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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을 국제무대에 각인시킨 데뷔전자, 그렇다면 제갈량은 왜 오나라로 갔을까? 당시 제갈량의 주군 유비는 곤궁한 처지였다. 몸을 의탁했던 형주의 주인 유표가 죽고 그의 아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면서 유비는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 조조의 대군이 신야성에 있는 유비를 향해 물밀 듯 쳐들어온 것이다. 얼마 전 유비 진영에 합류한 제갈량의 활약으로 조조군을 격퇴하긴 했지만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 맞상대를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에 유비는 피난길에 나섰는데 그를 따르는 백성이 10여 만에 이르렀다고 한다.그런데 도망에는 속도가 생명인 법이다. 군인도 아닌 백성들이, 그것도 10만 명이나 긴 행렬을 이루었다면 속도가 빠를 리 없다. 결국 얼마 지나지 못해 조조가 보낸 추격 부대에 붙잡힌다. 조운이 “내가 바로 상산의 조자룡이다”라고 외치며 조조군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렸고, 장비가 장판교에서 홀로 조조군을 물리치는 등 활약했지만 좁혀 오는 포위망 속에서 유비군은 전멸 직전에 놓였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구원병이 나타난다. 제갈량과 관우가 유표의 큰아들 유기로부터 군사를 빌어 당도한 것이다. 덕분에 한숨을 돌린 유비는 유기의 주둔지인 강하로 들어갔다.형주 땅의 상당수가 조조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유비마저 가까스로 살아남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오나라의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오의 책사 노숙은 손권에게 이렇게 진언한다. “형주는 우리와 인접해 있는데다 그 땅이 견고하고도 풍요롭습니다. 만약 우리가 형주를 차지할 수 있다면 대업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지금 유표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유비도 조조에게 패해 어려운 처지입니다. 저를 보내주신다면 유표의 장수들을 위로하고 유비를 설득해 힘을 합쳐 조조를 격파하도록 하겠습니다.”형주는 오나라에게 매우 중요한 땅이다. 조조가 (오의 서쪽) 형주에 거점을 확보해 기존의 북쪽과 더불어 북서 양면에서 오나라를 공격할 가능성이 커졌다. 따라서 안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형주에서 조조를 몰아내야 한다. 또 형주는 천혜의 요새이자 비옥한 땅이다. 형주를 얻을 수 있다면 오의 국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나라 혼자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형주의 민심을 얻고 아직도 형주 곳곳에 건재한 유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형주에서 명망이 높은 유비가 효용가치가 있다. 더욱이 유비는 유표가 아우라며 아꼈고, 유표의 장자 유기가 숙부로 모신다. 한나라 황실의 종친으로서 조조에 대항하는 이미지도 갖고 있다. 대의명분을 쥐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이런 유비가 지금 위태로운 처지에 있으니 자신들이 손을 내밀면 얼른 고마워하며 붙잡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노숙의 생각은 제갈량의 구상과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당장은 조조와 맞서 싸울 힘이 없고 그렇다고 조조에게 항복할 수도 없다면 누군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각 지역을 호령하던 원소, 원술, 여포, 유표, 공손찬 등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 남은 세력이라고는 손권의 오나라뿐. 유비로서도 손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문제는 누가 먼저 아쉬운 티를 내냐는 것. 제갈량은 유비 진영을 찾아온 노숙에게 오와 연대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연출해 조바심이 나도록 했고, 연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오나라로 방문해달라고 요청하게 만들었다. 유비의 생존이라는 중차대한 사명을 띤 것이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노숙의 간곡한 부탁에 의해 오나라를 찾아가는 형식이 됐다.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때마침 조조가 보낸 격문이 손권에게 날라 온 것이다. 조조는 “내가 정예병 백만과 장수 천명을 이끌고 장군과 함께 강하에서 사냥을 즐기며 유비를 정벌하려 하오. 그 땅은 똑같이 나누어 영원한 동맹의 징표로 삼을 것이오. 관망만 하지 말고 신속히 답변을 주기 바라오”라고 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백만 대군의 창검이 오나라를 향할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이와 같은 조조의 메시지에 오나라 조정은 공포에 휩싸였다. 문신의 우두머리인 장소를 비롯해 상당수 신하들이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주장했다. 머리가 아파진 손권은 마침 오나라를 방문한 제갈량에게 먼저 이들을 만나보도록 한다. 오와 힘을 합치고 싶다면 어디 한번 반대론을 잠재워보라는 것이다. 담판 전 기세싸움의 성격도 있었다. 그리하여 장소, 고옹, 우번, 보즐, 엄준, 육적 등 오의 난다 긴다 하는 정치가, 학자들이 모두 집결한 가운데 제갈량과의 대면이 이루어진다.제갈량을 향한 오나라 신하들의 공격은 매서웠다. 하지만 제갈량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반박해 낸다. 그 내용을 모두 소개할 필요는 없겠지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조조에게 대패해 오나라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하냐는 힐난이 있자 제갈량이 받아친다. 우리는 1000명도 안 되는 군사로 조조군을 낭패하게 만들었으며 지금도 끝까지 싸우려 하고 있는데 오나라는 정예병과 험준한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벌벌 떨며 역적에게 항복하려 하니 부끄럽지 않느냐는 것. 물론 이 설전은 연의가 만들어낸 허구이지만 상대방 말의 허점을 찾아내고, 의표를 찔러 역공하고, 대의명분을 내세워 입을 막는 등 논쟁에서 필요한 기술을 잘 보여준다.
공포에 휩싸인 오나라 조정 대신과 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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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마음 흔들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요컨대 제갈량이 손권과 담판을 벌이려던 시점에 더 아쉬운 쪽은 유비였다. 오나라의 형주 공략에 유비가 필요한 존재였다고는 하지만 조조에게 참패한 후 군세도 대폭 쪼그라들고 근거지도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에 비해 오나라는 넓은 땅과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유비가 오나라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지, 오나라에게 유비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는 그 정도였을 것이다. 상황이 이와 같으면 유비측이 저자세여야 한다. 대등한 동맹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제갈량은 당당하게 담판을 벌이고 상호 동등한 입장에서 협력을 이끌어 냈다. 이성과 논리뿐 아니라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치밀하게 접근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만든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