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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다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칵테일 파티 효과’

▎사진:© gettyimagesbank
청년 작곡가 브람스와 슈만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클라라와의 사랑은 ‘세기의 사랑’ 중 하나로 꼽힌다. 클라라에게 반한 브람스는 연서를 보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클라라의 남편인 슈만은 브람스의 스승. 게다가 아이 일곱을 둔 클라라는 브람스보다 열네살이나 많았다.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클라라 주변을 맴돌았다. 그녀를 위해 작곡도 여럿했다. 1896년 클라라가 죽자 브람스는 “내 삶의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고 절망했다. 그리고 이듬해 그도 세상을 떠났다.

1959년 출간된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39세 연상녀 폴과 25세 연하남 시몽의 사랑 이야기다. 두 사람의 나이차는 14살. 클라라와 브람스의 나이차다. 폴은 남자 친구 로제가 있다. 둘은 6년째 사귄 ‘오래된 연인’이다. 너무나 익숙해진 관계. 주말이면 으레 만나지만 특별한 감동은 없다. 함께 밤을 지내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폴이 고독을 느끼기 시작할 때 청년 시몽이 그 틈을 파고든다. 변호사인 시몽은 실내 장식가 폴의 고객, 미국인 베시 부인의 아들이다. 시몽은 한눈에 폴에게 반하고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남자친구인 로제가 현지 동업자와 일을 해야 한다며 파리를 비운 어느 일요일 아침, 시몽은 폴에게 편지를 보낸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망설이다 연주회장을 찾은 폴은 답한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폴의 눈에는 시몽만 보여

폴은 자신과 연인 로제와의 사랑이 뜨겁지 않다는 것을 안다. 때론 서글픈 행복으로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사귈 생각이 없다. 서른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는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서로에게 익숙해진 만큼 ‘완벽한 안정감’이 있다. 그녀는 운명이겠거니, 체념 어린 태도로 로제의 품에 안긴다. 로제도 폴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새 연인 메지를 만나고 있다. 메지와 영원히 사귈 생각은 없다. 지겨워지면 다시 폴에게 돌아갈 것이다. 폴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로제는 폴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에게 묻는다. “자기, 행복해?”

폴과 로제, 시몽은 베시 부인이 주최한 디너파티에서 만난다. 업계의 유명 인사들과 신문지상에서 언급되는 인물들이 대거 참석한 자리. 그 같은 유명 참석자 중에서도 폴의 눈에는 단 한사람 밖에 안보인다. 시몽이다. 시몽은 마치 디너파티의 전체를 비춰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시몽은 2분 간격으로 폴을 쳐다봤고, 폴도 이따금 눈길을 줬다. 그럴 때면 폴은 미소를 짓고, 시몽도 미소로 화답한다. 로제의 눈에도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폴과 시몽만 보인다. 로제는 결국 파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폴을 끌어내고 떠난다.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붐비는 곳이라도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면 잘 들린다. 아무리 많은 사람 중에서도 내 아이는 기가막히게 찾아낸다. 이처럼 듣고 싶은 말만 듣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선택적 주의를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한다. 마치 칵테일 파티처럼 시끌벅적한 곳에서도 자신이 듣고자 하는 소리는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다.

칵테일 파티 효과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 뇌용량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뇌가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은 제한돼 있다. 주변에 아무리 많은 정보가 쏟아져도 뇌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 예컨대 같은 영화를 보는데 어떤 사람은 주인공이 탄 자동차가, 어떤 사람은 주인공들의 사랑이 맺어지는 배경장소가 먼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전자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고, 후자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 있다.

광고는 이런 칵테일 파티 효과를 이용한다. 배고플 때는 유독 먹는 광고가 눈에 잘 들어오고, 잠자리를 앞둔 밤 시간에는 속옷 광고의 집중도가 높다. 저녁 시간대에 먹거리 광고가, 심야시간 속옷 광고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배고플 때 대형마트에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허기를 느끼면 이것저것 주워담게 되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자도 자신이 투자한 종목에 대한 정보가 유독 잘 들리고 잘 보인다. 그 많은 경제기사 중에서도 말이다.

칵테일 파티 효과는 합리적인 판단을 가로막을 수 있다. 개인의 편견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들리는 나머지 듣기 싫은 말은 배척해 자신의 생각이 더욱 공고화된다.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은 다양한 정보가 평등하게 공유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사용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선별 수용하면서 오히려 사회 갈등이 더 커졌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편향성이 커지면 작게는 조직 내에서, 크게는 국가내에서 소통이 어려워진다.

리더는 특히 칵테일 파티 효과를 조심해야 한다. 나에게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의 말은 잘 들리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주변에는 아첨꾼만 득실거리고 충신은 사라질 수 있다. 주입되는 정보가 한쪽으로 쏠리다 보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만약 ‘불통’의 리더가 대통령이라면 국가적인 재앙이 될 수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필명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인 ‘사강’에서 따왔다.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다. 사강은 작품뿐 아니라 사생활로도 화제가 됐다. 10대 후반부터 카페를 드나들었고 골루아즈 담배와 위스키잔을 줄곧 손에서 놓지 않았다. 두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다. 카지노에서 인세를 탕진했고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다 의식불명에 빠지기도 했다. 때문에 그녀의 삶은 낭비·술·연애·섹스·도박·약물로 중독된 삶이라고 번역가 김남주는 평가했다.

‘불통’의 리더가 대통령이라면…

시몽은 폴을 만나기전 ‘친절하지만 지나치게 낭만적인 여자친구’를 한때 사귀었다고 실토한다. 시몽은 그녀가 ‘음산했고, 이를 악문 채 전속력으로 차를 몰았고, 잠에서 깨자마자 독한 골루아즈 담배를 피워 댔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사랑이란 두 피부의 접촉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생전의 사강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사강은 마약혐의로 선 법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로제에게 지친 폴은 마침내 시몽을 택한다. 더는 기다리는, 눈치보는 사랑이 아닌 자신의 진짜 사랑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랑이란 참 고약해서 또 변한다. 열정이 가라앉기 시작한 시몽에게서 폴은 또 다른 불안감을 느낀다. 14살이라는 나이차도 현실에서는 부담이다. 반면 잊었다고 생각한 로제는 점점 그리워진다. 사강은 사랑이란 그 미묘한 감정을 날것 그대로 가장 잘 표현한 작가중 한명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로제와 재결합하면 더 행복해질까. 사강은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농담하세요?”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여기에 답이있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500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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