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소비엔 상대성 작용베버 페히너의 법칙은 돈에 대한 감각에서도 잘 나타난다. 말하자면 돈 소비의 상대성이다. 1만원과 2만원의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만 19만원과 20만원은 같은 1만원의 차이인데도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2만원짜리 스마트폰 보조 배터리를 1만원에 살 수 있다면 한참 걸어서라도 다른 가게로 간다. 그러나 20만원 하는 코드리스 이어폰을 다른 가게에선 19만원에 판다고 굳이 그리로 옮기지 않는다. 20만원을 쓸 때엔 1만원은 푼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큰 돈의 그림자에 가려 작은 돈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면 부자 되기는 글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돈의 상대성은 큰 돈을 쓸 때 어김없이 나타나 가랑비에 옷 젖듯이 고생해서 번 돈을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게 만든다. 베버 페히너 법칙은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 들어 푼돈 경시 풍조를 만드는 주범이랄 수 있다.해외 여행을 할 때 큰 돈이 들어가는 항공권이나 숙박비와 비교하면 외식비는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여 카드를 마구 긁었다가 나중에 카드명세서에 외식비가 예상 외로 많이 나온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큰 돈을 이미 써버린 터라 자질구레한 음식값에 대해선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식 소비를 하게 된 것이다. 결혼 준비를 예로 들어 보자. 집 장만이 가장 비중이 크다. 비싼 곳은 한 채에 수억원에 달한다. 집을 구입하느라 이미 큰 돈을 쓰고 난 다음엔 혼수, 예식장 비용, 신혼여행 경비가 상대적으로 싸 보이게 마련이다.전세나 월세를 전전하다 내 집을 장만할 때도 이런 돈의 상대성이 작용한다. 오랫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아이가 다닐 학교가 가깝고 생활이 편리하며 출퇴근 하기가 좋은 동네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사하면서 오래된 살림살이를 바꾸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새 집에 들어가는 만큼 낡아 시끄러운 세탁기와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은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나름의 명분을 세운다. 집 장만에 수억원이 들었는데, 그까짓 400만~500만원의 가전제품 교체 비용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펀드는 날마다 가격이 변한다. 그래서 투자의 수익과 손실은 유동적이다. 오늘 수익을 냈다고 좋아할 수 없는 것이 내일은 악재가 터져 손실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보유 중인 투자상품의 손익을 매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이유다. 그러나 투자에 있어 고정적이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있다. 비용이다. 그런데 비용은 눈에 잘 띄지 않고 드러나지도 않는다. 더구나 투자금액에 비하면 푼돈 수준이다. 사람들이 수익과 손실에만 꽂혀 있지 비용을 간과하는 것은 그래서다. 그러나 비용을 얕잡아봤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특히 1%의 수익도 올리기 힘든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비용은 수익 여부를 좌우하는 변수가 된다. 펀드를 잘못 골라 수익이 변변치 않다면 고정적으로 운용사에 바치는 보수 탓에 순수익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더구나 투자기간이 길어지면 복리 효과까지 발생해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수수료는 펀드가 손실을 봤다고 인정을 베풀지 않는다. 수익이 날 때나 손실이 날 때나 꼬박꼬박 물린다.
가랑비에 옷 젖게 하는 수수료수익률이 5%만 넘어도 성공이라는 초저금리 시대다. 초저금리가 고착화될수록 1%의 수익률을 추가로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초저금리 시대엔 돈을 벌려고 덤볐다간 있는 재산도 지키기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비용 절약의 가치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같은 값이면 비용이 적게 먹히는 펀드가 일단 수익률 게임에서 유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펀드는 수수료와 보수를 매기는 방식에 따라 클래스가 달라진다.펀드 이름 맨 뒤에 붙는 알파벳(A~F, I, S, W)이 해당 상품의 클래스다. 보통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서 파는 A, C클래스는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E, S클래스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1000만원을 수익률 4%짜리 펀드에 투자한다고 가정할 때, 보수를 0.35% 떼는 S클래스 펀드는 보수가 1%인 다른 클래스펀드보다 3년 후 수익금이 21만6398원 많다. 투자기간이 길수록 금액 차이가 커져 10년이 지나면 90만5378원을 더 벌 수 있게 된다.수수료를 선취하느냐 후취하느냐도 고려 사항이다. 선취수수료라는 것은 펀드 가입시 원금에서 일정 금액의 판매 수수료를 미리 차감한 후 나머지 금액이 펀드에 투자되는 것을 말한다. 후취수수료는 원금 전체 금액이 펀드에 투자되고 펀드 환매시 원금과 수익금을 합친 금액에서 수수료를 차감한다. 선취수수료와 후취수수료가 모두 같은 비율일 때는 가입시 한 번만 내면 끝인 선취수수료가 장기 투자에 유리하고, 후취수수료는 1년가량의 단기 투자에 유리하다.물론 무조건 비용이 싼 펀드를 사라는 말은 아니다. 수익률 전망이 괜찮지만 비용이 비싼 펀드가 있다면 사라.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기를 그만둘 수는 없다. 그러나 돈의 상대성 때문에 비용이 별것 아니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불필요한 매매를 자주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만들 수 있다. 투자에서 성공하려면 비용을 감안한 실질 수익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