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호모 여의도쿠스의 거짓말 

 

스마트폰에 푹 빠져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자 저두족(低頭族)이란 신조어가 탄생했다. 밥을 먹을 때도 얼굴도 마주 보지 않고 스마트폰을 보며 식사를 하는 중국 가정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어로는 폰(Phone)과 무관심을 뜻하는 스너빙(Snubbing)의 합성어로 ‘퍼빙(phubbing)’을 쓴다.

대만의 일간지 왕보(旺報)는 “부모가 저두족(低頭族)이면 자녀의 대인관계나 성적이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저두족이 가정까지 침투했다는 점이다. 중국이 몇 해 전 발표한 ‘국민가족관계 보고서’는 가장(家長)의 70%가 자녀와의 관계에서 ‘저두족 현상’을 보인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특히 어린 자녀가 부모와 마음을 열고 소통하지 않으면 애정 결핍에 걸리기 쉽고, 이는 자녀의 대인관계·사고력 등을 해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애정 결핍이 심하면 반(反)사회적 인격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들도 중독 수준의 저두족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한다.

‘포노 사피엔스(Phone Sapience)’라고도 한다.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할 수 있고 정보 전달이 빨라져 정보 격차가 점차 해소되는 등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고부터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 처음 쓴 용어다.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Homo)’와 지혜라고 하는 ’사피엔스(Sapience)’ 즉 지혜를 가진 인간이 출현한 것은 10만~25만년 전, 길게는 40만년 전쯤으로 보고 있다. 찰스 다윈은 “원숭이와 유사한 생물이 매우 느린 속도로 현재의 인간 모습까지 진화했다”라고 기술했다.

앞서 말한 ‘포노 사피엔스’처럼 호모나 사피엔스를 합성시킨 용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우선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는 사람과 같은 영장류 동물’을 말하는 호모 에렉투스가 있었다. 지금 우리 인간의 모습에 가까운 인류가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Homo-erectus)’라고 불린 이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Ape-men·남방의 원숭이)보다 지혜가 많았다.

이들은 하늘에서 벼락이 친 뒤 나무에 불이 붙는 것을 보거나 화산에서 튄 불똥이 숲에 불을 내는 것을 보고는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불을 피워 추위로부터 몸을 따뜻하게 보호할 뿐 아니라 짐승의 공격도 피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생활은 뇌의 발달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아침형 인간의 반대말로 ‘올빼미족’이라는 말이 있었다. 요즘 말로 ‘호모 나이트쿠스(Homo nightcus)’다. 밤을 낮처럼 살아가는 인간군상이다. 호모 나이트쿠스는 밤을 뜻하는 나이트(Night)와 인간을 의미하는 접미사 쿠스(cus)를 붙인 것으로 밤에 활동하는 사람을 말하는 신조어이다.

지난 2009년 유엔은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선포했다. 70세를 기대수명으로 정했던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생애 주기를 살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자기 나이에 0.7을 곱한 것이 실제 나이라는 말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내 나이는 몇일까. 70대이지만 아직 50대에 머물러있으니 기뻐해야 옳을까.

“호모 여의도쿠스, 넌 누구냐?” 최근 한 일간신문이 새로운 인간형 ‘호모 여의도쿠스(Homo Yeouidocus)’의 진화 과정을 소개해 시선을 끌었다.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에는 법조계 등 자신의 전공 영역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던 이들이 여의도에만 오면 왜 물불 안 가리는 ‘전사’나 거짓말쟁이로 돌변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주신(主神) 제우스가 그의 소생이자 ‘전령의 신(神)’인 헤르메스를 불렀다. “인간들이 너무 고지식하게 살아 재미가 없어 보인다”라며 거짓말하는 약을 골고루 뿌려주라고 이른다. 헤르메스는 거짓말 약을 사람들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세상이 하도 넓어 뿌려도 끝이 없고 힘이 무척 들었다. 그래서 꾀를 부린다. 제우스가 잠든 틈을 타 남은 거짓말 약을 한 곳에 모두 쏟아부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거기 살던 사람들이 모두 정치인이 됐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겠지만 그럴듯하다. 정치인이 더 많은 거짓말을 한다는 근거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10분쯤 대화를 나누면 세 번은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 장면들을 녹화해 보여주면 “내가 저런 거짓말을 했던가?”하고 놀란다. 그만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말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매일 거짓말을 하고 사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직업군이 있다. 많은 사람을 대하는 상점의 점원, 정치인, 언론인, 변호사 그리고 세일즈맨 등이다. 직업적으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가령 음식점 종업원에게 손님이 “이 집 음식 맛있지?”하고 물으면 습관적으로 “네, 맛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이 정도의 거짓말은 알면서 속아준다. 서로 맘이 편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경우도 그렇다. 정치인이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면 과연 사회 조정 기능이나 통합 기능이 제대로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때론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진실보다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안다.

2차 대전의 영웅이자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드골은 “정치인은 자기가 말하는 것을 자신도 믿지 않기 때문에 남이 자기 말을 믿으면 놀란다”라고 술회했다. 정치인에게 거짓말은 정치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불가결한 요소임을 솔직히 털어놓은 셈이다. 그러나 정치인의 경우, 사소한 거짓말도 그 영향력이나 파장은 엄청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을 즐겁게 해주고 근심 걱정을 덜어주는 착한 거짓말도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암(癌)을 숨겨 주는 거짓말, 간호사가 주사를 놔주면서 아프지 않다고 하는 거짓말이다. 국가 부도위기 때 정부가 “우리 경제는 걱정 없다”며 국민을 안심시키면 매스컴은 뻔히 알면서 그대로 보도하는 경우다.

최근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거짓말 논란이 잦다. 세치 혀로 거짓말을 하기는 누워 떡 먹기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 거짓말의 진위를 가리기란 쉽지 않다. 거짓말이 진짜 무서운 것은 허언증(虛言症)이다. 자기가 거짓말을 해놓고 그것이 진실인 것으로 착각하는 케이스로 중증(重症)이다. “가장 혐오스러운 거짓말은, 가장 진실에 가까운 허언(虛言)이다.” 앙드레 지드의 말이다.

- 정영수 칼럼리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1494호 (20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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