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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왜 게임회사를 경계할까] 고객의 ‘시간’이 결국 돈 플랫폼 쟁탈 경쟁자 

 

방송·게임 간 이종 플랫폼 융합 가능성… 네트워크 효과로 가상현실·증강현실 주도권 확보 노려

▎사진:플리커
SK하이닉스 연구원 이원준(41)씨는 TV 방송을 보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주로 컴퓨터 게임과 유튜브 방송을 즐긴다. 세상 소식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누군가 갈무리해 올린 뉴스클리핑 서비스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접한다. 평소 TV를 켜거나 신문을 펼칠 일도, 심지어 웹 서핑을 할 일도 별로 없다. 그는 “뉴스는 잔혹한 사건·사고 소식만 가득해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며 “넷플릭스든 게임이든 세상에 재미있는 콘텐트가 넘치는데 즐거운 것에 내 시간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정보통신기술(ICT) 혁신의 시대, 가장 희소한 자원은 무얼까. 낮은 기준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로 세계적으로 금융시장에 자금은 넘친다.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과 러시아·중동 국가들의 원유 증산 등으로 에너지 역시 부족함 없이 조달할 수 있다. 미래 개척에 나선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얻기도 힘든 자원은 사용자의 관심과 시간이다. 하루 24시간을 더 늘릴 수도, 채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CEO “패한다면 포트나이트에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게임, 가상현실(VR) 등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올 초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디즈니 플러스·아마존 등과의 경쟁과 관련해 “걱정 없다”며 “우리가 경쟁하는 것은 포트나이트다. 패한다면 그들에게 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트나이트는 에픽게임즈에서 제작하고 배급한 3인칭 슈팅 게임이다. 전 세계 이용자가 2억 명(2018년 말 기준)을 넘어, 넷플릭스(1억5100만 명)를 크게 앞서고 있다. 사용자들의 관심을 다른 OTT 업체가 아니라 게임 회사에 뺏길 것을 우려한 것이다.

게임이든, 방송이든, 영화든 형식은 관계없다. 어떻게 많은 사용자를 끌어와 그들의 시간을 비싸게 소비시키느냐가 현재 IT 플랫폼 사업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자 과제인 셈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콘텐트 플랫폼은 OTT다. 영화·드라마·예능·스포츠 등 많은 종류의 콘텐트를 담을 수 있어서다. 여러 OTT 사업자 중에서도 유튜브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장년층 사용자 늘며 유튜브 고속성장


글로벌 디지털 마케팅사인 옴니코어(omnicore)에 따르면 유튜브의 글로벌 월간 실사용자수(MAU)는 19억 명(2018년 9월 기준), 일일 활성 사용자 수는 3000만 명에 달한다. 평균 시청 시간은 40분으로 전년 대비 50% 증가했다. 유튜브는 모기업인 구글에 이어 세계적으로 두 번째로 큰 검색엔진이기도 하다. 구글은 유튜브의 실적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지난해 204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부터 35세 이상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어 유튜브 패권은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유튜브는 한국에서도 ‘킬러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애플리케이션 분석 업체 와이즈앱이 국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 3만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튜브는 총 사용시간이 388억분(4월 기준)에 달해 모든 앱 중에 사용자가 가장 오래 체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카카오톡(225억분), 3위 네이버(153억분), 4위 페이스북(42억분) 순이었다. 유튜브 사용시간은 지난해 4월 258억분보다 50%나 늘었다. 연령대별로는 50대 이상이 101억분으로 가장 많았다. 국내 MAU는 3271만 명을 기록해, 카카오톡(3580만 명)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도 2012년 글로벌 가입자 수가 3000만 명을 밑돌았지만, 올 2분기 1억50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유튜브 유료 가입자 수는 세계적으로 30만 명(2018년 6월 기준)에 불과하지만, 넷플릭스는 95% 이상 사용자가 유료 가입자다. 넷플릭스 사용자는 유튜브보다 적지만, 매출액은 158억 달러(2018년 기준)로 어깨를 견준다.

유튜브는 모든 콘텐트를 유통하는 도매상 플랫폼인 데 비해, 넷플릭스는 엄선된 품질의 콘텐트만 제공하는 차이가 있다. 넷플릭스의 강점은 대중부터 소수자까지 섭렵할 수 있는 방대하고 촘촘한 콘텐트다. 넷플릭스는 회원들을 약 2000개 고객집단으로 구분해 특정 콘텐트가 이 중 한 집단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면 제작에 착수한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에만 130억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80개가 넘는 영화를 만들었다.

