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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23) 상사를 파악하는 3가지 방법] 감정·시간·소통 사용 방식부터 관찰하라 

 

상사의 성향 세세히 아는 직원 드물어… 밉고 싫을수록 더 많이, 잘 알아야 편해

▎사진:© gettyimagesbank
엄마들은 아이들을 부를 때, 보통 성은 빼고 이름만 부르거나 애칭을 쓴다. 그런데 이름 석자를 다 부를 때가 있다. 웬만큼 엄마를 경험한 아이들은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곧 자신에게 거친 폭풍우가 몰려올 것이라는 걸 말이다. 우리나라 엄마들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 엄마들과 유럽 몇몇 나라의 엄마들도 똑같다.

이름 석자를 부른다고 다 같은 상황은 아니다. 소리 높여 이름 석자만 부른다면? 이건 금방 지나갈 한두 번의 천둥이거나 약간의 폭우가 쏟아지리라는 징조다. 하지만 외침과 함께 시선이 일직선으로 자신에게 계속 꽂힌다면? 이건 가볍지 않다. 이런 저런 잔소리와 훈계가 폭풍우처럼 한동안 쏟아질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낮고 무거운 목소리와 레이저 같은 시선으로 이름 석자를 부를 때가 문제다. 이건 좀 심각하다. 조용한 부름이지만 절대 조용히 넘어가지 않는다.

위기를 잘 넘기려면 위기 파악에 능해야 하는 법, 눈치 빠른 녀석들은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안다. 장난기를 싹 지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엄마 앞으로 간다. 혼이 날 준비가 됐으며 잘못을 충분히 인정한다는 몸짓이다. 변명과 핑계는 엄금, 잘못했다간 번개까지 내리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레이저 시선이 쉽게 풀리진 않지만 이런 행동은 상황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 못 말리는 개구쟁이들일수록 이런 능력이 뛰어나다. 엄마의 화만 돋우는 녀석들은 진정한 개구쟁이가 아니다. 엄마의 성향을 잘 알아서 ‘못 말린다’는 소리를 들어야 개구쟁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라고 다를 게 없다. 상사를 알수록 능력 발휘가 쉬워진다. 신입 때는 일만 잘해도 인정 받지만,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면 일은 기본, 처신이 중요해진다. 아첨이나 아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상사의 성향을 알고, 그에 맞게 잘 대처하는 게 제대로 된 처신이다. 잘못하면 일로 쌓은 걸 다 까먹는다.

일전에 대리 과장급 10여 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직속 상사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들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전혀 모르다시피 했다. 공식적인 이력서보다 조금 더 아는 정도랄까? 그뿐이었다. 더 안다고 해도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뒤에 소개할 세 가지 관점에서 상사를 파악하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되려 “왜 알아야 하느냐?”고 고개를 설래설래 흔드는 이들도 있었다. 생각하기도 싫다는 반응이었다. 이런 이들일수록 자신의 상사가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는 놀랄 만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받은 피해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 피해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무조건 상사 탓으로 돌렸다.

과연 상사만의 잘못일까? 대체로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아닐 수 있다. 더구나 이런 식으로만 상사를 대하면 관계는 불편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망치는 것으로 해결이 된다면 모를까, 한 공간에서 부대끼고 살아야 한다면 밉고 싫을수록 더 많이, 그리고 잘 알아야 한다. 그가 왜 그러는지 알고 그렇게 하는 게 좋다.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일 수도 있지만 자기도 모르는 습관이거나 성향일 수도 있다. 어떤 의도로 그런다면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괜히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적을 너무 미워하지 마라?”


▎파치노가 주연한 [대부3]의 한 장면. 알 파치노는 자신의 후계자인 장조카에게 “적을 너무 미워하지 마라”고 말한다.
탁월한 장수들이 하나 같이 적을 면밀하게 연구하는 이유가 뭘까? 적이 좋아서가 아니라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이 싫다고 외면하거나 적개심만으로 싸우는 건 패전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손자병법에도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위기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불후의 명화로 유명한 영화 [대부]에서 알 파치노는 자신의 후계자인 장조카에게 말한다. “적을 너무 미워하지 마라.” 이유는 명확하다. ‘너무’ 미워하면 그 감정에 휘둘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이순신 장군은 전투를 치러야 할 때면 항상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 적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폈다. 승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모든 탁월한 장수들이 다 그렇다. 전력이 약하거나 불리한 위치에 있을수록 연구의 필요성은 커진다.

상사를 아는 데 필요한 기본 조건은 말할 것도 없이 관찰이다. 관찰은 상사를 알 수 있게 하는 처음이자 끝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까닭이다. 국내 정보기관의 표어를 빌자면 ‘잘 보면 보인다’.

