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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갱년기 여성의 우울증 극복]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야 

 

신체의 균형 유지가 중요… 취미·공부 등 새로운 가치도 추구할 만

▎사진:© gettyimagesbank
대학교수인 그녀는 올해 쉰이다. 그녀는 요즘 너무나 힘들다. 아침부터 의욕 저하와 무기력증으로 학교 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논문은 물론, 늘 하던 강의도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 식겁할 때가 있다. 가르치는 일에 자신이 없어지고, 젊은 교수들이 무섭다.

최근 폐경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폐경기 증상이려니 하고 약사가 권하는 천연호르몬을 먹기 시작했다. 저녁 후에는 한시간가량 산책도 꾸준히 했다. 몸이 조금 나아진 듯 했는데, 올 봄학기 시작과 함께 우울증이 겹치면서 정말 죽을 것 같다.

무기력하고 얼굴 달아오르고

우울증은 작은 딸에 이어 큰딸마저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폭발했다. 두 딸은 모두 공부를 잘했다. 첫째는 전교 1등을 놓치는 일이 없었고, 둘째도 1~3등을 오갔다. 그런데도 둘째는 언니에 대한 경쟁심, 돌봐주시던 할머니에 대한 반항 등으로 사춘기를 심하게 겪더니, 부모의 만류에도 고1을 마치면서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났다.

그나마 큰 딸을 의지하며 살았는데, 큰 딸마저 박사과정을 하겠다며 미국으로 떠난 후, 그녀는 매일 울적하다. 두 딸에게 메신저로 연락을 해도 바쁜지 금방 답장이 오지 않는다. 집에는 남편과 그녀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 바쁜 학교 일에도 최선을 다해 남편과 두 딸의 뒷바라지를 했다. 혼자 지내시는 시어머니까지 알뜰히 챙겼다. “지금까지 잘못 살았던 것이 아닐까?” 자꾸 회의감과 허탈감에 휩싸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남편을 보면 괜히 밉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우울증은 스트레스와 상처에서 온다. 스트레스를 극복되면 성취감이 생긴다. 상처가 승화되면 행복감이 생긴다. 힘든 만큼 성장하고, 아픈 만큼 성숙한다. 우울증은 에너지 소진에서 온다. 힘든 스트레스가 오래 가면, 모든 에너지가 바닥난다. 우울증은 에너지 울혈에서 온다. 아픈 상처가 오래 가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모든 외부자극을 차단한다. 우울증은 가치혼란과 의미상실에서 온다. 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의미는 불변한다. 현대인은 성공과 행복을 추구한다. 성공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고, 행복은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의미 없는 가치 추구는 공허하고, 가치 없는 의미 추구는 허망하다.”

우울증은 남성보다 여성이 취약하다. 여성은 감정적이다. 생각보다 느낌을 선호한다.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감정이입을 잘 한다. 스트레스는 상처가 되고, 과거 부정감정과 쉽게 연결한다. 상처가 치료되면 행복감이 오고, 치료가 안 되면 우울증에 빠진다. 여성은 수용적이다. 남 탓보다 내 탓을 선호한다. 스트레스를 받아들이고, 감정을 잘 다룬다. 스트레스를 상처로 바꾸어, 오랜 기간 견딘다. 상처가 계속 쌓이면 우울증에 빠진다. 여성은 의미를 추구한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의미에 집중하면 우울감에 빠진다. “우울감은 연민감과 자비심의 원천이다.”

갱년기는 격변기다. 50세 전후 나타난다. 초경으로 시작한 여성의 삶이 끝나고, 새로운 성(性)으로 인생을 출발한다. 갱년기 증상은 폐경과 함께 나타난다. 호르몬 균형이 깨지면서 신체적·정서적 증상이 온다. 안면홍조·발한·빈맥 등이 나타나고, 건망증·불면증·우울증 등이 나타난다. 중년 여성의 3분의 2는 증상이 없거나 미미하지만, 나머지는 고통을 받는다. 사회적 역할이 변하면서 상실감·무력감이 온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떠나고, 사회에서 직장을 떠난다. 의무감·책임감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백세 시대에 갱년기는 산 중턱이다. “생(生)의 중간에서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의 원숙한 삶을 꿈꾸는 시기다.”