OTT 중 넷플릭스가 독주하는 가운데 디즈니 플러스·워너미디어 등의 판권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마블시리즈와 스타워즈, 픽사애니메이션 등의 판권을 쥐고 있는 디즈니는 넷플릭스 공급을 끊고 자사 플랫폼에 단독 공급할 예정이다. 넷플릭스 콘텐트 2위인 ‘프렌즈’도 올해 말 HBO맥스로 자리를 옮기고, 1위 ‘더 오피스’와 3위 ‘파크스 앤 레크리에이션’도 2021년부터 NBC유니버설이 판권을 가져갈 예정이다. 넷플릭스는 앞으로 콘텐트 공백에 대비해야 할 처지다.

게임 분야 역시 사용자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글로벌 게임시장조사 업체 뉴주(Newzoo)에 따르면 올해 컴퓨터와 모바일·콘솔 등을 합한 글로벌 게임 사용자는 세계적으로 25억 명에 달할 전망이다. 전체 게임 시장 규모는 지난해 대비 9.6% 증가해 1521억 달러(약 18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사용자 수는 유튜브보다 31% 많고, 매출 규모는 7배가 넘는 수준이다. 하나의 플랫폼과 전체 시장 간 비교지만, 유튜브가 사실상 OTT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게임 시장의 막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게임 몰입도·자극성 높아 사용시간 길고 과금 쉬워


▎구글의 스타디아 발표 현장 모습. / 사진:스타디아
이용시간도 유튜브에 비해 게임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용자들은 콘솔·컴퓨터·모바일 부문 모두 주중 90분 이상, 주말 110분 이상 게임을 즐긴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은 몰입도가 높고 사용자의 승부욕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과금이 쉽고 장시간 이용하는 콘텐트다.

이런 가운데 게임도 본격 플랫폼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최근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가 막을 올리면서 스트리밍 게임 플랫폼 시대가 열리고 있어서다. 스트리밍 게임이란 프로그램을 구매해 기기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클라우드에 저장된 게임 플랫폼에 접속하는 환경을 뜻한다. 스트리밍으로 음원과 영상을 즐기듯 온라인 환경에서 TV나 컴퓨터·모바일을 통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기업으로서는 유통 비용을 낮출 수 있고, 게임의 구매 개념을 구독으로 바꿔 지속적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현재 가장 앞선 회사는 글로벌 IT 공룡들이다. 구글은 ‘스타디아(Stadia)’라는 플랫폼 출시를 준비 중이고, 애플은 ‘애플 아케이드’라는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간 플랫폼 경쟁에서 한발 빠져있던 마이크로소프트(MS)도 ‘프로젝트 X클라우드’를 준비하고 있다. MS는 콘솔 게임시장에서 20년 가까이 경쟁하고 있는 소니와도 협력키로 했다. 아마존도 2017년 클라우드 게이밍 플랫폼 업체 게임스파크를 인수해 아마존 클라우드 AWS에 올리는 등 잰걸음 중이다.

4세대(4G) 이동통신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가 도입됐을 때도 LG유플러스의 C게임즈를 비롯해 소니·닌텐도·일렉트로닉아츠(EA) 등이 클라우드형 게임 서비스를 내놓은 바 있다. 당시에는 부족한 콘텐트와 낮은 통신 속도 등 탓에 고객의 반향을 끌어내지 못했지만, 5G 환경에서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클라우드형 게임 서비스가 본격화하면 게임의 저변이 넓어지는 한편 사용자를 플랫폼에 가두는 등 판도가 바뀔 전망이다. OTT와 게임은 대체재 성격이 있지만, 어느 쪽이 사용자의 시간을 많이 뺏을 수 있는가는 아직 평가하기 어렵다. 온라인과 모바일로의 플랫폼 변화가 일어나면서 두 시장 모두 성장 단계에 있어서다.

뉴주에 따르면 게임시장은 2025년 3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OTT시장 규모 역시 2017년 67조2600억원에서 2022년 166조3800억원으로 147.4% 커질 것으로 보인다(한국OTT포럼).

클라우드 게임, OTT·게임 결합 기폭제

게임의 저변 확대와 유튜브·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애플TV플러스 등의 메가톤급 콘텐트 투하로 사람들의 관심은 지상파·케이블 방송사에서 멀어지고 있다. 2005년 20%에 육박하던 KBS2·MBC·SBS 등 지상파 3사의 TV 미니 시리즈 평균 시청률은 올 상반기 각각 6.9%, 4.7%, 5.3%로 떨어졌다. 뉴스 시청률 역시 마찬가지다. KBS ‘뉴스9’의 평균 시청률은 2005년 연 18%에서 올 상반기 11.5%로 미끄러졌다. 특히 임직원 1700명의 MBC가 6월 중 하루에 올린 광고 매출이 1억4000만원으로 떨어진 바 있다. 이는 6세 유튜버 이보람양의 방송 하루 매출과 비슷한 수준이다. 기존 방송사의 몰락과 신흥 플랫폼의 부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다.