우리가 첫 번째로 눈여겨봐야 할 상사의 행동은 그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이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 그러니까 감정사용 방식이야말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바로미터다. 그중에서도 불확실성과 불안에 대한 대응이 핵심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문화인류학자 기어트 호프슈테더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문화를 연구한 후,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식이 문화라면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수준은 그 사회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신 프로그램의 본질”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도 (…) 그런 사회적 힘의 영향 하에 있다”고 했다. 어떤 문화의 특징이 그 문화에 속한 개인에게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불확실성과 불안에 대처하는 한 사회의 방식이 문화라면, 개인의 방식은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호프슈테더의 문화론을 사람에게 적용해 보자면, 사람은 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항상 손 동작이 바쁘고 목소리를 높이며 책상을 탁탁 친다면 그는 불안 수준이 높고, 그래서 불안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감정을 안에 쌓아두지 못하고 밖으로 표출한다. 불안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다. 불안 수준이 낮은 사람은 반대다.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 자제한다. 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이 항상 바쁘고 안절부절못하며 감정적이고 공격적, 활동적이라면, 낮은 사람은 조용하고 까탈스럽지 않으며 가끔은 게으르다고 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이렇듯 성향이 다르니 일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은 이 두 지점 사이 어딘가에 있다.

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은 회의를 할 때 주제를 확실하게 정하고 디테일하게 논의하며 시간을 지킨다. 보고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애매한 걸 싫어해서 규칙에 의거해 일을 하려 하고, 뭐든 명확하게 정리한 다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편이다. 이런 상사를 만난 팀원들은 이를 기준으로 행동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한다고 했던 걸 어영부영 넘어가면 나중에 큰 코 다친다. 본인은 은근 슬쩍 잘 넘겼다고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잊어버릴 수 있지만 상사의 마음에서는 좋지 않은 감정이 복리로 불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뭔가를 어겼다면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

이들은 복잡한 걸 싫어한다. 정답이 하나인 걸 좋아하며 주고 받는 게 명확하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고자 한다. 모험을 할 때도 방향을 확실하게 한 다음 진행하는 스타일이다. 불안 수준이 낮은 사람은 반대다. 꽉 짜인 걸 싫어하고 개방적인 걸 선호한다. 하나 밖에 없는 정답은 별로다. 하던 대로나 시키는 대로 보다는 새로운 것, 독창적인 걸 좋아한다.

불안 수준이 높은 상사는 자신이 모든 걸 알고 있으려고 하고, 뭐든 진두지휘하려고 한다. 부하들이 물으면 즉각 답을 해주는 게 능력 있는 상사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기에 하나하나 정확하게 지시하는 편이다. 당연히 팀원들도 그렇게 일하길 바란다. 그에게는 일이 생길 때마다 낱낱이, 그때그때 보고하는 게 정상적인 것이다. 자신이 전문가라고 생각하기에 어렵고 난해한 내용을 즐겨 말하는 취향을 가진 이들이 많고, 멋진 명언을 구사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 한다.

이와 달리 불안 수준이 낮은 상사는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해 주위를 놀라게 한다. 모르는 걸 아는 척 하지 않는다. 시원시원하다. 쓰는 어휘도 쉽고 평범하다. 이의 제기? 반긴다! 일에서 벗어나면 친구처럼 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안 수준이 높은 상사에게 이런 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친한 척 확 다가섰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가능성이 크다. 권위를 상당히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상사들에게는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반대로 불안 수준이 낮은 상사라면 과감하게 거리를 좁히는 것도 방법이다. 의외로 잘 받아준다. 일하는 방식도 큰 그림만 본인이 그리고 세부적인 것들은 부하들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다.

두 번째로 관찰해야 할 것은 시간을 쓰는 방식, 그러니까 시간사용 방식이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시간을 다루는 자세야말로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크고 명료한 말”이라고 한 적이 있다.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하나의 메시지라는 말이다. 이게 어떻게 메시지가 될까?

시간 사용 방식은 말 없는 메시지

같은 시간이라도 사람에 따라 쓰는 방법이 다르다. 어떤 상사는 한번에 하나씩 일을 처리한다. 팀원들과 대화를 해도 한번에 한사람씩 한다. 멀티플레이어형 상사는 다르다. “모두 다 들어와!”라고 한 다음, 모든 일을 한방에서 한꺼번에 처리한다. 대답하는 부하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그 스스로에게는 나름의 질서가 있고 우선순위가 있다. 자기만 알고 있는 우선순위라 문제지만 말이다.

