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잊혀져가는 금융위기의 교훈] 시장 무시하는 정책은 반드시 혼란 초래 

 

성장·물가·고용 등과 금리·주가·환율은 공동변화… 특정 목표에 집착하면 풍선효과 유발

▎1997년 12월 3일 미셸 캉드쉬 IMF 총재(오른쪽)와 임창열 부총리(가운데),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구제금융 협상을 타결한 후 손을 맞잡고 있다.
지구상에서 반복돼온 경제위기는 화폐경제 체제에서 실물 부문과 금융 부문의 불균형이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대부분 금융위기라 부른다. 실물과 금융의 괴리에 따른 부작용과 폐해가 쌓여 시장을 꼬이게 하다가 그 폐해가 어느 한 곳에서 표출되기 시작하면 산지사방으로 번져가며 경제활동을 가라앉게 만든다. 위기가 되풀이되는 까닭은 민간 부문이나 정부 부문이나 똑같이 과거 금융·경제위기의 교훈을 망각하거나 무시하려 들기 때문이다. 거의 똑같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배우지 못하는 교훈(unlearnt lessons)’이 되는 까닭은 인간의 본성인 그칠 수 없는 탐욕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몇 가지 위기의 발생 경로와 폐해를 간략하게 들여다보자.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일본은 엔화 가치를 거의 배로 높이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 불황(円高不況)에 대응한 장기간의 금융완화를 실시했다. 이로 말미암은 통화·신용팽창으로 기업 부채가 크게 늘어나고, 주식과 부동산 거품이 극에 달했다. 뒤늦게 급격한 금융긴축으로 선회하고 강력한 부동산 대출 규제를 시행하자 거품이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됐다. 일본은행은 1989년 5월부터 1990 3월 사이에 기준할인율을 2.5%에서 6.0%로 획기적으로 인상하고 부동산 대출 총량규제를 실시했다. 주가는 1989년 12월 최고치에서 1990년 10월에는 거의 절반 수준으로, 지가는 1991년부터 약 15년간 거의 4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다. 자산시장 거품 붕괴로 지속된 경기 불황에 이은 신용경색(credit crunch)으로 기업 도산이 줄을 이으며 금융 부실 규모가 확대됐다. 금융회사의 부실채권 처분 손실이 급격하게 늘어나며 14개 은행, 27개 증권사를 비롯, 142개 금융회사가 도산했다. 실물경제도 급격하게 위축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위기 이전 연평균 3.9%에서 위기 이후 1.0%로 떨어졌다.

한국의 외환위기: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각국은 저축을 능가하는 과잉 투자로 연간 경상수지 적자폭이 태국 8%, 말레이시아 10%, 한국은 6%로 확대돼 경계수준을 지나 위험수준(4%)을 넘어섰다. 기술혁신보다 생산요소 과다 투입으로 이룬 경제 성장으로 기업 부채가 급증하고 인플레이션이 유발돼 달러에 페그(peg)된 통화 가치가 과대 평가되자 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외환·금융위기가 비롯됐다. 통화가치가 실물경제와 괴리돼 고평가될수록 틈새를 노리는 투기세력의 공격 기회는 늘어나게 마련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적자와 대외지급능력 고갈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경제 현실을 외면하고 외환시장에 개입해 거꾸로 원화가치 상승(환율 하락)을 무리하게 시도하다 모라토리엄 위기까지 몰렸다. 텅 비어가는 외화금고를 바닥까지 긁어내 치솟는 환율을 억지로 억누르려다 자초한 관재였다. 당시는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을 유도해 경상수지 개선을 도모하고 부족한 외화도 보충해야 하는 상황에서 거꾸로 환율 인하를 유도하다 투기세력에게 성장 과실을 빼앗겼다. 환율이 800원 초반으로 억눌러 ‘국민소득 1만 달러’라는 헛된 슬로건에 다가가려고 억지 시장 개입을 하다 환율을 2000원까지 폭등시켰다.