시장이 성숙단계에 접어들면 OTT와 게임 플랫폼 간에 본격적 경쟁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비해 글로벌 IT 공룡들은 OTT와 클라우드형 게임 플랫폼을 동시에 추진하는 양수겸장, 혹은 융합의 포석을 두기도 한다. 게임 중계 및 평가 방송은 OTT의 중요 콘텐트다.

지난해 유튜버 수입 상위 10명 중 5명(2017년 6월~2018년 5월 31일 기준)이 게임 리뷰어였다. 이에 구글은 스타디아와 유튜브를 연계해 사용자가 게임 영상을 보다가 곧바로 해당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스트리머가 만든 게임방에 참여하는 기능도 담을 것으로 전해진다.

MS는 아마존이 운영하는 게임 동영상 플랫폼 ‘트위치’에서 활동하는 ‘닌자’라는 스트리머를 자사 동영상 플랫폼 ‘믹서’로 영입하기도 했다. MS는 팔로워 수는 1471만 명에 달하는 닌자를 통해 믹서를 키운다는 계획이다.

최근 이와 관련해 플랫폼과 티켓 파워가 있는 스트리머 간에 어느 쪽이 더 영향력 있느냐를 둘러싼 논쟁이 일기도 했다. 닌자를 따라 트위치에서 믹서로 갈아탄 사용자는 19만 명(8월 초 기준) 수준에 불과하다. 콘텐트 생산자보다는 플랫폼이 더욱 중요한 셈이며, 앞으로 플랫폼 간 경쟁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

트위치는 게임 부문에서는 유튜브보다 영향력 있는 플랫폼이다. 온라인 방송 조사회사 ‘스트림엘레먼츠’에 따르면 게임의 라이브 스트리밍 시장점유율은 트위치가 70%로 가장 높고, 유튜브 20%, 믹서 3% 등이다. 트위치 라이브 스트리밍의 총 시청시간은 지난해 5500억분에 달했다. 2017년 3500억분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미국 비디오게임, 소셜·디지털 미디어 분석가 마이클 패처는 “트위치는 300만 명 이상의 스트리머가 활동한다. 사용자로서는 볼 만한 것이 많기 때문에 유력 스트리머의 이적이 트위치에 큰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메리카온라인(AOL)과 야후 인터넷 사업 부문을 인수하며 콘텐트 분야에 뛰어든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도 OTT와 더불어 클라우드 게임 플랫폼 ‘버라이즌 게이밍’을 선보일 예정이라 경쟁은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사용자 빨리 늘리려 자극적인 콘텐트 난무

이런 사용자의 시간과 관심을 끌어오는 것은 단순히 광고 수입을 넘어 신규 사업으로의 확장을 용이하게 해주는 측면도 있다. 이에 OTT와 클라우드형 게임 플랫폼의 융합과 확장은 앞으로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및 교육·관광 등 콘텐트로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가벼운 소프트웨어로 잠재 고객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수익이 높은 하드웨어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용자를 5000만 명 확보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항공 68년, 신용카드 28년, 컴퓨터 14년, 인터넷 7년, 페이스북 3년 등 하드웨어에서 인터넷·소프트웨어으로 넘어갈수록 줄어든다. 카카오톡의 경우 최초 단기에 사용자를 많이 확보해 네트워크 효과를 구축한 후 게임과 금융·쇼핑·모빌리티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사람의 시간은 제한돼 있고 콘텐트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콘텐트의 자극성·중독성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단기간에 사용자를 끌어오려 콘텐트의 완성도보다는 ‘먹방’ 등의 간단한 소비형 콘텐트나 폭력·성인물에 집중하는 것이다. 실제 최근 유튜브에서 곤충을 먹거나 동물을 학대하고, 고층 빌딩 위를 걷는 등의 혐오·엽기 콘텐트가 불어나고 있다.

최근 30대 유튜버가 방송에 올리기 위해 구급차를 몰래 타고 달아나 경찰에 체포된 일도 있다. 일방적 가짜 뉴스가 판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상우 연세대 교수는 “유튜브 중 극단적이고 편향성을 추구하는 채널이 인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자극적 정치 정보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01호 (20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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