 낮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중국 스타트업 거품 붕괴 논란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분야나 목표가 있나.

“첫 민간 출신 창업진흥원장으로서 지원 프로그램과 절차를 혁신하는 게 임무다. 올해 멘토링 시스템, 온라인 창업교육 시스템, 이상거래탐지 시스템 등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온라인을 통해 지역과 무관하게 멘토링·창업교육을 실시한다. 올해는 육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할 계획이다.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은 정부지원금의 부정집행을 사전에 방지하고 투명화하는 예방 시스템이다.”

스타트업 및 예비창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창업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욕과 실력이 있다면 과감히 도전하길 바란다. 사업자 등록 전, 창업 후 3년 이내, 창업 후 3~7년 등 기간별로 정부 지원책이 마련돼 있다. 시스템 개선을 통해 지원 절차를 획기적으로 간소화했다. 안전한 직장만이 갈 길은 아니며, 100세 시대에는 언젠가 창업을 해야 한다. 도전적으로 살고 창업을 통해 사회를 혁신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1484호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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