IT버블 붕괴: 미국에서 2001년 이후 큰 폭의 금융완화가 이어지자 대출기관들이 저소득층에 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경쟁적으로 확대하면서 가계 부채가 급속히 증가했다. 대출기관은 대출자산을 유동화 시키는 증권화(證券化)를 통해 위험을 분산시키면서 레버리지 대출을 계속해나갔다. 주택저당채권을 증권화(securitization)해 유동화하고, 유동화된 증권을 모아 다시 증권화 하는 유동성 팽창이 “금융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처음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꼬리가 이어지며 유동화증권 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미국 경제가 금융긴축으로 선회하면서 주택시장 거품이 급작스럽게 붕괴되자 유동화 관련 금융기관의 연쇄부도가 이어지며 2008년 9월 대형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사태를 시작으로 금융시스템이 마비됐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대형 금융기관들이 해외 금융자산을 회수하면서 국제 금융위기로 확산됐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2007년 5,2%에서 2008년 3.2%로, 2009년에는 전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929년 대공황, 1994년의 ‘멕시코 위기’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 경제위기는 금리·주가·환율이 거시경제와 균형을 이루지 못해 부채 증가와 거품 팽창을 초래하다가 거품이 소멸되면서 금융위기로 진행됐다. ①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금융완화 지속으로 팽창해질 대로 팽창한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거품이 붕괴되면서 촉발됐다. 금융완화는 너무 오래 진행됐고 반대로 금융긴축은 도를 지나쳤다. ②아시아 외환·금융위기는 거시경제 여건, 대외지급 능력과 동떨어져 과대평가된 환율이 화근이 되어 투기세력의 공격을 초래했다. 우리나라는 환율방어 전략을 거꾸로 하다가 국가경제를 총체적 위기에 빠뜨렸다. ③세계 금융위기도 경기 부양을 위한 초저금리로 비롯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경쟁이 주택시장 거품을 초래하고 갑작스런 금융긴축으로 주택시장 거품 붕괴가 금융기관 연쇄부도 사태로 다시 세계 금융위기로 진행되는 재앙이 됐다.

성장·물가·고용·국제수지 같은 거시경제 총량지표와 금리·주가·환율 같은 금융시장 가격지표들이 공동변화(comovement)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면서 특정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다 대부분 경제적 재난은 비롯된다. 경제지표들은 홀로 변동하지 못하고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 유기체로서 어느 한 부분이 충격을 받으면 시장 전체로 파급되기 때문이다. 시장을 무시하는 정책은 시차는 있더라도 반드시 혼란을 초래하다는 교훈을 새겨야 한다.

경제 운용과 관련해 특정 정책목표를 위한 금융남용은 풍선효과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시장 불안심리를 일으켜 거시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부채가 많으면 위험과 불확실성을 가중시켜 조그만 충격도 극복하기 어렵고 더디게 한다. 가계와 기업 부채는 각자도생을 위해서 스스로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정부 부채는 부채 원인을 제공한 정책 책임자가 책임지는 일이 사실상 없기에 더욱 위험하다.

금융의 기능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실물 부문이 원활하게 순환하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 금융이 과도하게 앞서가거나 지나치게 뒤처져서 금융중개기능이 훼손되면 실물과 금융의 불균형 현상이 벌어지면서 경제순환에 장애를 일으키다가 결국 경제위기로 진행한다. 한국 경제는 외환·금융위기 전개 과정에서 전시행정에 매몰돼 실물경제 상황을 무시한 엉뚱한 시장 개입이 시장 기능을 망가뜨려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결국 위기로 몰고 갔음을 경험했다. 경제순환에서 공짜 점심이 절대 있을 수 없는 데도 서투른 묘수를 부리려다 국가경제를 망쳤다.

금융완화·긴축→거품·역거품→실물 위기

성급하거나 때를 놓친 금융완화 또는 금융긴축으로 빚어지는 거품과 역거품 현상은 결국 실물경제 교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 것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금융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실물 부문을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교란시켜 경제위기로 진행시키는 사례는 과거에도 수없이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1498호 (2019.08.2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