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도쿄올림픽을 ‘클린 코리아’ 홍보의 장으로 

 

1988년 9월 17일 ‘손에 손잡고’라는 제목의 노래를 열창하며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88서울올림픽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분단된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하길 꺼릴 듯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세계 160개국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올림픽 대제전이 열렸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지구촌에 널리 과시한 축제의 한마당이었으며, 세계적 냉전 종식의 밑거름이 된 역사적인 올림픽이었다. 7세 소년의 굴렁쇠 퍼포먼스는 동서화합의 상징이었으며, 세계 평화의 큰 이정표이기도 했다.

일본은 내년 7월 24일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8년 전 참화를 입은 후쿠시마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한편, 경제부흥에 매진하는 일본의 이미지를 널리 과시하려고 한다. 아베 총리까지 나서서 올림픽 성공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다만 꺼려지는 대목이 있다. 바로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능 누출 위험이다. 금세기 들어 두 차례에 걸친 최악의 원전폭발 사고로 인류는 방사능 구름에 신음하고 있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체르노빌(옛 소련)에서 발생한 원전폭발로 당시 31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5년 동안 무려 7000여 명이 사망하고 70여 만 명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33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주변국 동유럽은 물론 아시아권까지 방사능이 도달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아이들마저 자꾸 죽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2011년 3월 11일에는 일본 후쿠시마에서 규모 9.0의 강력한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데 이어 거대한 쓰나미로 제1 원전에서 수소폭발과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2만여 명의 희생자를 냈고 전국적으로 17만여 명이 흩어져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체르노빌의 10배에 달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방사성 물질 다량 누출로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고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특히 오염물질이 바다로 유입되는 등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고, 지난 1월에는 원전사고 당시 후쿠시마에 살던 어린이 116명이 갑상선암 확진 판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성 물질은 편서풍을 타고 전 세계로 퍼졌고 미야기현 센다이시는 아직도 복원 공사 중이다. 많은 어린이가 숨진 오카와초등학교는 여전히 폐허 상태다. 고장 난 냉각 장치를 대신해 뿌렸던 바닷물이 방사성 물질을 머금은 오염수로 누출되면서 고방사성 액체가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후쿠시마 토양에서도 골수암을 일으키는 스트론튬이 검출됐다. 이에 따라 그린피스는 나미에·아타테 지역에 대해 여전히 방사선 비상구역으로 남아 오염토가 산을 이루고 있고 방사능 수치가 30배를 넘고 있다고 조사, 밝힌 바 있다.

이런데도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인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아베 총리는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올림픽 선수촌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후쿠시마 지역 농수산물이 안전하다고 방송에 출연해 직접 시식하는 장면까지 연출하고 있다. 올림픽이 가까워질수록 피난자 수를 최소한으로 줄여 후쿠시마 참사를 완전히 극복했음을 선전하기 위해 주택 지원 등 피난민 최소화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4일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규모 6.2의 큰 지진이 다시 발생했다. 도쿄에서도 진도 3의 흔들림이 감지될 정도로 큰 지진이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2 원자력발전소에 안전 점검을 진행한 결과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혀 세계인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본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아베 총리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극복 정책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정책이 될 공산이 크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본은 4개의 큰 섬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지형인 관계로, 섬나라 특유의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내년 7, 8월이면 섭씨 30도를 훌쩍 넘는 열대성 기온으로 무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질 것이다. 온몸이 끈적한 상태에서 방사능에 노출되면 피부에 더욱 잘 축적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불쾌감은 덤이다. 내년 도쿄올림픽이 자칫하면 최악의 방사능 올림픽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앞서는 이유다.

이런 걱정은 한국에는 되레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도쿄올림픽을 전후로 동북아시아에 붐빌 외국인을 상대로 청정국가, 문화강국 코리아의 면모를 뽐낼 수 있다. 그렇다고 일본으로 가는 관광객을 빼앗자는 얘기는 아니다. 이웃 나라에 오는 지구촌 손님을 청결한 환경에서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면 올림픽을 전후한 외국인들의 잔치가 한국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88서울올림픽 기간 동안 24만여 명을 서울로 초대해 인류 대축제를 벌인 경험이 있다.

시기적으로도 나쁘지 않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어 ‘위험한 분단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퇴색됐다. 그러면서도 냉전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체험할 수 있는 장을 갖고 있기도 하다. 특히 비무장지대(DMZ)는 여로 모로 요긴한 곳이 될 수 있다. 한국전쟁 휴전 당시에 남북한은 휴전선으로부터 남북 각각 2㎞씩 병력을 배치하지 않기로 했다. 이로써 생긴 DMZ는 50여 년 동안 출입이 통제되면서 환경오염이나 환경파괴가 이뤄지지 않았다. 각종 1급수 어류는 물론 멸종위기의 동식물이 다수 서식해 지구촌의 쉼터로 주목받고 있다. DMZ는 특히 생태계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 세계적인 K 팝그룹이 상시 공연체계를 갖추면 한류의 저변을 더욱 넓힐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급랭하고 있는 가운데도 국내 아이돌 그룹의 일본 투어콘서트가 검토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엑소는 오는 10월 후쿠오카·오사카·요코하마를 거쳐 미야기지역에서 일본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이를 두고 국내 팬들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미야기공연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장소와 약 130㎞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 있어 일본의 이미지 개선 노력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마마무도 일본 첫 번째 앨범 ‘4colors’를 발매하고 도쿄·오사카·고베 등지에서 릴리스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문화·체육 등 분야에도 한류의 활성화를 북돋울 수 있는 다양한 기획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는 트로트 가요도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이를 뒷받침하고 패션·화장품 등에도 한국산이 널리 통용될 수 있는 새 아이템 개발이 급선무다. 올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한복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한복의 우수성이 입증된 까닭이 아니겠는가.

- 김지용 칼럼니스트(시인, 전 문화일보 부국장)

1497호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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