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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금지약정 유효성 판단은] 직업 선택의 자유냐 사용자 이익이냐 

 

대법원 판례에서는 약정 제한적으로 인정… 약정 체결 때 상응하는 대가 지급해야

▎사진:© gettyimagesbank
첨단 과학기술이 국내외 경쟁 기업 등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들이 직원과 맺고 있는 ‘전직금지약정’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직금지약정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와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에 취업하거나 스스로 경쟁 업체를 설립·운영하는 등의 경쟁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내용으로 하는 약정이다. 실무에서는 근로계약서에 미리 전직금지약정을 못박아두거나, 추후 비밀 보호 서약서 등을 징구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최근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핵심 직원 5명을 대상으로 이 조항을 근거로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바 있고, 삼성전자도 반도체 D램 분야 핵심 임원의 중국 이직을 막기 위해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같은 대기업의 사례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에서도 인력 유출로 내부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우려해 전직금지 소송을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술은 필연적으로 우수한 인적자원의 확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전직금지약정은 기술 고도화 사회로 진입할수록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6개월 새 두 직장 오간 연구원

필자는 전직금지 소송에서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을 모두 대리한 경험이 있는데, 각 상황에 따라 전직금지 인정 여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사용자 측을 대리해 소송할 때는 경쟁사가 이 직원들을 스카우트하면 영업비밀이 고스란히 유출되기 때문에 당연히 충분한 기간 전직금지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여겨진다. 만약 전직금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산업 생태계까지 망가질 수 있다. 비용을 들여 R&D에 투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누구도 먼저 자신의 비용을 투자해서 연구를 시작하지 않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근로자 측을 대리해서 소송할 때면, 전직금지 약정이 개인의 기본권을 심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직장에서의 대우가 불합리하거나 내부에 문제가 있어 이직을 하려는 경우 이를 막는 것은 개인의 생존권 자체를 흔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양쪽 모두 틀린 주장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의 이익(영업비밀)과 근로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비교 형량하여 판단해야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최근 경쟁 업체로 이직한 A연구원을 상대로 B회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연구원을 대리한 바 있다. A씨는 원래 B사의 경쟁회사인 C사에 재직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10월 B사로 이직했고, 6개월 만인 올해 4월 다시 퇴직 후 C사로 복귀했다. B사는 A씨가 C사로 옮기자 입사당시 맺은 1년의 전직금지약정을 근거로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B사는 A씨가 “회사에 위장취업을 한 후 다시 C사에 입사함으로써 채권자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였거나 향후 침해함으로써 채권자에게 손해를 가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A씨는 소송대리인인 필자에게 “이직은 기술 탈취와는 관계가 없었고 근무와 관련한 개인적 사유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C사 근무할 당시 상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 B사로 이직한 사유였으며, B사에서도 만족할 만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그는 C사에서 자신과 갈등을 빚던 상사가 퇴직하자 그 회사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정을 입증하는 것은 전직금지 사건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전직금지약정의 유효성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먼저 2010년의 한 판결을 살펴보면 법원이 사용자의 이익(영업비밀)과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어떻게 비교형량 하는지 볼 수 있다.

근로자 D는 손톱 관련 미용제품을 제조하는 E회사에 입사할 당시 ‘퇴직 후 2년 이내에는 원고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거나 직·간접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약정을 맺었다. D씨는 E회사에 1년 6개월가량 근무한 뒤 퇴사하고 한달 뒤 중개무역 회사를 창업해 E회사의 제품과 유사한 제품을 E회사의 거래처였던 F사에 납품했다.

이 사례에서 대법원은 E회사와 D씨가 맺은 약정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피고용인이 퇴사 후에 고용기간 중에 습득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 등을 사용하여 영업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고용인이 고용되지 않았더라면 그와 같은 정보를 습득할 수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위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결 요지다. E사는 D씨가 F사의 바이어명단과 납품가격, 아웃소싱 구매가격, 물류비, 가격산정에 관한 제반자료 등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이를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은 것이다

2008년 7월 선고된 판례에서 대법원은 “정보가 동종 업계 등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만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판례에서는 또한 전직금지 조항이 인정되려면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전직을 금지하는 대가를 지급했는지 여부가 고려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법원은 “피고가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의 체결로 인해 특별한 대가를 수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원고의 청구는 무효하다”고 판결했다. 전직금지 필요성과 직장인의 직업선택 자유를 비교형량 할 때 그 대가를 지급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전직금지약정 자체가 무효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직금지 약정 중 일정 기간을 초과한 약정은 무효라고 볼 수 있다. 2003년 7월 대법원은 “전직금지약정의 유효 기간은 기본적으로 영업비밀보호 필요성과 연계해 판단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영업비밀의 존속기간을 넘는 기간까지 전직을 금지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다만 전직금지약정은 그간 통상 1년 정도가 인정됐지만 최근에는 2년까지도 인정되는 추세다.

A씨에 대한 B사의 가처분신청 소송도 마찬가지였다. A씨의 소송을 대리하며 A씨가 B사에서 근무한 6개월 동안 새롭게 습득한 지식 또는 정보가 없으며 그런 정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동종 업계 전반에 알려지지 않은 B사만의 고유한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집중 소명했다. 또 B사가 A씨에게 약정 체결에 대해 별도의 대가를 제공하지 않은 점도 집중 소명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E사가 제기한 전직금지청구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영업비밀 존속기간 넘으면 전직 금지할 수 없어

A씨의 사례를 살펴봤을 때 기업의 입장에서 유효한 전직금지 약정을 맺으려면 약정 대상자에게 약정으로 인한 기회 상실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법원은 B사의 가처분신청에 대해 “채권자는 근로자의 지위나 취급 업무를 구분하지 않고 근로자들 모두와 일괄적으로 위와 같은 약정을 체결했고 영업비밀과 전직을 금지하는 회사 등을 광범위하게 정했음에도 약정 체결에 대해 별도의 대가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 오성환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1505호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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