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소득주도성장과 기득권의 위험성 

 

황인학 한양대 특임교수(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경제학계에서 호불호(好不好)가 갈리는 저명한 경제학자 한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케인스(John Keynes, 1883~1946)일 것이다. 케인즈는 그의 대표 저서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완전고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자유에 맡기는 것보다는 정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서 소비와 투자의 유효수요를 끌어올리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케인즈의 이 이론을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를 모순의 위기에서 구한 ‘수정 자본주의 혁명’이라고 과찬한다. 그러나 1974년 노벨 경제학자, 하이에크(Friedrich Hayek, 1899~1992)를 비롯한 자유주의 학파에서는 케인스 이론이 진통제처럼 통증을 줄여주는 단기 효과는 있어도 근본적 치유책은 아니며, 결국에는 병을 더 악화시키는 부작용이 크다고 비판한다.

호황과 불황의 경기 변동은 어찌 생각하면 경제 주체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바로 잡기 위한 시장의 자연스런 과정이다. 여기에 정부가 재정 또는 규제를 늘려 개입하는 것은 시장의 조정·치유 기능을 위축시키고 경기 변동의 진폭을 키우며 경제를 정부 통제에 예속시키는 문제를 낳는다. 따라서 자유주의 학파에서 케인스 이론을 케인스 스스로가 그의 저서 말미에서 언급했던 ‘경제학자의 위험한 아이디어’로 평하는 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수정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케인스 진영과 경제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하이에크 진영의 논쟁은 이론과 정책 실무의 현장에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래전부터 유튜브 동영상으로 떠도는 ‘세기의 결투: 케인스즈와 하이에크의 랩 배틀(Fight of the Century: Keynes vs. Hayek Rap Battle)’이다. 이 동영상에서 두 명의 경제학자가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역할을 맡아 정부 지출 확대의 효과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말씨름 노래 형식으로 다툰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또는 문재인 정부의 과감한 재정팽창의 결과가 혹시라도 궁금하면 위의 랩 배틀 동영상을 참고해 봄직하다. 그리고 나서 본인이 케인스에 가까운지 아니면 하이에크에 가까운지 자가진단 해보면 어떨까.

케인스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의 이론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최근의 경제정책과 한국 경제의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서 좋든 싫든 케인스를 떠올리는 일이 부쩍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중의 하나가 현 정부에서 급격히 팽창하는 정부 재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개인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국정목표 아래 2019년도 정부 예산을 사상 최대인 약 470조원으로 편성했다. 2018년 경제성장률은 2.7%인데, 정부 예산은 전년 대비 9.5%나 증가했다. 그리고 문 정부는 이도 모자라 6조7000억원의 추경예산이 필요하다며 국회의 승인을 압박하고 있다. 그중의 절반가량은 세금이 아니라 국채 발행의 빚을 내서 돈을 쓰겠다고 한다.

야당이 반대하자, 정부와 여당은 마치 이 때문에 경제 회생의 기회를 놓치기라도 하는 양 책임 전가와 비판의 날을 세운다. 언제부턴지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은 모두 케인스 이론의 신봉자라도 된 듯하다. 그 안에는 케인스식 재정확대의 한계와 부작용을 걱정하는 하이에키안(Hayekian)이 한 사람도 없는 듯하다. 정부가 한껏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고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이 만약에 옳다면 1990년대 이후 재정정책을 끝없이 펼쳤음에도 20년 넘도록 성장 정체의 잃어버린 세월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일본의 사례는 무엇인가?

최근에 케인스를 화두로 삼은 진짜 이유는 그의 재정지출 이론 때문이 아니다. 그의 이론이 아니라 그가 남긴 다른 말 때문이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케인스는 선의든 악의든 세상에 위험한 것은 경제학자와 정치사상가의 아이디어라고 단언한다. 기득권 또한 세상에 위험하지만 이들의 아이디어에 비하면 위험성이 과장됐다는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케인스 이론에 동의하든 또는 동의하지 않든지 케인스의 이 말은 지금의 우리 상황을 돌아볼 때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위험하게 하는 첫 번째는 경제학자의 설익은 아이디어가 정치 이념과 결합한 소득주도성장론(소주성)이고, 두 번째는 시장을 정치화하며 변화와 혁신에 강하게 반대하는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 ‘소주성’은 문 정부의 처음부터 일관된 국정철학이기에 문 정부 3년차인 지금에 와서 그 내용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한 줄로 요약하면 소주성은 임금을 올리고 공공 일자리를 늘려서 가계소득을 높이면 유효수요가 늘어나 경제성장의 선순환으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희망적 가설이다. 임금과 소득은 생산적 경제활동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보는 것이 정상적이다. 성장의 결과를 성장의 원인으로 뒤바꾼 소주성은 일종의 주객전도 가설이다.

소주성은 굳이 연원을 따지면 노동경제학에서 간간이 언급되는 효율성임금이론(efficiency wage theory), 그리고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effective demand theory)을 거칠게 섞은 원시 가설이다. 검증된 이론이 아니다. 이런 실험가설을 국토는 비좁아도 인구가 5000만 명에,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이르는 클 대(大)자의 대한민국에 적용하는 현 정부의 대담한 시도를 목도하면서 경제학자 아이디어만큼 세상에 위험한 것은 없다고 한 케인스의 말을 새삼 떠올리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소주성 정책은 경제 현장 곳곳에서 심대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중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2년 동안 최저임금을 30%나 가파르게 인상한 소주성 정책이 기업의 재산권과 경영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기득권은 경제학자 아이디어보다 덜 위험하다고 케인스는 말했지만 우리나라 상황은 꼭 그렇지만 않다. 에어비앤비·우버 같은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시장에 진입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인위적 장벽이 낮고, 개인의 직업 선택과 기업 경영의 자유가 허용되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보장되는 미국같이 포용적 제도를 확립한 나라에서는 기득권이 기술 진보와 경제 성장의 위험한 장애물이 아닐 것이다. 한국은 다르다. 스마트폰 앱 기반의 건강관리 사업은 의사들이, 공유차량 비즈니스는 택시 업계가, 생산라인의 변경조차 노동자들이 거칠게 반대하는 등 크고 적은 기득권층이 도처에서 변화와 혁신에 저항하는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은 기득권의 반대에 탐정 직업(민간조사제도) 조차 허용되지 않는 나라이다.

경제 성장은 창조적 파괴가 연속되는 과정이다. 창조적 파괴는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창조적 파괴가 진행되면 현재의 기득권층이 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기득권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변화와 혁신에 항상 반대하는 유인이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집단·폭력시위로 시장의 문제를 정치화하는 등 유별나다. 이 기득권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흔히들 예상하는 것보다 더 암담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 경제에서는 케인스가 언급한 순서와 달리 경제학자의 아이디어보다 기득권이 더 위험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1489호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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