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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보다 잘나가는 코스닥] 창업·중소기업 밀어주는 정부 덕에 미소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코스닥 상승률 13.27%… 코스피는 7.89% 하락해 대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6일 디캠프 ‘제2벤처붐 확산 전략보고회’에 참석해 벤처·창업인들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주식시장은 흔히 ‘천수답’ 증시라고 불린다. 빗물에만 의존해 농사를 짓듯, 외국인 투자자의 움직임에 따라 주가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외국인 주도의 장세에 ‘논두렁(개인·기관 투자자)’이 늘 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코스닥시장만큼은 다르다. 코스닥은 문 대통령 취임 이튿날인 2017년 5월 10일 643.39로 장을 시작해 현재(6월 11일 종가) 728.79로 25개월여 동안 13.27%(85.4포인트) 상승했다. 한창 뜨거웠던 지난해 1월에는 역대 최고인 927포인트까지 치솟기도 했다. 지난해 1월 12일에는 지수가 가파르게 올라 2009년 5월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사이드카를 발동하기도 했다.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이 7.89%(180.95포인트)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코스닥도 지난해 말부터 미국·중국의 무역분쟁과 내수경기 침체, 바이오·헬스케어 등 논란이 일며 올해 들어 주춤하긴 하다. 그러나 지난 10년 가까이 400~600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지난해 1월 코스닥지수 900 넘기도


코스닥 상승을 주도하는 세력은 개인이다. 개인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5조7634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의 코스닥 순매수 규모 2조2024억원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에 비해 개인은 코스피에서 1조1690억원을 순매도하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이 이처럼 코스닥에 ‘올인’하는 이유는 정부의 중소·중견기업 육성 정책 때문이다.

정부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정책에 한계가 왔다고 판단하고, 경제의 허리를 튼튼하게 하자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여러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현재 국내 중소기업 생태계는 장기 투자의 부재와 협소한 시장, 출구시장의 부재 등이 대표적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에 정부는 중소기업에 정책자금을 쏟아 자금을 선순환시키고, 상장을 용이하게 하는 한편, 투자자들의 거래를 편리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월 11일 3000억원 규모의 ‘코스닥 스케일 업(scale-up)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 이후 투자자들의 반발이 폭발했는데, 이 투자심리를 코스닥으로 돌리는 역할을 했다.

올 3월 6일에는 문 대통령이 ‘디캠프’의 ‘제2벤처붐 확산 전략보고회’에서 직접 참석해 “(창업·벤처인이) 더욱 크게 체감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앞으로 4년간 신규 벤처투자에 17조7000억원, 벤처펀드 결성에 22조3000억원, 스케일업펀드에 12조원을 각각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을 대상으로 기술특례 제도를 활성화하는 한편, 코스피와 코스닥의 증권거래세를 0.1%, 0.25%로 각각 조정해 종전 대비 0.05%포인트 인하했다.

증시는 경기보다 빨리 움직인다. 지난 3월 국민연금이 8조원 규모의 패시브(지수 추종) 자금을 코스닥을 중심으로 증시에 투입한다는 내용의 정보지가 돌 정도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기대감이 커지자 개인투자자들이 코스닥에 몰려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저금리 장기화로 마땅한 투자처가 실종된 상황이라 위험자산 투자 심리가 커진 점도 상승 효과를 냈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시드 단계의 투자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정책 자금이 많이 풀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코스닥은 주로 정책 변수에 따라 움직였다. 2월 코스닥에서 순매도 행렬을 이어가던 개인은 문 대통령이 디캠프 행사에 참석한 6일부터 30거래일간 7645억원 순매수로 돌아섰다. 이 기간 외국인은 168억원, 기관은 1894억원 순매도 했음에도 개인의 매수세에 코스닥은 17.07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개인은 의료정보 제공 등 규제가 완화될 경우 수혜를 볼 수 있는 조기진단·바이오시밀러 등 업종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금융위원회는 바이오기업을 평가할 때 당장의 제품 경쟁력보다는 신약 개발 시 실현 가능 수익 등을 고려하고, 기술력 평가도 지식재산권보다는 원천 기술 보유 등으로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정부 부양책으로 2018년 초에는 코스닥 기업에 대한 실적 중심의 선별 투자가 이뤄진 데 비해, 지난해 중반부터는 적자 기업이어도 기술력 있는 바이오 기업 등 특정 업종으로 투자가 퍼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개인이 코스닥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기관은 시큰둥하다. 정부가 여러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문 대통령 취임 후 3조765억원 순매도했다. 사모펀드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3조1649억원, 올해 들어 1조2066억원 순매도했다. 사모펀드는 운용 보수가 높기 때문에 주로 프로젝트 성격으로 움직이며,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신탁회사도 3428억원 순매도했다. 이에 비해 연기금은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듯 1조1563억원 순매수했다. 올해 순매수 규모만 7194억원에 달한다. 금융투자회사도 2017년 5월 10일부터 1조8841억원 순매수했다. 정부의 중소·중견기업 지원 정책 소식에 개인인 매수를, 기관은 매도를 선택한 모양새다.

바이오·IT 기업 수익성 검증 되지 않아


개인을 중심으로 코스닥 투자가 활발해진 점을 이용해 ‘스캘핑(초단타매매)’으로 수익을 올린 헤지펀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헤지펀드 시타델의 계열사인 시타델증권이 주인공이다. 메릴린치 창구를 통해 알고리즘 매매 방식으로 초단타 매매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시타델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알고리즘 매매로 유명한 세계적인 퀀트(계량분석) 헤지펀드다. 시타델의 한국 창구인 메릴린치의 코스닥 거래 대금 규모는 2017년 43조7800억원에서 지난해 84조18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시장감시위원회를 열고 메릴린치에 대한 제재안을 확정하는 한편, 시타델은 자본시장법 위한 혐의를 통보할 계획이다.

이런 여러 시장 교란 속에 개인이 주도하고 있는 최근의 코스닥시장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지 아직 불투명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직 바이오·정보기술(IT) 등 신기술 코스닥 기업들의 수익 창출 능력이 입증되지 않았고,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 2년간 코스닥의 상승은 근본적 가치의 변화보다는 전형적인 유동성 장이었다”며 “정부의 자금 지원 계획도 아직 계획안만 나온 상태지, 펀드레이징이 어느 시점에 어떻게 이뤄질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 들어 국내 대기업의 실적 악화로 투자심리가 코스닥 기업으로 돌아설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이경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코스피 상장사들의 이익증가율이 둔화되거나 큰 폭의 감소가 예상돼 기관투자자들이 코스닥 매수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1489호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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