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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교두보 인도네시아 노리는 현대차] 전기차·차량공유로 틈새 파고들어 

 

지난해 115만대 팔린 동남아 최대 시장… 점유율 97%인 일본차 아성 공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왼쪽)이 7월 25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가 일본 자동차가 아성을 구축한 동남아시아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경기 둔화로 세계 시장의 수요가 감소한 가운데 특히 최대 생산·판매지였던 중국 시장에서 부진해 대체 생산·판매처를 찾아야 해서다.

다만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이 녹록하지는 않아 보인다. 동남아 시장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두 번째 내수 시장’이라고 불릴 만큼 일본 차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현지 공장 설립 11월 확정 예정


최근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루훗 빈사르 판자이탄 인도네시아 해양조정부 장관은 현대차가 인도네시아에 생산공장 2곳을 짓는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판자이탄 장관은 “현대차는 약 10억 달러(1조1885억원)를 투자하길 원하고, 카라왕의 토지를 확보했다”며 “11월에 서울에서 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25일(현지시각)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면담을 가진 후 나온 발언이라 면담에서 사실상의 합의가 진행된 것으로 여겨진다.

카라왕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인근에 위치한 군(Regency)으로 찌카랑(Cikarang) 산업단지 등이 있어 공업 도시로 통한다. 현대차가 인도네시아에 완성차 공장을 짓는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처럼 확정적인 사항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는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공장 설립을 확신하는 분위기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초부터 국내 협력사에 인도네시아 시장에 출시할 신차 개발 참여 의사를 묻는 공문을 발송하고 답변을 취합해왔다.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대차는 앞서 2017년 인도네시아의 AG그룹과 상용차 합작법인 설립을 계약하고, 지난해부터 반조립제품(CKD) 방식으로 상용차 생산을 시작했다.

현대차 입장에서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이 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중국에서 어려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중국 공장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92% 줄어든 28만8060대의 차량을 생산하는 데 그쳤다. 상반기 기준 현대차 중국 공장 생산량이 30만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9년(25만3830대) 이후 10년 만이다. 인도와 기타 신흥국 시장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중국에서의 생산 판매량 감소를 만회하기는 부족하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동남아 시장 공략에 나설 수밖에 없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최대 자동차 시장이다. 지난해 115만1284대의 차량이 팔렸다.

현대차가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설립한다면 단순히 인도네시아 시장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은 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역내 수출이 가능하다. 말레이시아 등 인근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동남아는 일본차의 텃밭이라는 점이다. 동남아에서 일본 자동차의 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 특히 동남아 공략의 교두보인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차의 점유율은 지난해 97%가 넘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유럽과 미국 자동차 브랜드가 인도네시아 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적극적인 공략에 나선 일본 업체들이 1990년대부터 시장을 완전히 석권했다. 한국무역협회 자카르타지부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는 1990년 대부터 자동차 생산 때 현지 부품을 일부 반드시 사용하도록 규제하며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키워왔다”며 “일본은 1970년 대부터 현지에 조립·생산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 사정에 적합한 고연비 소형차종을 개발해 시장을 삼켰다”고 설명했다.

일본 브랜드는 이미 인도네시아 자동차 생태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도요타(다이하쓰 포함)는 인도네시아에서 국민 기업으로 인식된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도요타는 1970년 대 현지 업체인 아스트라 인터내셔널과 합작 진출해 약 50년의 세월에 걸쳐 함께 성장해왔다”며 “아스트라가 자동차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유통망을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도네시아 시장에 안성맞춤인 차를 개발해야 하는 것도 현대차의 과제다. 인도네시아는 배기량 기준 1500cc, 2500cc에 따라 차등해 소비세를 적용한다. 차급을 1600cc, 2000cc를 기준으로 나누는 우리나라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엔진을 개발하는 것이 판매에 유리하다.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이 최근 역성장 중이라는 것도 불안요소다. 인도네시아 자동차 판매량은 올해 1~6월 48만1577대에 그쳤다. 전년 동기(55만3651대) 대비 13%나 줄어든 수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면 시장이 대폭 성장하는 시기가 유리한데, 인도네시아는 올해 들어 갑작스런 침체를 보이고 있다”라며 “수요가 공급량을 못 따라갈 경우 일본 브랜드가 덤핑 판매를 통해 현대차를 완전히 고사시키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인도네시아 시장에 연착륙하고 이를 기반으로 동남아시장 공략에 나서려면 새로운 프레임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와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기존의 내연기관 승용 시장보다 성장 잠재력이 큰 전기차 시장을 발 빠르게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말레이시아의 승차공유 플랫폼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랩’의 성장은 기회 요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그랩에 약 3000억원을 투자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도요타는 그랩에 훨씬 많은 1조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현재의 시장점유율과 전기차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따져보면 그랩에 대한 ‘플릿 판매’ 등으로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크다. 그랩은 최근 인도네시아 인근인 싱가포르에서 현대차의 코나EV를 활용한 차량호출 서비스를 동남아시아 최초로 시작했다.

중국 브랜드도 인도네시아 공략 가속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시장 경쟁상대는 일본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이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최근 중국 울링(WULING)이라는 브랜드가 주목받고 있다. 2017년에 인도네시아 시장에 처음 진출한 울링은 지난해 1만7002대를 팔며 닷썬과 닛산, 마츠다 등 일본 브랜드를 누르고 시장 9위로 올라섰다. 인도네시아의 점유율 기준 13위까지 브랜드 중 일본 브랜드가 아닌 것은 울링이 유일하다.

전기차 시장에는 중국 최대 전기차 제조사인 비야디(BYD)가 진출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진다. 인도네시아 자동차산업협회(GAIKINDO)의 요하네스 난고이 총재는 최근 현지 언론에 BYD가 인도네시아 택시회사인 블루버드와 협력해 진출한다고 밝혔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497호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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