호르몬 불균형은 난소기능 상실에서 온다. 갱년기 증상은 에스트로겐 부족 현상이다. 에스트로겐은 부신과 지방세포에서도 생산된다. 상대적으로 프로게스테론이 고갈된다. 갱년기 증상은 에스트로겐 우세 현상이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비율이 중요하다. 젊은 나이에도 비만·스트레스에서 에스트로겐 우세가 온다. 호르몬 대체요법은 신중해야 한다. 안면홍조·발한 증상에 효과적이다. 허나 에스트로겐 과다는 유방암·자궁암 위험을 높인다. 골다공증·심장질환의 예방효과는 확실치 않다. 일단 천연호르몬을 시도하는 게 좋다.

사회적 역할 변화는 정체성 혼란을 초래한다. 역할이 바뀌면 가치도 바뀐다. 그동안 추구했던 가치는 무엇인가? 앞으로 추구할 가치는 무엇인가? 원치 않는 일로 성공하는 것보다, 원하는 일로 실패하는 것이 낫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참 나(Self)를 찾는 것이다. “생로병사, 모든 게 다 공(空)이다.” 역할이 바뀌면 의미도 바뀐다.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앞으로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인생은 채우러 온 것도 아니고, 비우러 온 것도 아니고, 배우러 온 것이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희노애락, 모든 게 다 고(苦)다.”

자, 그녀에게 돌아가자. 그녀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인가? 첫째, 몸의 균형을 잡자. 균형이 깨지면 몸이 병든다. 스트레스는 호르몬 불균형을 악화시킨다. 신체증상이 심하면 대두·승마·석류 등에서 추출한 천연호르몬이 도움이 된다. 정서증상이 심하면 항우울제·안정제가 도움이 된다. 균형은 규칙성을 통해 회복된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자. 잠은 만병의 보약이다. 균형 잡힌 식단이 중요하다. 휴식은 생각 과다에서 벗어나게 한다. 걷고, 걷고, 또 걷자. “가고 가는(去)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는(行) 중에 깨닫게 된다.”

둘째, 마음의 중심을 잡자. 중심이 흔들리면 마음이 병든다. 새로운 가치를 찾자. 가슴을 펴고 태풍을 맞이하듯 뭇 경험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자. 그동안 아이 돌보느라 못했던 운동에 빠져보자. 그동안 일하느라 못 다한 공부에 빠져보자. 어릴 적 정말 하고팠던 일에 빠져보자. 새로운 의미를 찾자. 오늘 숨 쉬고 느끼며, 사랑하고 살아 있음을 경이로 받아들이자. 혼자 여행을 떠나 사색에 잠겨보자. 마음이 끌리는 친구와 사귀어보자. 스치는 생각을 무작정 글로 써보자. “오십은 하늘의 명(命)을 깨닫는 나이다.”

마음의 중심 잡아야

셋째, 혼의 방향을 잡자. 방향을 잃으면 혼이 병든다. 옛날에 한 왕이 거지 현인(賢人)을 대신으로 발탁했다. 대신은 매일 한 시간씩 구석방에서 문을 잠그고 지냈다. 수상히 여긴 신하가 그가 적과 교신한다고 모함했다. 왕은 대신을 불러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추궁했다. 대신은 슬퍼하며 왕에게 방을 보여주었다. 텅 빈 방 한 쪽에는 누더기 옷 한 벌과 지팡이 하나가 걸려 있었다. “이것은 거지 시절 지녔던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아무것도 아니던 때를 떠올리며, 매일 하루를 마감합니다.” “시원(始原)으로 돌아가라.”

※ 필자는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1495호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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