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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 김선일의 '사무력'] 사무(思務) 경영의 시대가 열린다 

 

인(人)의 성장이 업(業)의 성장에 절대적 영향… 생각하는 힘(思力)과 실행하는 힘(務力) 길러야

과거 사무(事務)는 책상에 앉아서 하는 서류작업을 가리켰다. 화이트컬러 업무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 서류 작업은 과거의 일이다. 이미 사무자동화에 밀렸다. 곧 인공지능(AI)에 완전히 자리를 내줄 수도 있다. 피터 드러커는 손 대신 머리를 바탕으로 일하는 ‘지식경영’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마저 정보화 물결에 묻혔다.

하지만 사무는 진화를 통해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중앙일보와 조인스닷컴에서 교육업무를 맡다가 현재 평생경력시대 강사로 활약하는 지은이는 사무가 사무(思務)로 진화 중이라고 지적한다. 사무(思務)는 동원그룹 창업자 김재철 회장이 집무실을 사무실(思務室), 즉 ‘생각에 힘쓰는 방’으로 부른 데서 나온 개념이다. 지은이는 이제는 머리를 써서 좋은 생각을 하고 아이디어를 짜내며 창의적인 일을 하면서 발전하는 ‘사무(思務) 경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무(事務)인에서 사무(思務)인으로

사무(事務)의 시절이건, 사무(思務)의 시대건 경영의 핵심은 사람이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 거듭난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기업과 민간 연수원에서도 이뤄진다. 조직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다. 기업들은 연수를 통해 학교 졸업생을 정예 직원으로 키운다. 이제는 사무(事務)인을 사무(思務)인으로 진화시키는 업무를 맡고 있다.

교육 업무를 담당해온 지은이는 학교가 아닌 기업 연수원과 더 가깝게 지내왔다. 학교에선 학생들이 돈을 내고 배우지만 기업 연수원에선 직장인들이 월급을 받으면서 교육을 받는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거액을 들여 연수원을 짓고 이미 학교를 졸업한 사람을 교육하는 것은 언뜻 모순이다.

왜 기업은 연수원을 짓는가. 지은이는 정주영 현대 창업회장의 어록에서 그 답을 찾는다. 바로 “우리가 잘 되는 것이 국가가 잘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인(人)의 성장이 업(業)의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1세대 사업가의 머릿속에는 이러한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인식이 굳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사업이 잘 되려면 직원들이 성장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실제로 이는 기업 발전의 원동력이 돼왔다. 국민교육헌장은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고 말하지만 연수원은 ‘너의 발전의 곧 회사의 발전’이라고 강조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해석이다. 인재 양성이 곧 기업의 발전이고 이익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이는 한국의 주요 그룹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삼성그룹 연수원마다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기념우표가 걸려있는데, 우표의 오른쪽에는 ‘기업은 사람이다. 나는 일생을 통해서 한 80%는 인재를 모으고 육성시키는 데 시간을 보냈다. 삼성이 영원한 것도 유능한 인재를 많이 기용한 결과다’라는 내용이다. 1980년 전경련 강의에서 한 말이다. ‘사람이 곧 회사다’라는 의미의 인내사(人乃社)라는 구호를 내건 SK그룹 창업자 최종현 회장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천도교의 기본 사상에서 따왔다.

두산그룹이 ‘사람이 미래다’라는 카피로 기업 이미지 광고를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 100년을 이끌어온 두산그룹의 경영철학과 사업방식을 명문화한 ‘두산 크레도(Credo)’는 아홉 가지 핵심 가치로 인재·인화·이익·인재양성·기술과 혁신·사회적 책임·정직과 투명성·고객·안전과 환경을 꼽고 있다. 두산 크레도는 인재에 대해 “인재는 우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최대 자산”이라고 정의한다. 그룹을 가리지 않고 인의 성장이 업의 성장의 원천으로 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의 성장을 위해선 생각하는 힘(思力)과 실행하는 힘(務力)을 동시에 길러야 한다. 사무력의 완성을 위한 과정이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은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기억된다. 실행력만 강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뇌력으로 일이 되게 할 방도를 찾으라는 ‘지상 명령’의 정 회장식 표현이다. 임무가 떨어지면 떠오르는 조직에선 ‘되게 할 방법’부터 찾고, 가라앉는 조직에선 ‘안 되는 이유’를 고민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생각의 힘은 전투·전쟁은 물론 조직 운영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것이 지은이의 믿음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적벽대전은 제갈공명의 두뇌력이 이끈 승리였다. 포스코 정문에 걸린 ‘자원은 유한/창의는 무한’이라고 말대로 인간의 두뇌력은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로서 모든 조직을 가동한다. 지은이는 이런 두뇌력과 실행력을 동전의 양면으로 본다. 두뇌력이 기수라면 실행력은 코끼리다. 둘이 합쳐야 막강한 코끼리 군단이 된다. ‘구슬에 서말이라고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듯이 두뇌력은 실행력을 만나야 비로소 조직의 ‘꽃봉오리’가 된다.

지은이는 생각하는 인(人)으로의 성장을 유달리 강조한다. 이건희 회장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을 모아 발간한 책의 제목인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를 예로 든다. 책 안에는 ‘내가 만난 이건희 회장’이라는 제목의 글이 다섯 편 있는데 사대부고 동창인 홍사덕 전 정무1장관의 회고에 눈길이 간다. 대학 시절 두 사람이 제2한강교(현재 양화대교)를 지날 때 홍 전 장관이 “이게 우리 기술로 만든 다리다. 대단하지”라고 말하자 이 회장은 “이눔아, 생각 좀 하면서 세상을 봐라”라고 맞받아쳤다. 한강은 장차 통일되면 화물선이 다닐 강이니 다리 한복판 교각은 좀 길게 잡았어야 할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였다. 지은이는 이 회장이 이렇게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본 것은 생각하며 세상을 보는 습관에서 비롯했다고 지적한다. 일의 출발은 일의 발견이며, 일은 안목이 있어야 발견할 수 있고, 안목을 갖추려면 생각하는 힘인 사력(思力)이 필수적이다.

지은이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폴 부르제의 말처럼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생각하며 일하지 않으면 일한대로 생각하게 된다”며 “생각하며 일하는 것은 일의 주인이 되어 일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중국 당나라 임제 선사의 언행을 기록한 [임제록]에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진리가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지은이는 시키니까 어쩔 수 없지 일한다는 자세가 아니라 일을 스스로 파악하고, 따져보며, 궁리하고, 결단하는 네 가지 힘이 모여 생각하는 힘이 된다고 지적한다. 바로 통찰력과 비판적 사고력, 발상력, 판단력이 결합한 것이 사력(思力)의 핵심이다.

사력(思力)의 핵심은 통찰력, 발상력, 판단력

지은이는 사력이 무력(務力), 즉 실행력을 만나야 비로소 조직의 ‘꽃’이 된다고 강조한다. 무력은 고려하는 힘인 계획력과 추진하는 힘인 실행력, 그리고 끌어내는 힘인 외교력과 소통하는 힘인 소통력으로 이뤄진다. 생각하는 힘인 사력(思力)과 되게 하는 힘인 무력(務力)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것이 사무력(事務力)이 사무력(思務力)으로 진화하는 핵심이다. 이 두 가지는 사무인에겐 물론 창업인에게도 필요한 일의 기본이다. 사무력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1498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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