한번에 하나씩 처리하는 상사는 대체로 하루 24시간을 촘촘하게 분할해서 사용한다. 그에게는 시간이 돈이다. 돈처럼 아껴야 하는 낭비하지 말아야 할 자원이다. 당연히 제 시간이 중요하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팀원은 단박에 눈밖으로 밀려난다. 스케줄을 중시하고 규칙을 준수하려 한다. 그에게 하루 24시간은 많은 부품을 조립시켜 만드는 하나의 완성품이다.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 것처럼, 착착 일사불란하게 시간과 일을 조립해 완성품 만들 듯 진행시킨다.

후자인 멀티플레이어형 리더는 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불러 놓고 다른 일만 열심히 하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이 일 했다가 저 일 했다가 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한다. 한번에 하나씩 리더가 시계처럼 정확성을 중시하며 시키는 일을 잘 한다면, 멀티플레이어형 리더는 이리저리 건너 뛰는 게 특기라서 그런지 창의적일 때가 많다(물론 능력이 있는 경우만 그렇다). 한번에 하나씩 리더가 상대적으로 좁은 시야에 자신을 한정한다면, 멀티플레이어형 리더는 시야 밖으로 나간다. 앞의 리더가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강하다면, 뒤의 리더는 장기 프로젝트에 능하다. 여기에서도 역시 모든 상사는 이 두 극점 사이 어딘가에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둘의 차이는 “조금 이따가 하자”라는 말에서 드러난다. 앞의 리더에게 ‘조금 이따가’란 대체로 몇 분이거나 몇 십분이고 아무리 길어야 하루 이틀이다. 하지만 후자 리더의 ‘조금’은 짧아야 한두 시간, 하루 이틀이고 길어지면 한두 달이 될 수도 있다. 앞의 리더가 시간을 중시하고 과정을 중시한다면, 뒤의 리더는 일하는 자체, 결과를 중시한다.

이런 방식은 일하는 과정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앞의 리더에게는 회의에 5분 늦는 게 대오각성 해야 할 일이지만, 뒤의 리더에게 5분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사실 본인이 가장 잘 늦는 편이다. 늦게 도착해서도 다른 일을 하느라 또 얼마간 대책 없이 기다리게 하는 일이 허다하다). 회의 진행도 마찬가지다. 앞의 리더는 회의할 때 논의할 주제를 정한 후 시작한다. 회의에서는 디테일한 것들을 다룬다. 뒤의 리더는 일단 시작하고 상황을 봐 가며 안건을 다룬다. 그때 그때 지시를 내리기도 하지만 다 모아 놨다가 한꺼번에 내리기도 한다. 앞의 리더가 어떤 사안에 대해 자세하고 구체적인 걸 먼저 알기 원하는 반면, 뒤의 리더는 전체적인 상황과 추이를 먼저 알기 원한다. 우선순위가 다르다.

이런 성향을 모르면 보고할 때마다 엇나가기 일쑤고 하는 일마다 지적 당하기 십상이다. “조금 이따 보자”고 한 멀티플레이어형 상사를 하루 종일 목 빠지게 기다리다 제 풀에 지친다면 그는 자신의 상사를 모르는 것이다. 어느 정도 기다렸다가 오지 않으면 자기 일 해도 된다. 이걸 모르고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마음 상해할수록 자신만 손해다. 그렇게 ‘무례한’ 행동을 해 놓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지만 그에게는 그게 일상이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방식은 몸에 밴 것이라 상사 본인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문제는 그는 모르지만 같이 일하는 부하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회사 생활이 편하다. 미리 알고 나서 일단은 맞춰 주는 게 좋고, 혹시 다르게 해야 할 때는 미리 양해를 얻는 게 좋다. 부하는 ‘무례한’ 상사를 참아야 하지만, 무례하게 행동하는 부하를 너그럽게 봐 주는 상사는 많지 않다.

문서를 우선하는가, 말을 우선하는가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새로운 상사가 부임하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기도 한데, 상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경영학의 창시자로 평가 받는 피터 드러커는 생전에 리더십에 관한 내용을 쓸 때마다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강조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상사는 보고를 받을 때 문서를 우선한다. 문서로 된 보고서를 자신의 손에 들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그걸로 상황을 파악하고 결정한다. 반대로 구두 보고를 우선하는 상사는 “왜 쓸데 없이 문서 만드는데 시간을 허비하느냐”고 일갈한다. 상사가 선호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모르면 야단 맞는 게 일상이 된다.

지구가 태양을 돌듯, 조직은 상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는데, 이 형식을 빌린다면 ‘상사는 지옥이자 천국’이다.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회사 생활이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될 수도 있다. 지옥이 되는 건 상사 탓이 크지만, 상사 탓만 해서는 나아지는 게 없다. 같은 물이라도 겨울이라면 따뜻한 물을 주는 사람을 선호하듯, 상사가 우선하는 것을 먼저 해주면 칭찬과 인정은 당연한 것이 된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506호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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