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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노린 한국 제조업 아킬레스건은] 현저히 떨어지는 국산화율 문제 재조명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수출 효자’ 반도체, 국산화율은 50% 수준… 디스플레이도 핵심 소재도 해외 의존도 높아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율 제고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사진은 국내 반도체 생산장비와 이를 살피고 있는 연구진. / 사진:SK하이닉스
지난 7월 1일,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품목 3개와 함께 한국을 ‘백색 국가’ 대상국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기습 발표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 차원에서다. 일본이 내세운 수출 규제 품목 3가지는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 감광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luorine polyimide)’ ‘에칭가스(etching gas, 고순도 불화수소)’다. 모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한국 제조업의 대표적인 전략 수출 분야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다. 백색 국가란 일본 수출무역관리령에 등재된 신뢰 가능 국가를 가리킨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 한국(2004년 지정)을 포함한 27개국 포함된다. 백색 국가가 아닌 곳으로 수출하려는 현지 기업은 따로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조업은 지금껏 한국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을 주도한 선봉장이었다. 컨설팅 전문기관 맥킨지글로벌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은 1985년 세계 15위에서 1995년 9위, 2005년 8위,2015년 5위로 급성장을 거듭했다. 제조업에서 한국보다 앞선 나라는 중국과 미국, 일본과 독일 밖에 없다. 특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한국이 세계 1위’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은 두 분야다. 그런데도 일본에서 단 3개 소재의 수출 규제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심각한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명성과는 달리 주요 제조업에서 국산화율(국내 기술을 기반으로 생산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져서다. 주요 소재 등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이번에 일본이 한국 제조업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노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규제 품목 3개 지난해 4500억원어치 수입


실제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추정한 2017년 기준 한국의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은 50.3%에 불과했다. 2년간 별다른 진전이 없어 올해 현재도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2월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율을 2022년까지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5년간 약 2조원 규모의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성과는 미미했다. 일부 소재는 국산화율이 사실상 무의미한 수준이어서 지금까지도 일부 우려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번에 일본이 수출 규제를 결정한 포토레지스트와 에칭가스가 대표적이었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를 식각하는 과정에 사용되는 감광액이다. 에칭가스도 반도체 식각이나 세척에 사용된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지난해 일본에서 포토레지스터를 2억9889만 달러어치, 에칭가스를 6685만 달러어치 각각 수입해, 의존도가 그만큼 높았음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플렉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패널의 핵심 소재로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1972만 달러)까지 합하면 3개 소재에서만 총 3억8546만 달러(약 4500억원)어치가 수입된 것이다. 플루오르 폴리이미드는 일종의 플라스틱 필름이다. 디스플레이의 커버로 사용될 수 있는 폴리이미드에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불소를 첨가한 소재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단기간 급성장했던 한국 제조업은 완성품 생산에 집중, 상대적으로 부품과 소재 국산화에는 소홀한 경향이 있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국내 소재 기업에 눈을 돌릴 것”이라면서도 “이들은 후발주자라서 일본의 첨단 기술력엔 아직 미치지 못해, 당장에 의미 있는 대체재를 확보하긴 힘들 것”으로 우려했다. 문제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뿐만이 아니다. 다른 제조업 분야에서도 일본산 소재를 수입해 쓰는 경우가 많아 제조업 전반의 연쇄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추후에 자동차 부품과 합성수지 등 다방면으로 수출 규제 품목을 확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이에 반해 일본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제조 경쟁력을 소재 부문에서도 그대로 갖추고 있다. 소재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공들여 산업적으로 육성한 결과다. 일본 정부가 주요 소재를 경제 보복 전면에 망설임 없이 내세운 이유다. 예컨대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소재 시장은 519억4000만 달러(약 61조원)라는 역대 최대 규모를 달성했다. 반도체 업황 부침에도 소재만큼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첨단 기술 도입으로 공정이 미세화하면서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재료량 자체가 늘고 있다”며 “업황이 침체되더라도 (소재 시장은) 잘 버티고, 호황일 땐 수요 증가로 한층 잘 되는 이유”라고 전했다.

이처럼 부침 없는 반도체 소재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은 독과점 구조를 형성할 만큼 ‘잘나가고’ 있다. 포토레지스트의 일본 기업 세계 시장점유율은 90%대에 달하고, 에칭가스도 세계 수요의 9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이 밖에 ▶반도체용 봉지재(80% 이상) ▶반도체용 차단재(78%) ▶실리콘 웨이퍼(60%) ▶CMP(Chemical Mechanical Planarization, 화학적 기계연마기술) 공정용 슬러리(53%) 등 다른 주요 소재에서도 높은 점유율로 글로벌 반도체 소재 시장을 이끌고 있다. 디스플레이 소재 시장에서도 일본은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플루오르 폴리이미드 중에서 감광성의 폴리이미드 분야는 일본 기업들이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에도 금호석유화학과 동진쎄미켐(이상 포토레지스트),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이상 플루오르 폴리이미드) 등의 기업이 해당 소재를 일부 생산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일본 기업들의 기술력엔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화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의 경쟁력 격차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김양재 KTB증권 연구원은 “국내와 달리 일본엔 화학 전공자가 엄청난 숫자라 칭할 만큼 많다”며 “기초과학에서 격차가 벌어져 국산 소재가 일본산 소재를 대체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현재 국내 반도체 생산 공정 100개 중 한국산 소재가 사용되는 공정은 2~3개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제조업이 국산화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이번처럼 대외 리스크가 불거졌을 때 흔들리는 것은 물론 제조업의 전반적인 부가가치까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정부, 추가 제재 가능성도 염두

사정이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제조업의 자립화 지원을 통한 위기 극복을 다짐했다. 기획재정부는 7월 4일 일본 수출 규제 관련 부품·소재·장비 관계 차관회의에서 3개 품목 외에도 일본의 추가 제재가 가능한 품목을 선정, 빠른 시일 내에 이들 위주로 자립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기술이 확보된 품목은 유동성 지원을 하고, 상용화 단계까지 온 기술은 실증 테스트를 거치게 할 계획이다. 이와 달리 기술 개발이 시급한 품목에 대해서는 연구·개발(R&D) 투자를 신속히 지원하고, 연내 추진이 가능한 경우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심의에서 반영해 내년 예산안에 적극 편성하기로 했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확대가 우려스럽지만 단호히 대응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구윤철 기재부 제2차관은 “핵심 기술 R&D와 사업화, 실증을 적극 추진해 제조업의 자립도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1492호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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